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만난 '강도'..어, 총 꺼내는 거야?

2010. 11. 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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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오창학 기자]

▲ 심슨 사막 횡단

내게 가장 큰 행복은 바닷가 안락의자에 누워 있을 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 오창학

가장 큰 행복은

바닷가에서 안락의자에 누워 있을 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삶의 최고의 순간은

수동적으로 되거나 긴장을 푼 상태가 아니라,

육체와 정신이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을 때 다가온다.

행복은 당신의 마음속에 호기심의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느끼고

그 불꽃에서 열정이 불타오를 때 느껴진다.

진정한 행복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행복의 순간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 베르너 티키 퀴스텐마허, 로타르 J자이베르트의 < 단순하게 살아라 > 중

▲ 숙영지의 새벽

심슨 사막 둘째날 아침이 밝고 있다.

ⓒ 오창학

내 길을 간다

아침에 일어나니 생활용수를 담은 물통의 물이 반 넘게 줄어있다. 구멍이 났는지 물이 새고 있는 듯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제 사막 초입인데 헛되이 물을 낭비하다니... 청테이프로 구멍을 막아 응급조치는 했지만 그리 오래 가진 않을 것 같다. 염려가 되는지 다들 물 한 컵으로 세수를 끝냈다. 최 감독은 한 컵으로 세수를 하고도 남아 아예 머리까지 감겠다면서 호기를 부린다. 이 양반 물 쓰는 걸 보면 정말 야무져 빈말이 아닌 것처럼 들린다. 간밤에 최 감독이 그랬다.

"사막에 오니 뭐가 좋은지 알아요?"

"뭔데요?"

"각시가 씻으란 말을 안 한다는 거..."

씻기를 싫어하는 최 감독과 그걸 두고 보지 못하는 경숙은 날마다 그 문제로 실랑이였다는데 사막에 오고 나서는 그 말이 쏙 들어갔단다. 하긴 사막에서 세수라니, 비록 물 한 컵이지만 이것도 사치지. 사막은 당연한 듯 받아들였던 일상을 접어두게 하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다.

▲ 물 한 컵의 세수

물을 아껴야 하는 사막에서는 한 컵이면 세수가 끝난다. 알뜰한 최 감독은 한 컵 물로 세수를 하고 머리라도 감을 기세다

ⓒ 오창학

계란프라이와 볶음밥으로 아침을 때우고 텐트를 걷었다. 어젯밤 순식간에 잠자리가 마련된 것 만큼이나 빠르게 우리의 흔적이 지워졌다. 뼈에 스미는 한기를 막고 광막한 자연을 정원으로 바꿔주었던 그 방패들이 몇 덩어리 짐으로 변했다. 하루 내 몸을 맡겼던 공간은 위성좌표와 기억으로만 남았다. 어디 이뿐일까. 머물다 사라져야할 상황이. 천 년을 살 것처럼 누리고 뿌리를 뻗지만 누구나 내일이면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지금처럼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루프렉 위에 올라 붉은 깃대를 다시 손보았다. 모래 언덕을 넘는 마지막 순간에 운전자가 볼 수 있는 것은 파란 하늘과 하늘에 코를 박고 있는 보닛의 끝자락뿐이다. 만에 하나 그 순간 그렇게 사구를 넘는 대항차가 있다면 충돌할 수도 있다.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깃발을 범퍼나 지붕에 높게 달아두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병렬사구로 이루어진 심슨 사막에 진입할 때는 필수로 깃발을 부착해야 하는데 버즈빌 가게에서 판매하는 것은 몇 만 원이나 해 부담이다.

그때 공을 세운 이가 최 감독이었다. 용케 버려진 플라스틱 파이프를 주워와 그 끝에 내 붉은 손수건을 매달아 세웠다. 그 뒤로 그에게 '딩고'라는 별명이 추가됐다. 프레이저 아일랜드에서 모래사장 깊숙이 묻어둔 낚시꾼들의 생선잔해를 기가막히게 찾아내는 딩고들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사막 야영지에서 잃어버린 머리끈이나 젓가락까지도 부탁만 하면 죄다 찾아내는 최 감독은 '인간 딩고'였다. 우리 일정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일을 맡아 그림자처럼 움직이고 있음에도 언제 어디서든 존재감이 느껴졌다.

