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경영] 제 1화 멈추지 않는 자전거 54년 ⑤ 보령약국 세 가지 영업전략

n/a 2011. 2. 23.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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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오픈 방식으로 운영된 보령약국 모습. 당시에는 혁신적인 영업전략으로 서울 외곽에서도 손님이 몰렸다.

1950년대 후반 국내 의약품 유통시장은 극히 전근대적이고 혼란한 실정이었다. 수입 의약품이나 부정한 경로를 통해 흘러나온 군수 의약품, 또 미국에서 들어온 원조 의약품 등이 암암리에 거래됐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나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다.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내 전 재산을 투자한 생존기반이었기 때문이다. 약국 개업과 더불어 스스로 다음과 같은 방침을 정하고 실천했다. 다른 약국보다 싸게 팔고, 다양한 상품을 갖추며, 서비스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었다. 도매상으로부터 공급받은 가격에 최소한의 이익만을 붙여 팔았다. 또 '원하는 약은 반드시 구할 수 있는 약국'이 되도록 노력했다. 만약 손님이 원하는 약이 없을 경우 자전거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 뒤지고 다녀서라도 반드시 구해줬다. 마지막으로 손님의 증상에 귀를 기울인 뒤, 아무리 사소한 약품이라도 하나하나 복용법과 부작용 등을 꼼꼼히 설명해줬다. 다른 약국보다 먼저 문을 열고 뒤늦게 문을 닫기도 했다. 이런 약속을 지켜가는 사이, 보령약국은 어느새 '전혀 다른 약국'이라는 이미지를 갖기 시작했다. 손님이 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값이 싸다 보니 먼 서울 외곽에서도 손님들이 몰려왔다.

보령약국에서 최초로 시도한 전표 양식.

 보령약국은 또 관행으로 굳어진 외상 거래 대신 현금으로 거래를 했다. 제약회사에 약값을 현금으로 줬다. 당장에 자금 회전이 좋아지게 된 제약회사들은 그동안의 고자세를 버리고 보령약국을 최우선적인 거래처로 대접했다. 필요한 품목을 원하는 만큼, 그것도 싼값에 들여오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것은 동시에 손님이 원하는 다양한 제품을 더욱 싼값으로 팔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매출과 현금 회전율을 높여가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보령약국의 번성에 견인차 역할을 한, 또 다른 주역들은 바로 중간 도매상인들이었다. 그들은 약국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언제 어느 때고 신속하게 조달해 주는 역할을 했다.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자전거 부대'로 불리기도 했다. 이들 자전거 부대는 보령약국 주변에 포진해 있다가 만약 손님이 원하는 약이 없거나 부족할 때 즉시 자전거를 타고 제약회사로 달려가 약품을 구해오는 역할을 했다. 개업 초기에 내가 했던 역할을 이들이 대신하게 된 셈이었다.

 보령약국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계속하고 있던 1960년대 초, 정부는 국산 의약품을 적극 장려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도매상들도 국산 의약품을 취급할 수밖에 없었는데, 국산은 수입품에 비해 마진율이 크게 떨어졌다. 그 때문에 1961년에만 전국 도매업소의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았다. 이런 가운데 1962년 3월 보령약국은 오히려 거꾸로 도매상 허가를 받고 보령약품이라는 이름으로 도매업을 시작했다. 남들이 기피하는 일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도매상이 되어 취급하는 물품량이 크게 늘자 약국 매장 안에 약품 진열대를 설치했다. 약품을 종류별로 구분해 고객들로 하여금 내부의 정돈 상태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신뢰와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당시로서는 어느 약국에서도 시도해 보지 않은 독특한 진열 방식이어서 이곳 저곳에서 견학 오는 약국 경영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또 한 가지, 나는 기존의 어떤 약국에도 없었던 전표제 관리 방식을 도입했다. 약이 팔릴 때마다 품목과 수량, 가격을 전표에 기입해 두는 것이었다. 전표제를 도입한 후 재고 파악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이뤄져, 잘 팔리는 약품과 그렇지 않은 약품이 금방 확인됐다. 전표제를 도입한 이후 처음 실시한 재고 정리에서는 쓸모 없어진 약품이 두 트럭 분이나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표제는 도입 초기에 약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번거로운 데다 자신이 혹시 불신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반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시간이 절약되고 능률도 오르게 되자 전표제는 보령약국만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관리 방안으로 자리를 잡았다.

 도매업소들이 줄줄이 문을 닫던 때 오히려 도매업으로 전환을 꾀한 도전이 성공을 거둔 데다 새로운 관리 방식이 정착되면서 보령약국은 해마다 매출이 10배 이상 커졌다. 그러자 나는 오래전부터 가슴에 품어온 꿈을 실현할 준비를 시작했다. 남이 만든 약을 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약을 만들어 팔자는 꿈이었다.

김승호 보령제약 회장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center/v2010/power_reporter.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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