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없는 저 통일된 한반도에서 살고 싶다

2011. 2. 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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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종찬 기자]

▲ 한반도 지형

한반도 모습을 쏘옥 빼닮은 야트막한 산이 하얗게 눈 덮인 강을 끼고 드러누워 있다.

ⓒ 이종찬

지구가 이상하다. 지구촌 곳곳에서 지진이 자주 일어나 심상치 않더니 급기야 화산까지 폭발하고 있다. 여기에 이상기온으로 북극과 남극에 있는 빙하가 녹아내리는가 하면 폭설, 강추위, 홍수가 잇따르고 있다. 사람들 지나친 욕심에 지구가 화가 단단히 나 개발지상주의자들에게 옐로카드를 끝없이 내비치는 듯하지만 그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세상살이도 어지럽다. 용암처럼 치솟는 생활물가와 강추위에 서민들 지갑에 '식의주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서는 구제역이 휩쓸어 수백만 마리에 이르는 소와 돼지를 산 채로 땅에 파묻어 축산농가에서는 넋을 놓고 있다. 게다가 무분별한 매몰로 지하수나 식수오염에 산비탈 매몰지까지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하니 참 서글프다.

몸이 꽤 무겁고 마음이 너무 답답하다. 새로운 희망을 줍기 위해 길을 나선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서는 이번 여행은 강원도 선암마을이다. 한반도를 쏘옥 빼닮은 산천이 있는 그 마을. 그 마을에 가서 마음 켜켜이 쌓인 무거운 시름을 내려놓고 싶다. 눈과 얼음에 꽁꽁 얼어붙은 한반도 지형을 바라보며 나와 너, 우리를 다시 되짚고 싶다.

길이 꽁꽁 얼어 미끄러워도 할 수 없다. 손발이 떨어질 것처럼 콕콕 쪼아대는 강추위에 앞을 가리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더라도 할 수 없다. 어차피 이 세상살이란 게 내 생각처럼 되는 것보다 내 생각을 짓밟아버리는 게 더 많지 않던가. 새로운 것을 담기 위해서는 나를 비우고, 나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뚫고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 한반도 지형 가는 길 팻말

암마을 근처에 다다르자 나무빛 바탕에 하얀 글씨로 '한반도 지형'이란 글씨와 함께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 이종찬

▲ 한반도 지형

산길 들머리에는 단밤을 파는 사내가 '아주 달다'며 단밤을 나눠준다

ⓒ 이종찬

'눈의 나라'에 있는 한반도 지형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주운 심상

설날 다음 날인 4일(금) 아침 8시. 한반도 지형이 있는 강변마을인 선암마을(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로 간다. 고속도로와 국도 곳곳에 구제역을 막기 위해 차량 분무소독대가 길을 막아선다. 그나마 한시름 놓은 것은 설 연휴에 날씨가 조금 풀려 도로가 미끄럽지 않고, 여행하기에 그리 춥지 않다는 점이다.

강원도 산과 들에는 눈이 하얗게 덮여 있다. '눈의 나라'가 따로 없다. 산등성이 비탈진 밭 곳곳에는 옥수숫대묶음이 눈을 하얗게 덮어쓰고 있다. 산과 들을 굽이쳐 흐르는 강물은 눈을 안고 꽁꽁 얼어붙었다. 누군가 일부러 깎아놓은 듯한 기암괴석 곳곳에는 굵은 고드름이 층층을 이루어 고드름폭포를 이루고 있다.

강원도 산 곳곳에는 붉은 몸뚱이를 비틀며 용트림하고 있는 금강송 틈틈이 눈처럼 하얀 몸뚱이를 지닌 자작나무가 눈에 자주 띤다. 오늘이 입춘이라서 그럴까. 차창 밖을 스치는 마른 나뭇가지 곳곳에서 언뜻언뜻 연초록빛 싹이 트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래. 이제 오래 가지 않아 저 나뭇가지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듯이 내 삶에서도 새로운 싹이 트고 새로운 꽃이 활짝 피어나지 않겠는가.