여기서 깃발이 된 나의 붉은 손수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빛이 주는 선명함 때문이다. 예전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칭하이성으로 갈 때 아얼진 산맥을 넘으며 아내는 자동차(백구) 짐칸 선반에 붉은 손수건을 묶었었다.

무사운전을 기원하며 붉은 천을 묶는 그 지역 풍습에 기댈만큼,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자의 마음은 작고, 낮았더랬다. 다시 사막을 움직이는 지금 공교롭게도 붉은 손수건이 지붕 위에서 나부끼고 그때처럼 마음은 작아져 있다. 작다는 말은 소심하다는 말이 아니라 심장의 울림에 귀 기울일 수 있다는 말이다.

▲ 깃발, 짐꾸리기

모래 언덕(Sand dune)이 많은 심슨 사막에서는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깃발을 차에 높게 설치해야 한다. 모래 언덕을 넘을 때 마주 오는 차량이 있을 경우 차보다 먼저 깃발을 감지할 수 있다.

ⓒ 오창학

짐을 얹은 루프렉의 고무 바를 촘촘히 쟁여 매는데 내 심장의 울림이 들린다. 모세혈관까지 펄떡이게 하는 기대와 긴장의 힘, 나는 더 이상 크지 않다는 겸손. 그러면서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만이 느끼는 흥분. 이럴 때 꼭 그런 말이 떠오른다. '가장 큰 행복은 바닷가 안락 의자에서 몸을 풀 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육체와 정신이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을 때 다가온다'는 말이. 행복하다. 오늘 가야할 길에 무엇이, 어떤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서, 누군가의 뒤를 따르지 않고 내가 내 길을 찾아 달릴 수 있어서.

사막의 공포 '아로케이완'

오전 내내 끝나지 않는 모래 언덕 넘기가 이어졌다. 제법 순조로운 진행이다. 그런데 사구를 거의 다 올랐을 때 촬영을 위해 후진하다가 그만 모래에 빠졌다. 같은 말이라도 '모양이 예쁘다'와 '간지가 난다'의 어감이 다른데, 오프로드에서 흔히 쓰는 표현을 쓰자면 제대로 '스턱(Stuck)'된 것이다. 저단 기어로 경사면을 이용해 단숨에 모래를 헤치고 나오려던 욕심이 바퀴를 더 묻었다. '제 무덤을 판다'는 속담이 정말이지 딱 이 상황이다. 내려서 보니 바퀴가 세 개나 모래에 잠겨 있다.

"도대체 왜 다 오르지도 않고 차를 빼냐고욧!"

"그만 하랄 때 그만 하지, 왜 자꾸 고집을 부려서 땅을 파요!"

걱정에 찬 여인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당신은 왜 차를 후진하라 해서 이런 일을 만들어!"

불똥은 촬영을 위해 차를 뒤로 빼라 지시했던 최 감독에게도 떨어졌다. 스톡턴(Stockton) 비치의 교훈이야 낯섦 때문이라지만 빅레드까지 넘은 마당에 이렇게 된 건 분명 인재(人災)가 맞다. 방심이 부른 참화다. 그래서 대꾸 한 마디를 못했다. 바람이 한 점 쏴하고 이마를 훑고 지나간다. 가시거리 전부가 막막한 사막인데 차는 모래 속에 있다. 여인들의 걱정은 무게를 더한다.

모래 탈출용 알루미늄 판을 깔고 삽질로 바퀴 아래 모래를 파내고 재시도해도 차만 더 깊이 가라앉을 뿐이다. 답답한 마음에 윈칭을 하려해도 사방이 모래와 잡목뿐이어서 고리를 걸 데도 없다. 그나마 조정기를 연결하고서야 윈치가 고장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 차례 아내의 야단이 쏟아졌다. 그것도 미리미리 점검을 안 했다고.

