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집사세요, 연봉 1억 넘는 사람들은 됐고
[오마이뉴스 백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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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9일 결국 정부가 '부동산 거품 부양책'을 꺼내 들었다. 이번 8·29 대책의 핵심은 총부채상환비율(DTI)을 내년 3월까지 폐지한 것이다. 무주택자 또는 1가구 1주택자가 투기지역(강남, 서초, 송파)을 제외한 9억 원 이하의 주택을 구입할 경우 DTI규제를 시장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DTI규제가 사라지면 그만큼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액수도 늘어나게 된다. 결국 정부가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부추기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가계에 빚 폭탄을 떠넘기려는 정부
현재 부동산 가격 하락은 소득에 비해 너무 높은 주택 가격, 실질 구매력의 저하, 공급과잉, 세계경제 위기로 인한 심리적 문제 등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그러하기에 향후 부동산 가격의 추가 하락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말대로 덜컥 빚을 내어 집을 사게 되면 폭탄 돌리기의 폭탄을 떠안게 되어 가계가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의 이름을 '실수요 주택거래 정상화와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 방안'으로 정하는 등 서민, 중산층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서민, 중산층 가계를 희생 시켜 부동산 거품을 지탱하고 건설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감면혜택 2년간 연장, 건설업체에 3조 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 정부의 미분양 매입한도 확대 등의 정책들 역시 서민, 중산층을 위한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의 의도대로 가계가 대출을 받아 집을 살 경우 가계생활은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연소득 5000만 원(월 소득 약 415만 원)인 가구가 강남3구를 제외한 서울의 7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경우 기존에 LTV(담보인정비율) 50%, DTI 50%를 적용받아 2억9000만 원까지만 대출이 가능했다. 그러나 DTI규제가 없어지면 6000만 원이 늘어난 최대 3억5000만 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 가구가 3억5000만 원의 돈을 20년 만기(금리 연 6%) 원리금균등상환방식으로 갚아나갈 경우, 매월 약 250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월 소득의 60.2%에 달하는 금액이다. 연소득 3000만 원(월 소득 250만 원)인 가구가 5억 원짜리 아파트를 매입할 경우(2억5000만원 대출)엔, 위와 같은 조건으로 매월 179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소득의 71.6%다. 물론 이들 수치는 최대치이긴 하지만 적어도 소득의 절반 이상을 빚 갚는 데 써야 할 것이다. 정상적인 가계 생활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렇게 정부가 나서서 가계에 빚을 늘리도록 장려하는 것은 올바른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소득의 절반 이상을 빚 갚는 데 쓰는 경제가 정상적이고 건전한 경제라고 말할 수 없다. 결국 이는 다른 부분의 소비를 위축 시켜 또 다른 폐해를 낳을 것이다.
가계부채 문제와 정부의 무책임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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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내기를 권장해 주택거품을 유지하려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한국경제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른 가계부채 문제를 자극하는 것이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8월 26일 한국은행의 '2/4분기 중 가계신용'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순수 가계대출에다 판매신용을 더한 가계신용 잔액은 754조9000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가계신용은 2009년 3분기 700조 원을 넘어서면서 이미 빨간불이 들어온 지 오래다. 액수도 액수지만 증가속도가 가파르다. 2분기 가계신용은 1분기 가계신용 잔액에 비해 15조8000억 원이나 증가했다. 1분기 증가 폭 5조4000억원 보다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의 비중은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2분기 은행 가계대출 잔액 418조9000억 원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은 273조2000억 원으로 65.2%를 차지하며 통계가 만들어진 2003년 4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상호저축은행이나 신용협동조합 등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주택담보대출 341조6000억 원까지 포함하면 전체 가계대출의 60.1%에 달한다. 이 역시 사상 최고치다.
가처분소득에 대비한 금융부채 비율 역시 급속히 상승하고 있다. 1998년 84.7%였던 이 수치는 2009년 말 기준 152.7%까지 상승한 상태다. 이 기간 동안 68%p나 급증했다. 이는 부채 문제로 경제위기를 초래한 미국보다도 현재 높은 수치다.
하지만 정부는 가계부채 문제를 한국경제의 큰 위험 요소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 듯하다. 그동안 정부는 가계부채의 절대액수가 늘고 있지만 자산도 함께 늘고 있고, 부채를 많이 가진 가구는 고소득 가구라며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해 왔다. 정부가 이번 대책을 내놓은 것도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8·29 대책이 발표되기 전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DTI규제를 풀더라도 가계부채에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인식과는 다르게 가계부채 문제는 한국경제에 충격을 가져다 줄 뇌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자산의 대부분은 유동성이 떨어지는 부동산 자산
우선 한국 가계가 가지고 있는 자산은 대부분 부동산이다. 2007년 3월 통계청의 '가계자산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5월 말 현재 한국 전체 가구의 가구당 총자산 2억8112만 원 중 부동산이 76.8%, 금융자산이 20.4%로 부동산이 절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06년 자료이긴 해도 지금까지 큰 변동은 없어 보인다.
부동산 자산은 현금화하기가 어려운 자산이다. 부동산 자산이 현금화되지 못한다면 부채상환 능력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한다. 특히 지금과 같은 부동산 시장의 침체기에는 거래가 되지 않아 더욱 그렇다. 빚 상환에 허덕이던 가계가 부동산을 처분해 빚을 갚으려 해도 부동산이 팔리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특히 어떻게든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헐값에 팔게 되면 주택시장의 거품이 급속도록 빠져 한국경제에 더 큰 충격을 줄 수도 있다.
