感에서 과학으로.. 이번 드라마는 몇 %? '광고업계의 베팅 공식'

2010. 11. 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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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2일 오후 8시30분. 텔레비전에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한국과 그리스의 2010 남아공월드컵 첫 게임이 시작되는 시간이자, 70부작 KBS 2TV '수상한 삼형제'의 69회가 한창 방송 중인 시간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광고주의 사활이 걸린 상황. 월드컵이 이길 것이냐, 시청률 30% 중반대를 기록 중인 대박 드리마가 버텨낼 것이냐. 광고주들은 15초에 9000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한 상태였다.

짐작의 법칙

시청률 예측은 광고업계의 오랜 난제다. 방영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의 성적, 배우·작가·PD의 역량 등 수많은 변수를 적절히 다뤄내야 한다. 통계이론으로 무장한 교수들이 동원됐고, 광고업계 전문가들이 나서기도 했다. 모두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했다.

진풍경은 계속됐다. 물건의 가치를 짐작한 채 팔고 샀다. '감'에 의지해 연간 2조원이 오고갔다. 짐작이 맞았는지는 상품이 전파를 타고 소진된 이후에야 확인됐다.

짐작은 이런 식이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한국 첫 경기 시청률과 비교해 2010년 월드컵 첫 경기 시청률을 예측해보는 것이다. 2006년 6월 13일 오후 10시 시작된 한국과 토고 경기 시청률은 KBS1 22.8%, MBC 33.4%, SBS 17.3%. 합계 73.6%였다.

'이번 월드컵은 단독 중계니 경쟁 프로그램이 있고, 경쟁 프로가 시청률 30% 중반대를 기록하며 마지막 회를 향해 달리고 있는 KBS2 '수상한 삼형제'니 꽤 영향을 받겠군. 그럼 축구 시청률은 50% 정도 될까?'

실제 월드컵 1차전 한국-그리스전 시청률은 49.9%였다. 전반전에 방영된 '수상한 삼형제'의 시청률이 22.9%를 기록하며 시청자를 앗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 이런 짐작이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다.

시청률 예측의 법칙

지난 7월 한국방송광고공사는 시청률예측실무협의회를 구성해 예측 모델 개발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신규 드라마 14편의 첫회 시청률을 예상해 내놨는데, 1회 방영분에 대한 시청률 예측치와 실제치 오차는 평균 1.9% 포인트에 불과했다.

성과에 고무된 공사는 이달부터 전회 시청률 예측에 도전할 계획이다. 1회 예측 시청률을 2·3·4회로 확대시키는 식이다.

공사의 시청률 예측법은 닐슨·TNS의 예측치를 바탕으로 한다. 닐슨은 7월 말 첫 방영했던 MBC '글로리아'의 1회, 2회 시청률을 각각 8.8%, 8.6%로 예측했다. 실제 시청률은 8.9%, 8.7%였다. 족집게 예측은 이렇게 이뤄졌다.

MBC의 주말 오후 8시대 올해 1∼7월 매달 평균 시청률은 지난 2년 대비 63.1%에 그쳤다. 지난 2년보다 시청자 수가 10분의 6 정도로 줄었다는 뜻이다. 지난 2년간 8월 오후 8시대 MBC 평균 시청률은 10.5%. 따라서 올해 8월 오후 8시 MBC 시청률은 6.6%(10.5×0.631)로 추정할 수 있다.

닐슨은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점유율을 활용한 예측 방식도 사용했다.

주말 오후 8시대 지상파 4개 채널 중 MBC의 점유율은 지난 3년간 평균 21.1%였다. 2007∼2009년 동안 주말 오후 8시에 텔레비전 앞에 앉은 시청자 5명 중 1명만 MBC를 봤다는 의미다.

지난 2년간 8월 오후 8시대 지상파 4개 채널 시청률 합은 55.1%였다. 그 시간대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 지상파를 시청한 가구가 100가구 중 55.1가구란 뜻. 따라서 올해 8월 MBC 주말 오후 8시대 시청률은 11.6%(55.1×0.211)로 예상됐다.

닐슨은 두 방법으로 추정된 시청률 예상치의 중간값인 9.1%(6.6%+11.6%/2)를 드라마 평균 시청률로 예상했다.

드라마 평균 시청률이 예상되면 회차별 시청률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MBC 주말 드라마 평균 시청률 대비 1∼8회 시청률은 1회 96.7%, 2회 94.6%였다. 9.1%를 이 공식에 대입해 보면 '글로리아'의 첫회 예상 시청률은 8.8%(9.1×0.967), 2회 예상 시청률은 8.6%(9.1×0.946)로 추정이 가능하다.