아침 10시. 선암마을 근처에 다다르자 나무빛 바탕에 하얀 글씨로 '한반도 지형'이란 글씨와 함께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차에서 내리자 길목에 감자떡과 어묵, 핫도그, 닭꼬치, 번데기, 컵라면, 동강막걸리, 소주 등을 파는 포장마차가 두어 개 나란히 서 있다. '한반도 지형'으로 가는 산길 들머리에는 단밤을 파는 사내가 '아주 달다'며 단밤을 나눠준다. 맛보고 사라는 투다.

그 산길 들머리에서 바라보는 '한반도 지형'은 그저 눈 덮인 강줄기에 휩싸여 나지막하면서도 길게 이어진 야산에 다름 아니다. 산길에 들어서자 오른쪽에 돌탑이 하나 문지기처럼 우뚝 서 있다. 누가 쌓았을까. 아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돌 하나 올리며 무슨 소원을 빌었기에 저리도 차곡차곡 높이 쌓였을까.

▲ 한반도 지형

산길 들머리에서 바라보는 '한반도 지형'은 그저 눈 덮인 강줄기에 휩싸여 나지막하면서도 길게 이어진 야산에 다름 아니다

ⓒ 이종찬

▲ 한반도 지형

산길에 들어서자 오른쪽에 돌탑이 하나 문지기처럼 우뚝 서 있다

ⓒ 이종찬

< 1박2일 > 촬영한 뒤부터 그 이름 널리 떨쳐

돌탑을 뒤로 하고 산길로 깊숙이 들어서자 여기저기 바위가 눈과 얼음을 머금고 있어 제법 미끄럽다. 설 연휴 다음날이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여기저기 가족끼리 혹은 연인끼리 혹은 홀로 걷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렇게 5분쯤 걸었을까. 저만치 전망대가 하나 보인다.

여기가 그곳인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곳에서는 한반도 지형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아하! 그래서 이 전망대엔 사람이 하나도 없었구나. 야트막한 산길을 다시 거슬러 오른다. 저만치 숲에서 장끼 한 마리 '호오~ 호오~' 허공을 찢는 소리를 내며 푸드덕 날아오를 것만 같지만 날씨가 흐릿해서 그럴까, 고요하기만 하다.

2~3분쯤 더 걸었을까. 저만치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를 끼고 있는 오간재 전망대. 그 아래 진짜 한반도 모습을 쏘옥 빼닮은 야트막한 산이 하얗게 눈 덮인 강을 끼고 드러누워 있다. 그 전망대 곳곳에서는 한반도 지형을 밑그림으로 삼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숱하다. 저 한반도 지형 옆에 있는 작은 마을이 선암마을이다.

안내자료에 따르면 저 한반도 지형을 '동해' '남해' '서해'처럼 휘돌아 흐르는 강줄기는 강원도 태기산(1261m)에서 흘러내린 주천강과 평창에서 힘차게 달려온 평창강이 영월군 서면 신천리(新川里)에서 서로 만나 '서강'을 이룬다. 이 서강이 영월읍을 향해 흐르다 '동강'과 한데 몸을 섞어 남한강이 되는 물줄기다. 그곳이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나지 못해 애를 태우는 처녀 총각 애틋한 사랑이 깃든 아우라지다.

지금은 고추, 콩 등 밭작물을 키우는 농가 10여 채가 남아 있고 군데군데 폐가도 눈에 띠는 선암마을. 이 마을은 동강과 서강 샛강인 평창강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한반도 지형 때문이다. 특히 1박2일 팀이 이곳에서 촬영한 뒤부터 그 이름을 널리 떨쳐 지금은 주말이나 연휴 때가 되면 숱한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 한반도 지형

한반도 모습을 쏘옥 빼닮은 야트막한 산이 하얗게 눈 덮인 강을 끼고 드러누워 있다

ⓒ 이종찬

철조망 없는 저 한반도에 가고 싶다

고려 때 선암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선암마을. 동쪽 절벽지역을 처음 발견하고 바깥에 알린 이종만이란 사람 이름을 따서 종만봉이라 부르기도 한다는 오간재. 전망대에서 남산재 쪽을 바라보면 깎아지른 절벽이 있다. 그 절벽을 따라 백두대간을 닮은 산맥이 길게 이어져 있다. 여기에 지금은 비록 보이지 않지만 울릉도와 독도를 닮은 작은 바위도 있다고 한다.