그래 당신의 막막함이나 두려움은 알지. 그러나 어쩌겠어? 이미 차는 모래에 빠졌고 의지할 만한 것은 기대를 저버렸는 걸.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밖에. 초조해하는 여인들을 언덕에 세우고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삽자루를 잡았다. 묵묵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어설피 시도하면 더 깊이 빠질 뿐이다. 차체에 닿은 모랫바닥부분을 다 파내고 난 후에야 시도할 것이다. 몇 시간 뒤가 될 수도 있고, 오늘이 지난 다음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다 파낼 것이다. 그런 후에야 바람을 더 빼고, 모래에 물을 끼얹어 표면을 단단하게 하고, 아니야 이건 아니지. 시간보다 물이 더 소중한데... 또 실패하면 하루 더 파지 뭐.

얼마나 흘렀을까. 혼자 궁시렁궁시렁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모래를 파는데 경숙의 외침이 들렸다.

"차다!"

언덕에 올라 보니 정말 먼 발치에 모래가 이는 것이 보인다. 사람이 앉으면 눕고 싶다 했던가? '일찍 좀 나타나지, 땀 빼고 나니 이제야' 하는 마음이 든다.

▲ 모래에 빠지다

모래 언덕에서 스턱되어 바퀴 세 개가 가라 앉았다. 사막에서는 윈치를 걸만한 장소를 찾기가 어렵다. 차 바닥의 모래를 하루종일 파내야 하는 상황인데 다행히 구원의 차량이 나타났다.

ⓒ 오창학

그들이 얼마간의 수고 끝에 공기압을 더 빼고 스트랩 바를 연결해 우리 '패트롤'을 빼내는 사이 다른 한 팀이 또 도착했다. 사구 아래에 여러 대의 차가 정차해 있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필요할 땐 망망한 모래뿐이고 차 한 대가 귀하더니 때 아닌 사막의 교통체증이다. 지금 움직이고 있는 큐에이에이 라인(QAA Line)은 프렌치 라인(French Line)과 리그 로드(Rig Road)가 합쳐지는 구간이고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에겐 사막을 빠져나가는 유일한 통로여서 이렇게 쉽게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래저래 운이 좋다. 나 외의 사람이 있어 고마운 공간이 사막이다.

우리를 구난해준 이들이 물은 얼마나 있는지, 연료는 얼마나 되는지, 위성전화기는 가지고 있는지 묻는다. 여러 대로 팀을 이루어 움직이는 이들은 한 대로 들어온 우리가 걱정스러운가 보다. 또 우리가 모래 언덕을 오르지 못하고 갇혔다고 여기는지 앞으로의 길은 더 험해진다며 염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무전기를 채널 10에 맞추고 가면서 수시로 자기 위치를 알리고 다른 이들의 위치를 파악하라 조언한다. 채널 10은 비상채널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여기서는 공용채널로 이용되는가 보다.

그들이 가고 난 후 아내가 심각해졌다. 빠질 곳이 아닌 곳에서 무식하게 빠졌다며 언성을 높였다. 방심하고, 철저하지 못했던 내게 무척 화가 났나보다. 이게 어디 단순히 화 때문이랴. 가야할 사막길이 아직 구만 리인데 벌써부터 어이없는 일로 어려움을 겪었으니 그 두려움이야 오죽했을까.

만약 차가 두 대만 되었어도 모래에 빠지는 일쯤 문제랄 것도 없다. 그러나 동반 차량이 없기에 그 별것 아닌 일이 하루 동안 탈진하도록 모래를 파내게 할 수도, 언제인지 모를 구조의 날을 기다리며 물과 음식이 떨어질 때까지 그 자리에 눌러앉게 할 수도 있다. 어디 모래뿐이랴, 차 한 대로 사막에 들어서는 행위는 사소한 모든 것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배터리가 방전되어도, 전륜 허브 하나만 작동되지 않아도 그대로 사막에 갇힐 것이다. 아내는 마음속에 있던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을 보고 적이 불안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싹싹 빌었다. 다시는 빠지지 않겠다고, 걱정을 끼치지 않겠다고 달랬다. 나 하나를 믿고 이 길에 들어섰는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였으니 모두 아내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누그러졌는지 아내는 샌들 말고 운동화를 신으라며 역정의 화살을 돌린다. 모래 사이에 난 풀은 온통 가시를 품고 있어서 맨발에 샌들로 그 풀을 쓸고 다니는 내가 걱정스러웠던 같다. 내 걱정을 하는 걸 보니 화는 좀 풀린 게다.

