[CEO lounge] 1조원대 버스그룹 꿈꾸는 허명회 KD운송그룹 회장

2011. 3. 30.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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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갓 30세가 된 청년이 경기고속 임시직 사원으로 취직했다. 당시 월급은 100원.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청년은 사장이 되겠다는 하나의 일념밖에 없었다. 그의 목표는 20년 내 경기고속 사장 자리에 오르는 것. 남들보다 4시간 일찍 출근하고 4시간 늦게 퇴근했다. 잠을 5시간 넘게 잔 적이 없다. 버스를 세차하면서도, 화장실을 청소하면서도 다짐했다.

'버스 한 대를 세차하는 데 드는 시간까지 세세하게 알아야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있다. 운송에 관한 모든 걸 꿰뚫어야 한다.' 그를 눈여겨본 사장은 입사 6개월 만에 주임으로 승진시켰다. 그리고 입사 1년 만인 62년 계장을 뛰어넘어 과장으로, 69년엔 상무로 승진했다. 그때 나이가 불과 38세였다.

허명회 KD운송그룹 회장(80)의 젊은 날의 이야기다. 그는 임시직으로 입사한 지 10년 만인 71년 독립했다. 동업자와 함께 버스를 30대 샀다. 마침 적자에 허덕이던 한 버스업체에서 시세(150만~160만원)보다 싸게 대당 117만원에 살 수 있었다. 노선은 종로~의정부다.

"경기고속은 시외버스였는데 시외버스는 사고가 나면 대체로 대형사고가 많았어요. 그래서 시내버스를 선택했죠. 당시 등산 열풍이 거셌고 의정부로 가는 승객이 많았죠. 게다가 몇 년째 요금이 오르지 않아 인상될 것을 예상했는데 딱 맞아떨어졌어요. 그때 30대를 운영하면 매일 1만원 이상 남았어요." 당시 버스삯을 고려하면 4달만 운영하면 버스를 한 대씩 늘릴 수 있었다. 그는 사업해서 번 돈으로 경기고속의 주식을 조금씩 사들였다. 그리곤 78년 8월 경기고속 사장으로 취임했다. 18년 만에 임시직으로 들어간 회사의 오너 사장이 된 것이다. 목표보다 2년 앞당긴 결과였다.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가능했죠. 운수업에 인생을 걸고 그저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사업을 키워오는 동안 골프채를 단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어요. 비행기를 한 번도 타지 않았죠. 제주도도 못 가봤어요. 오로지 버스 숫자가 늘어나는 재미만 알고 살았습니다." 78년 사장에 오른 이후 회사는 나날이 커졌다. 71년 30대로 시작한 버스업은 84년 660대로 불어났다. 95년 1000대를 돌파했고, 2000년 2000대를 넘어섰다. 그리고 2005년 3000대, 지난해엔 5000대까지 불어났다. 경기고속, 대원고속 등 15개 운수회사를 계열사로 두게 됐다. 2009년 기준 매출이 7370억원이고 올해 7600억원을 바라본다. 하루 이용 승객은 무려 200만명. 현재 대한민국 버스 10대 중 1대는 KD운송그룹의 차라고 보면 된다.

부모상 10일·녹내장 수술 3일 동안만 출근 안 해

허 회장의 성공 비결을 한 단어로 정의하면 성실함이다. 그는 50년 동안 단 13일만 회사를 못 나갔다. 부모님 상을 당했을 때 닷새씩 열흘을 쉬었고, 녹내장 수술을 하느라 3일간 병원에 입원했다(녹내장 수술 이후 그는 짙은 안경을 쓰고 다닌다). 그리곤 단 하루도 회사를 쉰 적이 없다. 쉬긴커녕 직원보다 늘 먼저 나오고 늦게 퇴근한다. 허 회장이 회사에 매진할 수 있었던 데는 부인의 공이 컸다. 부인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는 61년 경기고속에 입사하면서 부인에게 "꼭 사장이 될 테니 교사직을 포기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부인은 두말없이 학교를 그만뒀고 새벽 길을 나서는 허 회장의 아침상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챙기며 내조했다. 아침상 차리는 일은 50년째 이어지고 있다.

열심히 한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의 성공 비결 두 번째, 철저한 현장주의다. 버스 세차부터 시작해 50년을 버스와 살았으니 버스운송업의 A부터 Z까지 모르는 게 없다. 708개나 되는 노선이 어디를 거쳐 가는지 전부 꿰고 있다.

여든 살이 된 지금도 그는 가끔 이른 아침 경기도 분당 서현역에 간다. 서현역은 분당의 핵심 정류장으로 각종 노선이 만나는 곳이다. 분당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기자도 짙은 안경을 쓴 그를 여러 차례 목격했다.

"배차 간격이 적당한지, 승객들의 불편함은 없는지 등을 확인해야죠. 현장에 나가지 않으면 알 수 없거든요." 인터뷰 당일 그의 탁자에는 버스 노선별 일일 성과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하루하루의 수입과 지출을 확인하며 문제점을 바로바로 파악한다.