게다가 자산에 대한 금융부채 비율 역시 좋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은행 자금순환표상 개인부문의 금융부채/자산 배율의 경우 2010년 1분기 현재 46%수준이다. 이는 일본 20%대 초반, 미국 30% 수준, 영국 35% 수준보다 월등히 높다(현대경제연구원, '가계 재무구조와 수익성 악화', 2010.6.18).
전체적으로 부동산경기 침체기에 취약한 부동산 자산이 대부분이고 금융부채는 금융자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불안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부채에 대비해 자산이 많다고 하지만 한국 가계들의 자산구조는 위기에 취약한 구조이다.
소득이 적은 계층일수록 심각한 가계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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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저소득층으로 갈수록 부채문제의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정부의 주장대로 가계부채의 대부분은 고소득층에게 편중되어 있다. 전체 부채 중 5분위(소득이 높은 20%) 계층이 40% 가량의 부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저소득층일수록 부채의 절대적 액수는 작을지 모르나 부채상환 능력은 더욱 취약한 상태다.
저소득층으로 갈수록 부채의 절대적 액수도 줄어들지만 자산 역시 줄어든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 기준 전체 자산 중 5분위가 42.8%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 4분위 20.8%, 3분위 13.4%, 2분위 12.8%, 1분위 9.2%로 소득이 적을수록 자산 역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자산 대비 부채의 비율은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노동패널 조사에 나타난 2008년 기준 부채보유 가구의 소득 분위별 이자부 자산(예금+저축성보험) 대비 이자부 부채(금융회사+비금융회사 부채) 비중은 소득 수준이 낮은 1분위가 6.67배, 2분위가 7.96배였다. 고소득층인 5분위는 이 배율이 3.00배로 나타나 저소득층의 자산 대비 부채 부담이 고소득층의 2배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이 없는 1, 2분위는 이 배율이 14.45배와 21.61배에 달했다(연합뉴스, 2010.9.6). 저소득층일수록 부채위험에 더욱 취약하다는 것이다. 또한 소득분위별 1분위의 가처분소득대비 부채비율은 320% 가량으로 5분위 120% 정도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최근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대출이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 감지되고 있다. 올해 들어 은행 주택담보대출을 활용해 실제 주택 구매에 사용한 금액은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은행들이 제출한 대출 사용처 비율을 적용하면 주택 구매용 주택담보대출은 2009년 4분기 139조8000억 원까지 늘었다가 올해 1분기 134조4000억 원, 2분기 126조5000억 원으로 줄었다(연합뉴스. 2010.8.29).
주택담보 대출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주택 구매용 대출액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다른 용도의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는 경기 침체(대기업을 중심으로 외형적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있으나 서민 가계로 이어지지 않음)로 인해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서민층과 중소기업 개인 사업자가 주택담보대출로 운영 자금을 조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이 많은 가구에서 생계자금을 이유로 대출을 늘리지는 않았을 것임을 생각해 본다면 저소득층에서 대출이 늘어났다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는 저소득층의 부채 상환 능력이 더욱 취약해지고 있음을 예상케 한다.
정부가 이번 대책의 제목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번 대출 규제완화의 대상은 서민과 중산층 가계이다. 이번 대책은 9억 원을 초과하는 주택은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구의 연소득이 1억 원을 넘는 가구는 혜택을 볼 수 없다. 연소득이 1억 원 이상인 고소득 가구가 9억 원인 주택을 구입하더라도 LTV 한도 때문에 대출 가능 금액은 4억5000만 원으로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소득이 높은 계층일수록 DTI규제의 효과는 제한적이게 된다. 오히려 LTV규제에 걸리기 때문이다. 소득이 적을수록 상대적인 대출한도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결국 정부의 이번 대책은 자산과 소득이 많은 가구에게 빚을 내어 집을 사라는 것이 아니라 소득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구에게 빚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책으로 부채가 늘어날 계층은 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고소득층이 아니라 부채 문제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가계부채 문제에 더욱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주장대로 고소득층에 부채가 몰려있고 자산도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만을 되풀이해서는 가계부채 문제를 더욱 심각한 문제로 만들 뿐이다.
진정한 친서민 정책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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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 아니라 대출의 만기구조가 짧아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2010년 2분기에 신규로 나간 예금은행 가계대출 가운데 만기가 1년 이상 2년 미만의 비중은 33.2%로 1분기(23.5%)보다 대폭 확대된 반면 만기 2년이상 대출의 비중은 59.6%에서 53.8%로 감소했다.
게다가 한국의 가계부채는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꾸준히, 그것도 가파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세계가 부채축소의 과정에 들어가 있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국은행이 7월 기준금리를 올렸음에도 가계부채는 여전히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이는 향후 본격적인 금리상승기에 이자 부담이 더욱 가중된다는 것으로 가계현황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 것이다.
8·29 부동산 대책은 가계를 희생시켜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고 건설자본들의 잇속을 챙겨주는 것으로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 할 수 없다. 현 시점에서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권하는 것은 건전한 가계 경제를 꾸려나가는 것과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멀다.
이명박 정부는 현재 '친서민'정책이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걸고 있다. 하지만 가계에 일시적으로 대출을 늘려주는 방식으로는 진정한 친서민 정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늘어난 가계 빚은 향후 가계를 다시 짓누르게 될 것이고, 한국경제의 위험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진정한 친서민 정책이 되려면 빚을 권할 것이 아니라 가계 소득을 늘리는 방도를 적극 모색하고, 한국경제에 큰 충격을 주지 않는 방향에서 부채를 서서히 줄여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부동산 거품유지를 위해 각종 부동산 대책들을 내놓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을 생각하면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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