▲ 심슨 사막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병렬 사구의 연속

ⓒ 오창학

사구를 오르내리며 끝없는 앞을 향해 움직이다 보니 아까의 경직된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다. 울퉁불퉁한 모래들 덕에 요동은 심하지만 차 안은 화기애애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그런데 채널 10에 맞추고 언덕을 향해 오를 때마다 조수석의 최 감독이 '디시즈 아로케이완.위알 고잉투더 웨스트'를 반복한다.

다들 '아로케이완'이 궁금해 죽겠다는 투다. 무엇이냐 물으니 'R.O.K 1(Republic of Korea 1)'이란다. 사막을 항해하는 우리 콜사인을 '대한민국 1호차'라 스스로 명명한 것이다. 하긴 지금 이 사막에서 무전을 듣는 팀 중에 왜 당신들이 대한민국 1호차인가? 그럼 우린 2호차란 말인가,하며 항의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그래 이런 때나 그런 이름을 막 써먹는 거지 뭐.

"그런데 그렇게 작명하면 국가망신 시키는 것 아닐까? 모래에나 막 빠지고. 겁도 없이 차 한 대로 돌아다닌다고"

경숙이 웃으며 토를 달았다.

"하긴 아까 우리 구해준 사람들이 무전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소문냈을 거야. 무전기도 안 켜고 차 한 대로 돌아다니는 한국 아이들 조심하라고."

"그래 게네들 만나면 피하라고 소문났을 거야."

"아냐, 우리가 한국인 거 몰랐을 걸?"

"지금 광고하잖아 알오케이 원이라고."

"우리 루트를 개척해야 되는 것 아냐? 아로케이완 루트를···"

"그런 짓 절대 하지 말라잖아요. 정해진 트랙 외에는···"

각자 목소리를 높여 말하며 왁자지껄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최 감독은 여전히 '아로케이완'을 외치고 있다. 이 음은 전파를 타고 사막에 공명할 것이다. 공포의 이름으로.

'공간'이 '장소'가 되다

▲ 다채로운 사막길

끝없는 모래의 연속이자만 그 형상은 다채롭다

ⓒ 오창학

사막은 사막의 모습으로 정형화돼 있지 않다. 사막에서 뜬금없는 개울(Creek)을 만나기도 하고 사람 키가 넘는 나무들이 자란 숲 비슷한 곳을 지나기도 한다. 펄이 굳어 있는 지대도 있으며 모래로만 끝없이 이어지는 구간에서도 그 빛깔만큼은 서로 제각각이다. 이런 사막의 모습을 차창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가끔은 시동을 끈 채 모래를 직접 느껴보기도 하며 완상할 수 있다는 게 꿈만 같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 내가 섬으로써 심슨 사막은 기하하적 측량 가능의 물리적 공간이 아닌, 내 기억과 특수한 연을 맺은 '장소'가 되었다. 이제 나는 이 지명을 지도나 매체에서 접할 때마다 객관적이고 타자화된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모래 내음 풀풀 나고, 아름다움과 땀의 기억이 버무려진 개인적 장소로 떠올리게 될 것이다.

사막 여행중에 이곳에서 겪는 공간의 장소화 과정은 땀과 더불어 심장의 박동을 동반한다.

그러면서 자기를 한 번 더 돌아보게 한다. 마흔에서 둘이 빠지는 나이. 나는 젊은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오늘 스노클도 없는 차로 작은 강이나 내를 만났을 때 많이 망설였음에도 차를 돌린다거나 이제까지의 길을 후회한다거나 하는 마음은 없었다. 오직 전진만이 있었을 뿐.

