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서신] 감기를 달고 사는 초등생 상우.. 친구가 없습니다

2010. 12. 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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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게 깔린 초겨울의 안개가 저에게 감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약국에서 일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하여 몸을 움직이면 기침은 안 나는데 잠을 자기 위해 몸을 누이면 발작적인 기침이 일어납니다. 기침을 하는 순간에는 기도가 좁아져서 순간 호흡이 힘들어지는 경험을 하곤 했습니다.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아픈 사람을 늘 만나고 그들을 치료해야 하는 약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환자의 아픔을 같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기도 하지요.

제가 아파보니까 몸이 아프다는 것이 마음까지 우울해지고 예민해지는 일임을 알게 되었답니다. 괜히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을 내고 짜증이 많아지는 제 모습을 보면서 '아 이럴 수도 있구나. 아프다는 일은 참으로 불편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얀 달이었습니다. 겨울 밤하늘에 외롭고 춥게 떠있는 하얀 보름달과 초등학생 상우는 참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한여름 어린이예배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 놀고 있는 아이들 속에 창백하고 하얀 얼굴로 구석에 앉아 있는 상우.

하루에도 몇 차례 땀으로 목욕을 하는 한여름에도 상우는 얼음 기둥에 서 있는 것처럼 서늘한 기운을 안고 삽니다. 아이의 건강이 걱정 되어 다가가서 아이의 손을 잡아 보았습니다. 아주 차가운 기운이 가득했고 얼굴에 약간 푸른빛마저 도는 상태였습니다.

며칠 뒤. 뛰어노는 상우를 발견하곤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아이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데리고 노는 강아지의 이름을 물어보니 신이 나서 대답을 합니다. "이렇게 하면 강아지는 이렇게 따라 돈다"고 하면서 교회 앞 작은 마당에서 한바탕 뛰면서 제게 묘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강아지와 몇 바퀴를 뛰고 난 상우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혔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우유를 사주고 손을 잡고 약국까지 함께 걸었습니다. 그 뒤로는 강아지와 함께 뛰어노는 상우를 종종 만날 수 있었지요. 한데 상우가 또래와 노는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친구가 없었던 것이지요. 너무도 자주 이사를 다닌 탓에 친구를 만들 수가 없었고, 학교생활을 적응하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없는 상우는 자기가 좋아하는 강아지와 하루를 보냈고 밤일을 하는 상우엄마는 그런 아이가 걱정되어 집 가까이 있는 교회 주일학교에 손을 이끌고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에 와서도 상우는 쉽게 어울리지는 못하였지만 점차 찬양과 율동 그리고 함께 나누는 기도와 교제로 어느덧 친구들과 손을 잡기 시작하였습니다. 찬 느낌이 드는 상우의 손을 시원하다면서 서로 잡기 시작한 주일학교 아이들이 참으로 예뻤습니다.

자신의 하얀 얼굴과 푸른빛이 도는 입술 그리고 일 년 내내 얼음처럼 차가운 자신의 손이 참으로 싫었다는 상우. 특히 겨울이 되면 감기를 달고 삽니다. 가슴이 답답한 아이는 목 감싸는 옷을 싫어하여 추운 겨울에도 목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탓에 기관지와 인후부위가 쉽게 감염 되고 만답니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기침을 하면서 아이가 하는 말은 괜찮다는 것이지요.

차가운 날씨에도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약국에 온 상우에게 "그렇게 다니지 말아야지 그러면 감기가 오래 간다"는 제 얘기에 쑥스러운 듯 괜찮다고 합니다. 자기로 인해 늘 걱정하는 엄마나 교회 전도사님께 미안한 아이는 그렇게 괜찮다는 말이 입에 붙었습니다.

기침을 많이 해서 제대로 음식을 섭취할 수도 없고, 기도를 막는 가래로 인해 편히 누워 잠을 자는 일조차 힘든 상우가 품고 있는 그 마음이 참으로 귀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주시는 크신 사랑은 오롯이 저희 몫으로만 온 것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접해본 일조차 없는 이들에게 저희가 통로 되어 흘러가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희의 삶은 아직도 많은 파이프들을 연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우는 자신의 몸보다 남을 배려하고 귀히 여기는 작고 아름다운 하나님 아버지의 축복 통로였습니다. 거창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닌 삶 가운데 졸졸 흐르는 샘물 같은 그런 통로 같은 삶을 살아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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