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왜 표절이야? '참고' 한 거지"

2010. 7. 27. 14: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임정훈 기자]

지난 22일 보도한 의정부 성희롱 교장 관련 기사 화면.

ⓒ 화면캡쳐

지난 22일 경기도 의정부의 한 초등학교 교장이 교사들을 성희롱했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기사 ("처녀 맞아? 임신한 거 아냐"... 개념상실 성희롱 교장)를 < 오마이뉴스 > 에 올렸습니다. 19일부터 진정서 등의 자료와 제보를 받고 22일 오후까지 내용을 취재하고 이해 당사자들과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하는 등 구체적인 정황과 사실을 확인한 후 쓴 글입니다.

이 기사는 < 오마이뉴스 > 는 물론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서도 주요기사로 배치됐고, 기사 하단엔 해당 학교장과 교육청을 꾸짖는 누리꾼들의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해당 학교 피해자들은 그날 밤 늦게까지 제게 감사를 표하며 자신들의 억눌린 이야기를 잘 풀어주었다고 눈물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이 건과 관련된 < 한국일보 > 와 < 연합뉴스 > 기사가 제 기사와 아주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내용의 일부가 아니라, 그들 기사의 핵심 내용을 담은 문장 전체가 제 기사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제 보도가 나간 후 지난 23일과 24일에 걸쳐 벌어진 일입니다. 그들 기사의 끝에는 '무단전재-재배포금지'라는 저작권 표시가 그림자처럼 붙어있었습니다.

급하게 '베껴' 쓰다 사실관계도 틀린 < 연합뉴스 >

내 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 한국일보 > 보도.

ⓒ 임정훈

기사 내용의 일부를 인용하거나 출처를 밝히고 가져다 쓴 것이 아니라 사실상 무단 전재에 가까운 일을 저지른 그들에게 24일 오후 각각 전화를 걸었습니다.

확인한 결과 그들은 진정서 등의 기사 작성에 기초가 되는 자료를 전혀 확보하지 못했고 해당 학교장이나 교사들과 통화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마치 진정서를 확보하고 교사들을 직접 취재한 것처럼 < 한국일보 > 가 먼저 제 기사 내용을 토대로 쓴 기사를 23일 올렸고, 이를 < 연합뉴스 > 기자가 24일 다시 그걸 가져다 기사를 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심지어 수시로 공적·사적인 자리에서 여교사들을 상대로 "예쁘다, 못 생겼다, 주름이 많다, 내 스타일이 아니다, 쓸개 빠진 년, 넌 내 옆에 앉아라, 내 무릎 위에는 아무나 못 앉는다, ○○이가 입술을 많이 빨아주었냐?, 결혼을 안 한 노처녀라서 그렇다, (미혼 여교사에게) 처녀 맞아? 임신한 거 아니야?" 등의 직설적이고 성희롱적인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

교사들은 진정서에서 "L교장은 공적 사적인 자리에서 여교사들에게 '처녀 맞아, 임신한 거 아니야' '주름이 많다' '내 스타일이 아니다' '쓸개 빠진 ×' '내 무릎 위에 아무나 못 앉는다' '누가 입술을 많이 빨아 주었나' 등의 모욕적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 한국일보 >

교사들은 진정서에서 올해 3월 부임한 B교장이 공적?사적인 자리에서 수시로 '처녀 맞아? 임신한 거 아니야?', '결혼을 안 한 노처녀라서 그렇다', '누가 입술을 많이 빨아주었나?', '쓸개 빠진 ×' 등 모욕적인 성희롱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 연합뉴스 >

이 밖에도녹색어머니회 등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 활동이나 김상곤 교육감의 무상 급식 정책에 대해서도 "녹색 ×들이 교장을 길들이려 한다" "김상곤이 (재선)되면 애××들 밥처먹이는 데 돈 다 쓴다"는 등 상식 이하의 발언을 했다고 진정서에서 밝혔다. 그는 또 교직원 친목회가 주관하는 연수에 개입해 강원 정선군의 카지노로 장소를 정하도록 하고 참여를 거부하는 교사들에게는 사유서를 쓰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 한국일보 > 진정서에 따르면 B교장은 또 녹색어머니회 등의 활동을 하는 학부모들을 가리켜 '녹색×들이 교장 길들이려고 한다', '개념 없는 ×' 등의 욕설을 했다. // B교장은 교직원 친목회 주관의 연수에도 개입해 장소를 강원도 정선의 카지노로 정하고 참여를 거부하는 교사들에게 사유서를 쓰도록 강요했다고 교사들은 주장했다. < 연합뉴스 > 등의 내용 역시 < 오마이뉴스 > 를 통해 보도한 제 기사 내용을 '짜깁기' 한 것들입니다.