내 앞에 나타난 난관에 고마워하며 진흙길과 모래 언덕을 넘었다. 그때 나는 젊다는 생각을 했다. 피부가 탱탱해서, 호적에 기록된 절대 연령이 얼마 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꿈꾸는 마음, 가능성에 대한 나의 자세를 읽었기 때문이다. 세포가 노화하는 것은 인간이 겪는 필연이겠지만 정신이 노화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저주를 부르는 입

호밀식빵에 잼을 발라 차 안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그늘이 없이 햇빛에 노출된 것도 이유지만 파리떼의 공격에 음식을 펼쳐놓을 수 없었다. 그냥 서 있을 땐 견딜만 한데 도대체 얼굴에 뚫린 입구멍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드는 녀석들과 음식을 구별하며 씹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침과 저녁 식사 중엔 저 녀석들을 볼 수 없는 것도 큰 복이다.

점심 이후의 모랫길은 굴곡이 심하다. 사람의 장기를 포함해 차내의 모든 물건들이 들썩거리게 했다. 뒷좌석에 탄 아내는 손잡이를 잡고도 튕겨져 오르기를 반복한다. 이러다가 차체의 부속 나사 하나까지 다 풀리지는 않을까.

루프렉에 얹은 땔감용 나무들이 요동치는 것 같아 차를 세우고 점검하려는데 실내적재공간에서 물이 떨어진다. 열어보니 10리터 플라스틱 생수통이 터졌다. 워낙 차가 덜컹거리다 보니 짐과 짐끼리 부딪치는 마찰로 밑이 뜯긴 탓이다. 아.....이런, 최 감독이 말한 모든 게 실현되고 있다. 그래서 무섭다.

"모래에 빠지는 장면이 있어야 그림이 사는데....."

그러더니 정말 언덕에서 갇혀 국제적 근심을 샀었다.

"사막에서는 물도 좀 떨어져서 고생하는 장면도 좀 있어야...."

그런 말 후엔 80리터 중 밤사이 생활용수 10리터가 땅에 스며들었고 지금 차 안에서 식수 10리터가 허망하게 날아갔다. 하루치 분량의 물이 그냥 증발한 것이다. 행여 있을지 모르는 일에 대비해 2~3일치 물을 더 준비했고 80리터에 포함되지 않은 비상용 생수병이 몇 병 있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일들로 소진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차를 옆으로 대고 트렁크에 적재된 짐들을 빼내 젖은 바닥을 닦아내고 종이박스로 포장된 생수봉지들을 꺼내 다시 정리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20리터 예비연료통 하나를 주유해 실내공간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줄였다. 다시 차에 타 출발하려는데 이 모든 과정을 캠코더에 담은 최 감독이 한 마디 했다.

"이제 타이어만 한 번 터져주면 그림이 제대로 나오겠는데..."

"아악, 그만!"

우리 모두가 동시에 소릴 질렀다. 사막에서는 모래에 빠지거나 물이 떨어져 어려움을 겪는 장면이 들어가야 영상이 산다고 누차 말했었는데 그의 말대로 모래에 빠졌고 물은 자꾸 어이없는 일로 없어졌다. 갇혔을 때도 긴장했는데 물까지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또 다른 악재를 부르는 사악한 주문에 기겁을 한다. 아, 저주를 부르는 저 무서운 입이여.

▲ 심슨 사막

모래에 빠지고 물이 터졌지만 사막의 항해는 계속된다.

ⓒ 오창학

사막의 강도?

사막에서 만나는 여행자들은 사람을 반긴다. 대개는 좋은 여행이 되라 인사를 건네고 자신이 지나온 길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다. 오늘 구간은 거의 열 팀도 넘는 무리를 만난 것 같다. 그런데 오후 늦게 만난 차 한 대는 느낌이 이상하다. 교행을 위해 트랙에서 비켜서길래 지나려는데 운전자가 내려 다가온다. 눈이 풀린 채 불쾌한 모습이 잔뜩 취했다. 수염이 부슬부슬한 그를 보는 순간,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부부동반으로 혼성팀을 이루어 움직이는 대열을 볼 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차 한 대로, 혼자 움직이는 사람은 경계가 된다.

본능적으로 문을 잠갔다. 운전석으로 다가온 그에게 반쯤만 창문을 개방했다. 흉기를 꺼내더라도 피해를 입지 않을 만큼만. 그리고 기어를 넣고 브레이크 위에 얹은 오른발은 언제라도 액셀을 밟을 태세가 되어 있다.

"맥주 좀 팔지?"

