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주리] 화가 김점선

2010. 10. 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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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들어간 어느 화랑에 걸려있는 김점선의 붉은 말 그림 앞에서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이제는 세상을 떠나고 없는 화가 김점선은 말을 닮았다.

푸른색 말 그림도 갈색 말 그림도 보았지만, 붉은 색 말은 그녀만이 그리는 유일한 말이다. 그 붉은 말을 타고 광활한 벌판을 씩씩하게 달리는 화가 김점선을 그려본다. 어쩌면 그녀는 그림 그리는 독립군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말 그림은 씩씩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섬세하고 감성적이고 관능적인 말 그림의 정체는 '김점선' 그녀의 안에도 역시 숨어있었을 것이다. "선생님 그림은 참 섹시해요." 내가 그렇게 말하면 그녀는 무지하게 크게 웃었다. 남성적이면서 묘하게 여성적인, 그 중성적인 매력이 정말 섹시했다.

숨 가쁘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에, 어눌한 듯하면서 선문답 같은 함축적 인생의 본질을 이야기하던 화가, 그냥 픽 던지는 듯하지만 그 안에 뿌리 깊은 내공을 담고 있는 그림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던 화가 김점선을 다시 생각한다.

말년의 그녀가 컴퓨터 그림을 그렸다 해도 그녀의 그림 언어는 결코 재생산될 수 없는 아날로그 정신의 산물이었다. 나는 김점선의 걸진 듯하지만 맑고 쩌렁거리는 목소리에서, 단순하지만 사물의 영혼을 그린 것 같은 그림에서, 헐렁하게 아무렇게나 걸친 그의 의상들에서, 발 디딜 틈 없이 어질러진 그의 워커힐 아파트 실내 공기 속에서, 그리운 아날로그 정신을 읽었다.

몇 년 전 그녀의 아파트에 한 시간 남짓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돌아간 남편의 방 흔적을 하나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었다. 벽에는 남편이 평생 동안 번 돈 전부라는 돈 20만원이 액자 속에 넣어진 채로 걸려있었다. 김점선 선생은 자신의 어떤 삶의 흔적도 치우거나 없애려 하지 않았다.

전시 때마다 사람들이 가져오는, 화분들과 꽃다발들이 아무렇게나 던져진 채로 박제되어 있는 베란다는 온갖 벌레들이 서식하는 그녀만의 식물원이었다. 아니 그림을 그리면서 삶을 영위하는 공간인 그녀의 아파트 자체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미 너무 낯선 우주였고, 신기한 박물관이었다.

캔버스 구석에 얼굴의 부분이 조그맣게 그려져 있는 그림에다가 선생은 '광개토대왕'이라는 제목을 붙였었다. 왜 이 그림이 광개토대왕이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광개토대왕은 너무 크고 위대해서 잘 안 보이거든…." 그때 나는 무릎을 치며 박장대소했다. 그녀에게는 뭔가 정말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녀는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 특별한 것을 가지고 떠났다. 그녀가 없는 지구는 좀 심심하다. 나는 말을 닮은 그녀가 한 30년은 더 저 광활한 벌판을 씩씩하게 달리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깊어가는 가을날, 우연히 들른 화랑에 걸려있던 김점선 선생의 말 그림이 나를 슬프게 한다. 우리는 많이 친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번 밥을 같이 먹었다. 모든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유일한 순간이다. 선생과 함께했던 유쾌한 순간들이 바로 어제처럼 떠오르는 2010년 가을이 떠나가고 있다.

황주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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