성공 비결 세 번째는 검소함이다. 그는 40년간 회사를 운영하며 자가용을 딱 두 번 바꿨다. 처음에 마련한 대우차 '수퍼싸롱'을 13년 탔다. 이후 현대차 '그랜저 2.4'를 역시 13년 탔다. 지금 타고 있는 쌍용차 '체어맨'도 벌써 11년째다. 평균 주행거리는 50만~60만km. 그는 "승객들에게는 200만km를 운행하는 버스를 타라고 해 놓고 나만 쉽게 바꿀 수 없었다"고도 했다. 그의 집무실에는 가죽만 두 번 교체한 10년 넘은 소파가 있다. 그의 몸에 밴 검소함은 회사 운영에서 비용 절감으로 이어졌다. 비용 절감을 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버스업의 이윤은 무척 박하다. 매출이 7000억원이 넘지만 순이익은 100억원에도 못 미친다. 매출 대비 이익률을 따지면 1.2%다. 버스 한 대 가격이 1억원인데 한 달에 45만원을 번다. 기름값과 인건비를 빼면 실질적으로 마이너스다. 2009년 버스 한 대가 하루에 번 수입이 고작 7600원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지하철과 자가용이 늘어나면서 버스 승객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기름값은 천정부지 치솟는다. 지금까지도 유류파동과 지하철 증설 때는 늘 위기가 닥쳐왔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윤을 내는 비결이 있다면 규모의 경제로 비용을 줄이는 방법밖에는 없다.

"저희는 버스 운영의 모든 과정을 독자적으로 합니다. 연료를 사는 것도 직거래로 싸게 살 수 있죠(KD에너지텍). 어느 회사도 없는 저유소까지 갖춰 저장할 수도 있어요. 정비도 당연히 자체적으로 하고요(KD정비공장). 심지어 직원들의 옷도 자체 제작하고(KD어패럴), 먹을거리(KD푸드피아)도 자체 생산합니다. 버스도 저렴하게 구매하고요. 폐차도 저희가 직접 합니다. 이렇게 비용을 아끼는 겁니다." 비정규직 직원 단 한 명도 없어알뜰 경영을 한다고 직원들에게도 박하게 대우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감히 말하건대 KD운송그룹은 직원복지에 관해서라면 업계 최고다. 회사 전체 사원이 9290명이다. 7960명의 승무사원(그는 운전기사라는 용어 대신에 이렇게 부른다) 외에 정비원, 조리사, 경비원도 모두 정규직 사원이다. 비정규직을 쓰면 연간 550억원 이상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허 회장은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같이 일하면서 누구는 회사 식구가 되고 누구는 그렇지 못하면 노노 갈등, 노사 갈등이 생긴다"며 비정규직을 없앴다. 지난해 평균 연봉은 3200만원으로 괜찮은 수준이다. 노사 갈등도 생각하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노조에 임금을 백지위임했다. 벌써 6년째다. 2008년 고유가로 회사가 어려웠을 때도 백지위임했다. 노조는 자진해서 '인상률 0%'를 써냈다. 회사 이미지도 있는데 조금이라도 올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을 정도다. 해고도 없다. 정년이 60세인데 몸이 건강하면 연장근무도 가능하다.

KD운송그룹의 복지는 하나하나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99년부터 포상제도를 시행해왔는데 지금까지 200억원 가치의 금을 나눠줬다고 한다. 직원들이 잠을 자야 안전 운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작은 관사 대신 아파트를 21채 사서 숙소로 사용한다. KD운송그룹 직원들이 입는 옷도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바로 디자이너 앙드레김 씨가 디자인한 옷이다. 허 회장이 자존심 강한 앙드레김 씨를 5년간 설득한 뒤에 3억원을 주고 디자인을 받았다고 한다. 또 매월 첫 번째 목요일, 소갈비와 떡 등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생일파티를 해왔다.

KD운송그룹은 직원 가족에게는 더 좋은 직장이다. 허 회장은 "남편과 부인이 없는 직원은 뽑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가정을 중시한다. 가정이 편안해야 회사에서 편히 일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철학이기도 하다. 그는 매년 워커힐호텔에 직원 가족을 모아놓고 '사우가족 교양강좌와 간담회'를 갖는다. 회사에 대해 시시콜콜한 사안까지 다 알려주고 유명 가수를 불러 공연하고 좋은 식사도 대접한다. 그는 매달 사원 부모들의 통장에 노부모 효도 지원금 5만원을 직접 입금한다. 2008년 문을 연 'KD푸드피아'에서 매년 직원들에게 15kg의 김치를 보내주기도 한다.

"직원을 최고로 '대접'해줘야 직원들도 고객을 최고로 모실 수 있죠. 내년에는 매출 1조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99호(11.03.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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