그의 용건은 맥주였다. 자신의 맥주가 다 떨어졌다면서 있으면 좀 팔라 한다. 의심이 되면서도 사막에서의 인심은 또 그게 아닌지라 일단 내려서 트렁크를 열고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꺼냈다.

"한 팩 다 샀으면 좋겠는데...."

"없어. 이게 다야."

그는 더 원했지만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사실은 더 있다. 냉장고 말고도 부식박스에 여분은 있었다. 그러나 이미 취할 만큼 취한 상태였고 더 이상의 술이 그에게나 남에게나 좋을 게 없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 사람이 뒷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식겁했다.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다. 나도 연장을 찾았어야 하나? 최 감독이 내 뒤로 다가와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그가 빼어든 것은 흉기가 아니라 지갑이었다. 아웃백에서의 흉흉한 소문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혼자 엉뚱한 의심을 했다.

"얼마지?"

그는 맥주값을 지불하려 했다.

"아냐, 선물이니 가져."

"고맙다."

비틀거리는 그를 남겨두고 떠나오면서, 사람을 의심했던 나 자신을 자책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아웃백에 떠돌던 흉흉한 소문처럼 악의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대책은 있는 것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사막은 사람 때문에 고맙고 사람 때문에 무서운 공간이 될 수 있다.

사막의 밤

오후 6시 30분. 해가 지고 있다. 포펠 코너 조금 못 간 지점에서 멈추었다. 오늘 하루 움직인 거리 122.8Km. 아침만 해도 포펠 코너까지 못 가겠나 싶었는데 여의치가 않다. 모래 언덕을 헤치며 나아가는 것도 그렇지만 사막의 모습을 그냥 두고 나가는 것은 더욱 쉽지 않았던 탓도 있다. 어차피 목적지가 따로 있기나 하겠는가, 그냥 그날의 해지는 지점이 목적지인 것을.

▲ 걸인의 아침, 왕후의 저녁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은 한 끼를 때우는 의미이나 고단한 하루를 마친 저녁은 성찬을 차렸다.

ⓒ 오창학

능숙한 솜씨로 텐트를 치고 식탁을 폈다. 경숙의 주도 아래 저녁상이 차려졌다. 모닥불에 익힌 호주산 스테이크와 소스가 준비되고 오렌지와 야채볶음, 그리고 버즈빌호텔에서 싣고 온 빅레드 와인이 곁들여졌다. 대충 밥 볶아먹었던 걸인의 아침에 비하면 왕후의 저녁이라 할만한 만찬이다.

부른 배를 안고 모닥불 앞에 앉았다. 불 쬐고 담소하는 것 외에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사막의 별밤 아래 '행복'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최 감독이 소감을 묻기에 프레이저 아일랜드에서 했던 말을 응용해 또 이렇게 말했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심슨 사막에서 밤을 지내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 사막의 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심슨 사막에서 밤을 지내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 오창학

심슨 사막을 횡단할 때 유의할 점

▲ 심슨사막 여정도

버즈빌과 마운트 데어까지는 연료와 음식을 구할 수 없는 무인 지경의 모래 사막이다. 프렌치 라인과 리그 로드 중 어느 루트를 따르느냐에 따라 거리는 달라진다. (화살표 표시는 2일차 진행 거리임)

ⓒ 오창학

- 당신의 차는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가?

수리의 능력보다는 고장이 나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차량의 연식이 좋고 관리가 잘 된 것이어야 한다. 렌터카의 경우 가급적 연식이 오래되지 않은 것을 계약하고 사막 진입 전 정비소에서 꼭 점검을 받아보아야 한다.

- 수리공구, 예비부품, 에어컴프레서, 그리고 2개의 예비타이어를 확보하고 있는가?

기본 수리공구는 갖추어 응급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타이어 펑크 수리 용품은 필수 준비물이다. 또 사막 모래에서는 공기압 조절이 중요하기 때문에 노면 상황에 따라 공기압을 보충하고 경우에 따라 타이어 펑크를 수리해야 하므로 에어컴프레서는 꼭 좋은 것으로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사막 뿐 아니라 아웃백 여행에서는 예기치 못한 타이어 펑크가 쉽게 일어나므로 2개의 예비타이어가 필수다. 이를 어긴 자의 마음고생과 위험도가 어떠한지는 차후 필자의 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연료는 충분한가? 디젤은 최소 180리터 이상, 가솔린은 최소 250리터 이상 준비하라.

