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집 한칸 가진 서민의 눈물을 외면해선 안된다
[데일리안 데스크 ]삼복더위가 한창인 지금 주택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가격은 한창 때에 비해 30~50%씩 급락했는데, 집을 사려는 사람들은 더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 가물에 콩 나듯 이루어지는 거래는 급락한 시세보다도 5~10% 더 낮은 '급급매'일 경우다. 겨우 집 한 칸 마련한 수많은 중산층, 서민들의 한숨과 신음 소리가 깊어지고 있다.
또한, 주택구입을 미루고 전세로 몰리자 전세값이 오르면서 월세도 덩달아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어, 집 없는 이들의 서러움도 커져 간다. 심지어는 중도금이나 잔금을 내지 못해 웃돈을 얹어주고 분양권을 넘기는 '금깡통' 아파트마저 등장했다.
장기적으로, 주택가격 하락은 피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몇 년 후부터는 인구가 점차 줄어들 전망인데다 주택보급률도 100%에 육박하거나 초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도가 문제다. 은행 돈을 빌려 가까스로 내 집 - 이 경우, 유일한 재산인 경우가 많다 - 을 장만한 대다수 서민들이 자고나면 떨어지는 집값에 제대로 뿔이 났다.
이를 부동산시장 침체기에 당연한 문제라거나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한 정부 조치의 어쩔 수 없는 산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대다수 중산층·서민들의 가장 중요한 재산이 부실화되고, 결국에는 계층간 격차가 커지는 원인을 정부가 방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당국자들이 주택시장 활성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DTI(소득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의 한도를 정하는 총부채 상환비율) 규제완화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꼭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지난 21일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DTI 규제완화 등 주택시장 활성화대책을 발표할 거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주택시장 회복을 위해 5~10%의 DTI 규제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국토해양부가, 가계부채 급증을 걱정하는 기획재정부와 은행건전성 악화나 미진한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을 염려하는 금융위에 대항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나 보다. 'DTI 규제완화 외엔 백약이 무효'라는 시장의 소리도 740조원 규모인 가계부채가 추가적으로 늘어날 가능성과 이에 따른 은행 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DTI 규제는 2005년 참여정부의 8.31 부동산 대책과 함께 도입되었으며, 그 후 부동산 투기를 잠재우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에는 우리 금융권의 부실화를 막은 훌륭한 정책이라는 칭송마저 들었다. 이명박 정부도 지난해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 시세가 급등하자 DTI 규제를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하고, 강남 등 투기지역은 40%, 여타 서울은 50%, 인천과 경기지역은 60%로 결정하는 등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DTI 규제를 완화할 경우 주택담보 대출이 확대되고 주택 수요도 늘어나 부동산경기 활성화에 기여하겠지만, 그만큼 가계 빚이 늘어나고 은행 건전성이 악화될 소지도 커진다고 본다. 게다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 투기를 조장할 우려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심지어는 우리 경제에 대한 해외 시각마저 나빠질 것이라고 한다. 대체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옳으신 말씀'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번 찬찬히 짚어 보자. 이 문제의 해법은 지금의 주택시장이 과연 정상적인지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지난 6월 전국 아파트 거래량은 3만 454건으로, 최근 4년간 6월 평균 거래량의 70% 수준에 그쳤다.
누가 봐도 지금은 시장의 자금줄이 꽉 막혀서 거래가 비정상적으로 줄어든 상태이고, 집값은 시장이 정상 작동할 때의 적정가를 한참 밑돌고 있다. 이게 문제인 거다. 시장에 DTI와 같은 규제가 없을 때보다 거래량과 가격이 현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5월말 현재 미분양 주택이 11만 460가구에 달하고, 준공후 미입주 물량도 상당한 데, 하반기에는 수도권에 8만여 가구의 입주 물량마저 대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클 수가 없는 여건이기에, DTI 규제 완화의 부작용을 지나치게 우려할 시기는 아니다. 더욱이, 출구전략 시행으로 금리 인상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주택 투자에 대한 유인이 줄고 초과이득을 얻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밖으로 눈을 돌려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를 한 고비 넘겼다는 점에서 지난해와는 상황이 다르다. 지난 23일 대다수 유럽 은행들이 재무건전성을 평가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하자 미국 다우지수는 100 포인트 넘게 올랐다. 미국에 이어 유럽도 위험권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국내외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현재의 주택시장을 보는 시각과 해법은 달라져야 한다.
주택거래 활성화는 기대와 심리가 절반이다. 실수요자들의 심리를 자극해서 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면 된다, 거래량과 가격이 적정 수준으로 되돌아갈 때까지. 거기까지면 충분하다. 그래서 겨우 빚을 내서 집 한 채 장만한 서민들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고, 애들이 자라나서 좀 더 큰 집으로 이사 갈 필요가 있는 중산층도 움직일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국민을 섬기겠다'고 한 정부라면, 국민의 신음소리를 줄이고 주름진 얼굴을 펴는 데 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두어야 할 것이다. 실수요자에 대한 5~10%의 DTI 규제 완화를 포함해서, 주택시장을 적정한 수준으로 되돌리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을 가동해야 한다.
DTI 규제완화는, 정부가 쓸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할 때, 시장에 미치는 활성화 효과가 상당할 것이다. 집을 사려는 실수요자들에게 더 이상 구입 시기를 미루지 않고 급매물부터 매수하게 할 것이며, 주택가격도 점차 안정될 것이다.
다만,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첫째, 실수요자를 1주택자로 한정하고 일정 기간 거주요건을 충족시키는 등의 제한을 두어야 한다.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면, 가계부채나 은행 빚의 증가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둘째, 만일 주택가격이 적정수준 이상으로 오를 경우, DTI 비율을 다시 낮추겠다고 해야 한다. 이는 투기세력들도 초과이득을 노리고 몰려들지 않도록 억제하는 효과를 낼 것이다. 이게 발표효과(announcement effect)다. 직접 채를 휘두르지 않고 전자 모기향의 냄새만으로도 모기를 퇴치하듯이 말이다. 물가나 경기 상황을 감안한 적정가격 보다 10~20% 이상 급등할 경우, 다시 DTI 비율을 환원하겠다고 하면 되는 것이다. 정책의 일관성은 중요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국민의 시각에서 봤을 때 이해될 수 있으면 족한 때도 있다.
셋째. 투기적 거래에 대해서는 중과세 등을 통해 원천 봉쇄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주택 가격의 추가적인 하락을 멈추고 적정가로 환원되게는 하지만, 그 이상의 투기적 수요는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시장이 읽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혹자는 주택시장을 살리기 위해 국가 경제를 망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주택시장을 살리는 것이 국가경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다만, 어느 정도까지 살리느냐의 문제다. 주택거래가 되살아나면, 일정 부분 자산효과를 낼 것이고, 내수 진작에도 기여할 것이다. 은행들이 잡고 있는 주택 담보도 충실하게 된다. 그 '정도'를 잘 가늠해서 넘치지 않게 다다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을 찾아야 한다.
'DTI 규제 완화는 무조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DTI 규제 예외적용 확대'보다는 '실수요자에 대한 DTI 규제 완화'가 시장에 주는 효과가 클 것이다. 어찌 보면, 같은 맥락이다. 그렇지만,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다. 발표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어휘 하나라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집 한 채 겨우 가진 국민들과 전월세 사는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그들의 답답한 마음을 달래주는 데 정부가 나서야 할 때이며, 더 이상 실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글/방병국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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