한반도 지형 남쪽과 서쪽은 흰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모래밭도 있다. 북쪽으로는 마치 만주벌판으로 뻗어나가는 듯한 산줄기가 이어진다. 그 참! 어찌 이리도 한반도를 쏘옥 빼닮았을까. 한 가지 참으로 아쉬운 것은 저 한반도 지형 너머 저만치 무슨 공장건물인지에서 솟은 굴뚝에서 연기가 줄기차게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아저씨! 저 곳에 갈 수는 없나요?"

"갈 수 있죠. 나무와 솔가지로 만든 임시다리인 섶다리(주천리와 판운리 2곳)를 건너면 돼요. 여름에 큰물로 섶다리가 떠내려가면 줄배를 타고 건너가지요."

"저곳에 가면 볼 게 뭐가 있나요?"

"저곳 동쪽 중간쯤에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부는 큰 구멍이 뚫린 구멍바위가 하나 있어요. 그 바위 때문에 동네처녀가 바람이 나지 않는다는 재미난 전설이 깃들어 있지요."

영월에 살면서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60대 허리춤께 아저씨 말이다. 이 아저씨 말에 따르면 한반도 지형을 마주보고 있는 저곳 선암마을 앞 넓은 자갈밭에는 수박돌과 잔돌들이 예쁘게 깔려 있단다. 게다가 재수가 좋으면 백로, 비오리, 원앙, 수달 등도 볼 수 있다. 저 강에는 천연기념물인 쉬리와 어름치 그리고 민물조개, 다슬기 등이 살고 있다.

섶다리를 건너 철조망이 없는 저 한반도에 가고 싶다. 눈이 하얗게 덮이고 얼음이 꽝꽝 얼어붙지만 않았다면 기를 쓰고 저 통일된 '또 하나의 한반도'에 갔을 것이다. 저곳에 가면 행여 내가 꿈꾸는 그런 세상, 빈부 양극화가 없는 그런 세상, 마음이 하나로 통일되어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평등세상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 한반도 지형

한반도 지형 남쪽과 서쪽은 흰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모래밭도 있다

ⓒ 이종찬

제 아무리 날씨가 심술을 부려도 이제 저만치 봄이 다가오고 있다. 19일 우수까지 지나면 저 눈과 얼음에 둘러싸인 한반도 지형에도 연초록빛 싹이 트고, 예쁜 꽃들이 화르르 화르르 피어날 것이다. 그때, 아니 올 봄에는 저 한반도 지형처럼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봄눈 녹듯이 사르르 녹아내려 '통일의 꽃'을 피웠으면 정말 좋겠다.

그대. 행여 발길이 바람따라 가다가 강물처럼 흐르다가 이곳 한반도 지형에 머물게 되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 한번 목청껏 불러보라. 목이 쉬거든 가까이 있는 장릉과 청령포 등 단종유적지와 동강, 서강, 김삿갓계곡, 영월책박물관, 곤충생태박물관, 별마루천문대, 영월고씨굴 등도 빼놓지 말고 둘러보자. 새로운 나, 새로운 세상이 그대를 애인처럼 품어주리라.

*보너스-한반도 지형 닮은 곳 / 1. 경북 성주군 금수면 성주댐 2.전남 무안군 몽탄면 영산강 유역 3. 충북 옥천군 안남면 둔주봉 4. 전남 해남군 송지면 땅끝 5. 충북 옥천군 서면 논골마을 6.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귤암리 7. 독도 8. 전남 여수 남면 안도리 9. 김천 무궁화공원 한반도 모양 소나무 10. 강원도 양구군 한반도 닮도록 조성한 습지

☞가는 길 / 서울-영동고속도로(하행)-중앙고속도로(하행)-치악휴게소-신림IC-지방도 88번-황둔-주천(다하누촌)-영월 한반도면 옹정리-선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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