사막 관통만 생각한다면 낮은 알피엠에서 큰 토크를 낼 수 있는 디젤차량이 연비면에서 유리하다. 사륜구동으로 모래를 움직일 때에는 일반 도로 연비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 한 사람당 1일 7리터의 마실 물을 확보하고 있는가?

파출소나 인포메인션에서는 이 정도의 물을 요구하나 이건 여름 상황에다가 최대 수요의 가정이라고 본다. 뜨겁지 않은 계절에 움직인다면 평상시의 경우처럼 1일 2리터의 마실물과 생활용수(양치질, 취사)요 1리터를 감안해 1인당 1일 3리터의 물이면 가능하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일정의 지연과 조난 등의 위기상황에 대비해 적재량이 허용하는 한 많은 물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한 탱크에 가득 담는 방법보다는 여러 용기에 분산시키는 방법이 좋다. 버즈빌을 포함해 호주 전역에서는 10리터나 15리터 용기에 담아 파는 물을 구입할 수 있다.

- 위급상황 시 RFDS(로열 플라잉 닥터 서비스)와 연락할 HF 무전기를 가졌는가?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구조 요청을 할 수 있는 통신 수단을 반드시 강구해야 한다. 위성전화기도 임대가 가능하니 꼭 준비하도록 하고 차선책으로는 HF무전기를 준비하는 것도 좋다. 또 좁은 트랙을 따라 사구를 넘을 때 마주 오는 차량이 있다면 충돌할 수도 있다. 생활무전기가 있다면 다른 차량의 교신 내용을 듣고 경계하거나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 좋다.

- 사막 패스(Desert Pass)을 지녔는가?

반드시 인포메이션 등에서 사막 패스를 끊어 유리창에 부착하고 운행하여야 한다. 비싼 대신 12개월 간 유효하다. 단 사막 안에서는 한 번에 21일 이상 머무를 수 없다.

- 1:25만 이상의 지도를 가지고 있는가?

사막 패스를 받을 때 딸린 안내책자에도 지도가 포함되어 있지만 이보다 세밀한 지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 기타 유의 사항

○ 석유개발을 위해 만들어졌던 트랙 이외의 길을 개척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차량이 트랙에서 500m이상 벗어나서는 안 된다. 야영도 트랙의 500m 이내에서 해야 한다.

○ 버즈빌, 혹은 오드나다타(Oodnadatta)에서 마운트 데어까지 프렌치 라인으로는 640Km, 리그로드를 이용하면 800Km이다. 그 안에서는 연료 및 음식물을 보급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단 씻을 물은 마운트 데어 직전의 달하우지 스프링에서 확보할 수 있다.

○ 화장실 일 볼 때 땅 깊게 파고 휴지를 묻어야 하는데 태우는 게 가장 좋다. 쓰레기도 매립이 금지되어 있다. 자기 쓰레기는 자신이 가지고 나와야 한다.

○ 당연한 말이지만 사막 내의 모든 동식물을 헤쳐서는 안 된다. 심지어 심슨 사막에서 모닥불을 피울 때는 땅에 흩어져 있는 나무만을 주워야 한다. 설사 죽은 나무라도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들은 날짐승들의 보금자리로 쓰이며 자연의 일부로 존재한다.

○ 안전운행

-뜨거운 계절에는 들어가지 마라(9월에서 3월까지)

-가급적 5일 안에 통과해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조금 더 쉽다

-지정된 트랙만 따라가라

-트랙은 단선이니 마주 오는 차를 조심해라

-과속은 사고를 부른다. 제발 천천히 운전해라, 제발 천천히.

-비가 온 후엔 길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려라

-사구를 넘을 때 차량 전복에 유의하라

-차량에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차 옆에 있어라(꼭 차를 두고 무슨 대책을 찾다가 체력이 고갈되어 죽는다)

○ 응급 전화번호는 00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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