'제빵왕 김탁구' 시청률 50%는 어디로

지난 9월 16일, KBS2 '제빵왕 김탁구'는 50.8%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곧이어 시작된 드라마는 '도망자 Plan. B'. 1주일 간격으로 경쟁 채널 SBS에선 '대물'을 시작했다.

닐슨은 '도망자'의 1·2회 시청률을 모두 17.7%로 예측했다. '대물'은 각각 11.6%, 11.5%로 내다봤다. 하지만 '대물' 예측치는 실제 결과와 크게 달랐다. '대물'은 1회 20.2%, 2회 23.2%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배우·PD·작가가 누구냐에 따라 채널을 이동하는 시청자들의 행태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광고대행사 SK마케팅앤컴퍼니는 지난 1월부터 배우·PD·작가 요인이 반영된 예측 모델을 구축해 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신창석 PD, 조윤영 작가, 이서진 주연'의 드라마가 새로 시작된다고 가정하자. 신 PD의 전작 시청률은 '천추태후' 17.8%, '황금사과' 13.2%, 조 작가는 '신데렐라맨' 9.4%, '해변으로 가요' 13.7%, 이서진은 '혼' 9.5%, '이산' 33.5%다.

전작 평균 시청률은 신 PD 15.5%, 조 작가 11.55%, 이서진 21.5%가 된다. 작가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가정했으므로 조 작가의 시청률에는 1.1을 곱하고 신 PD의 값에는 0.9, 이서진의 값에는 0.6을 곱해 더한 뒤 평균값을 구한다.

이렇게 나온 예상 시청률에 닐슨의 조사 방식을 결합해 시청률을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제빵왕 김탁구'가 시청률 50%를 기록한 뒤 '도망자'와 '대물'이라는 대작 드라마가 맞붙는 상황은 좀 더 정밀한 모델을 필요로 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작가가 아니라 PD야!

-드라마 시청률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건 뭔가요?

"일반적으로 작가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한국방송광고공사 관계자)

"작가죠. 그래서 처음 만든 모델에선 작가 영향력이 가장 큰 것으로 전제했던 겁니다. 오랫동안 이 바닥에서 일한 광고구매팀의 감을 믿었거든요."(SK마케팅앤컴퍼니 미디어전략팀 관계자)

예측 모델을 정교화하기 위해 SK마케팅앤컴퍼니는 지난 5년간 드라마 시청률과 PD·작가·배우 각각이 얼마큼의 상관관계를 갖는지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시청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직군은 PD였다. 시청률을 100이라고 봤을 때 PD 기여분은 50에 달했다. 작가는 30, 배우는 20 정도였다. 개별 PD·작가·배우의 영향력을 수치화한 뒤 직군별로 평균을 낸 결과였다. '작가 영향이 가장 클 것'이라는 통념은 일부 대박 작가들 때문에 생긴 인상에 불과했다.

시청률에 영향을 미치는 PD·작가·배우의 순위도 가려졌다. PD는 '쾌걸춘향' '꽃보다 남자'를 연출한 전기상 PD가 1위였다. '이산' '서동요'를 연출한 이병훈 PD, '선덕여왕' '뉴하트'를 만든 박홍균 PD가 뒤를 이었다.

작가는 최현경('슬픔이여 안녕' '유리의 성'), 조정선('솔약국집 아들들' '며느리 전성시대'), 김도우('내 이름은 김삼순' '여우야 뭐하니'), 배우는 윤은혜('궁' '커피프린스 1호점'), 김래원('식객' '넌 어느 별에서 왔니'), 이요원('패션70s' '선덕여왕') 순이었다.

SK마케팅앤컴퍼니 관계자는 "2005년부터 5년간 방영된 지상파 드라마 255편 중 최소 2편 이상에 참여한 이들에 한해 조사한 결과다. 김수현 작가는 집필 작품 대부분이 시청률 20%를 넘겼으나 다작인 데다 30% 이상의 빅히트작이 부족해 3위 안에 들지 못했다"고 밝혔다.

SK마케팅앤컴퍼니 측은 이렇게 나온 개별 요소들의 영향력 수치를 반영해 더욱 정교한 모델을 구축하는 중이다. 최초 모델보다는 정확도가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힘들게 모델을 만들었는데, 이제 매주 예측 시청률을 발표하시나요?

"방송 광고를 구매할 때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내부 참고 자료로만 활용할 생각입니다. 외부에 공개하진 않을 겁니다."

광고업계에선 시청률 예측을 '신의 영역'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항상 신의 영역을 탐해 왔다. 누가 먼저 깃발을 꽂을 수 있을까, 달리기는 시작됐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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