사실 이런 건 언론계의 오랜 관행입니다. < 연합뉴스 > 기자는 이런 사실을 태연히 말하더라고요.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게다가 < 연합뉴스 > 는 얼마나 급히 베껴 썼는지 일부 내용의 사실관계도 틀렸습니다.

< 연합뉴스 > 기자에게 베껴 쓴 내용도 그나마 틀렸다고 했더니, 정말 뭘 잘 모르는 말투로 뭐가 틀렸냐고 묻더라고요. 왜 취재를 않고 남의 것을 베껴 쓰느냐 물었더니 "토요일이라 취재를 못했다"고 하더군요. "취재를 못했으면 기사를 안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시 물었더니 침묵.

그들은 자신들의 기사 본문에 있는 진정서 내용 등은 모두 제 기사에서 가져간 것이라는 걸 인정했습니다. '표절' 아니냐고 했더니 그들은 표절이 아니라 '참고했다'는 표현을 사용하더군요('표절'이 아니라 '참고'다 --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닙니까!).

< 한국일보 > 기자는 제 기사를 "'참고'한 건 맞다"면서도 자신이 '취재'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말한 '참고'와 '취재'라는 건 이런 겁니다. 제 기사의 내용을 사실상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이 '참고'이고, '취재'는 제 기사의 내용을 교육청 담당자에게 읽어주고 이게 사실이냐를 물은 게 전부입니다. 참 기사쓰기 쉽죠~ 잉! 기사는 발로 쓰는 것이라는데….

그러고는 "(제 기사를) 참고해서 취재해서 쓴 것"이라고 우기는 겁니다. 두 기자 모두 이구동성으로 한 말입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 모두 '그게 뭐가(왜) 문제냐'는 식의 반응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문제제기를 하는 제가 이상하다는 투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항의하며 표절한 기사를 내리라고 요구했더니 "(제 기사를) 참고해서 취재한 것이므로 내릴 수 없다, 마음대로 하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마추어' 기사를 훔쳐 쓰는 '프로' 기자들

내 기사를 표절하거나 짜깁기한 < 연합뉴스 > 보도.

ⓒ 임정훈

이토록 추한 언론계의 오랜 관행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당당한 그들이 불쌍하고 안쓰럽기까지 했습니다. 공직자나 대학교수 등의 논문 표절이 불거지면 이들은 도덕성·윤리성을 운운하며 그를 비판하는 기사를 또 쓰겠지요? 제 눈에 박힌 대들보는 보지 못한 채 말입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기자 노릇'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전문가, 그러니까 '프로'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 아마추어인 시민기자의 기사를 사실상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더욱 서글픕니다.

사실 앞서 언급한 두 언론뿐만 아니라 이름 있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시민기자들의 기사나 사진 등을 무단으로 훔쳐가거나 변형해서 쓰다가 적발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프로'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아마추어보다 못한 짓'이지요.

기사를 내리라는 저의 요구에 < 한국일보 >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쩌다 한 건 해서 너무 업(UP) 된 것 같은데 이런 전화 하는 게 아니다"라고. 제가 보기엔 지극히 정당한 문제제기가 그에겐 "업(UP) 된" 행동으로 보이는 게 '프로'와 '아마추어'의 시각 차이인가 봅니다.

비록 아마추어이지만 적어도 저들처럼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는 모르지 않으니 그것으로 위안이나 삼아야할까 봅니다. 그리고 이 낡고 추한 관행이 '프로기자'들로부터의 자발적인 정화로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 오마이 블로그]

[☞ 오마이뉴스E 바로가기]

- Copyrights ⓒ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