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사형시킨 뒤 알게될 진실, 두렵지 않아?

2010. 3. 2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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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호열 기자]

인간의 생명을 국가가 결정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라 사형제 폐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영화 < 데이비드 게일 >

ⓒ 인터미디어 필름스

"사형을 해서라도 살인 범죄를 막을 것입니다(주지사).""사형을 시킨다고 막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통계에도 나와 있습니다(데이비드 게일).""성경에도 있지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살인죄는 사형으로 다스려야 합니다.""간디는 '눈에는 눈'이 사실은 우리를 장님으로 만든다고 했었죠."사형제 찬반에 대한 격렬한 공방이 벌어지고 주지사는 데이비드 게일에게 '무고하게 사형당한 사람이 있으면 입증해 보라'며 역공을 펴고 토론은 끝납니다.

이 장면은 중요합니다. 사형제를 찬성하는 이들의 가치관을 보여 주는 한편, 사형제에 맞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한 남자의 결단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 데이비드 게일 > (2003년작, 알란 파커 감독)은 사형 집행일을 나흘 앞둔 사형수 게일(케빈 스페이시)이 저널리스트 빗시 블룸(케이트 윈슬렛)에게 3일간의 인터뷰를 요청하며 시작합니다. 이유인즉슨, 팩트대로 쓰고 취재원과의 오프 더 레코드를 준수하는 기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대목은 엔딩 크레딧의 대반전과 직결됩니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사형제 폐지에 맞서는 대학교수

철창을 사이에 두고 시작한 인터뷰에서 빗시는 혼란을 겪습니다. 게일이 여느 사형수와 달리 자신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안달복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형수들은 무고하며 사형제도는 폐지돼야 한다는 신념에 차 있기까지 합니다. 마치 어떻게 죽었는가 보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듯이 초연해 보이기까지 하니까요.

게일의 회상으로 영화는 6년 전으로 돌아갑니다.젊고 패기에 찬 철학과 교수이자 사형제 폐지 운동단체인 데스워치(Death Watch)에서 활동하던 그는 제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합니다. 동료 교수이자 데스워치의 리더 콘스탄스(로라 리)만이 그의 곁에 남습니다. 그런 어느 날 콘스탄스가 성폭행 당한 뒤 끔찍한 모습으로 살해당하고, 그녀의 몸에서 게일의 정액이 검출되고 그는 살인범으로 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일이 콘스탄스 등 데스워치 회원들과 함께 17살 흑인 소녀의 사형집행을 반대하며 가두시위를 하지만 사형은 집행되고 만다.

ⓒ 인터미디어 필름스

사형제는 민주주의의 포기에 다름 아니다

영화는 때때로 민감한 문제, 이를테면 낙태는 정당하고 또 사형제는 정당한가 등 쉽사리 합의하기 어려운 질문을 관객에게 툭 던지곤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뜩이나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한 가운데 헌법재판소가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리고, 이어 법무부 장관이 사형제와 보호감호제 부활을 예고했습니다. 바야흐로 '당신은 사형제를 찬성하는가?'라는 오랜 질문에 이제는 답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사형제를 찬성하는 이들이 즐겨 인용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가장 오래된 실정법인 기원전 18세기의 함무라비 법전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음으로 되갚는다는 동해보복 사상에 입각한 사형제는 그만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 그 뒤 국가가 성립되면서 개인적인 복수로 머물던 살인은 모든 형벌권을 틀어 쥔 국가에게 살인을 대행하는 시스템 즉, 사형 제도로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존엄성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제도적 살인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에 다름 아닙니다. 사형제의 근본 문제는 인권에 맞닿아 있으며, 인권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이자 사회경제적 약자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국가 스스로 '눈에는 눈'을 실행한다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를 포기한다는 것이며,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를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데이비드 게일 > 은 이 지점에서 정공법을 택합니다. 흑인과 부랑아 등 사회적 약자가 주로 희생되는 사형제를 폐지하기 위해선 앞서 주지시의 말처럼 무고한 사례로 입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게일의 이 선택은 법의 근본정신인 인간 존엄성에 대한 성찰이자 사형제의 모순과 불완전성을 증명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숨 막히는 반전을 거듭합니다.

반전 그리고 재반전...진실은 무엇일까?

살인범 전담 교도소에서 3일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 게일을 인터뷰하는 빗시는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면서 점차 경악한다.

ⓒ 인터미디어 필름스

인터뷰를 할수록 게일의 무죄를 확신하던 빗시는 제자 성폭행 사건이 불성실한 수업 태도로 낙제 위기에 몰린 여대생이 게일을 파멸시키기 위해 치밀하게 꾸민 사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 전력은 꼬리표처럼 게일에게 따라 붙고 이후 그를 사회로부터 매장시키는 과정은 한국사회의 전과자 낙인찍기와 너무나 흡사합니다.

지적이며 존경받던 대학교수 게일의 성폭행 사건이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 순간의 실수라도 콘스탄스의 성폭행 살해범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요건만 갖추면 충분합니다. 이런 전제 하에 검찰과 주 정부는 게일을 살인범으로 단정 짓고 형 집행을 착착 준비해 온 것입니다.

사건의 진실은 빗시를 고리로 서서히 실체를 드러냅니다. 누군가가 자신이 묵고 있던 모텔에 두고 간 콘스탄스 살해 장면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분석하면서 빗시는 콘스탄스를 짝사랑한 데스워치의 행동주의자 라이트가 진범이라고 단정합니다. 게일의 사형집행 당일. 빗시는 라이트의 집에서 찾아 낸 테이프 원본에서 라이트를 목격합니다. 테이프를 들고 사형장으로 달려가지만 그 시간에 게일의 사형은 집행됩니다. 게일이 사형당한 뒤 문제의 비디오테이프가 공개되고 무고한 사형은 미국사회를 찬반양론으로 들끓게 합니다.

빗시가 사건의 진실이 담긴 테이프를 들고 사형장으로 가던 중 자동차가 엔진 과열로 서버리자 달려가기 시작한다. 공동묘지 장면은 사형제에 대한 우회적 비판으로 읽힌다.

ⓒ 인터미디어 필름스

그리고 마지막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업으로 복귀한 빗시에게 배달된 우편물에 '진실을 알라'는 쪽지가 붙은 테이프에서 인간의 생명을 국가가 결정할 수 없다는 신념하에 사형제 폐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 한 남자의 얼굴이, 사형제 폐지의 제단에 자신을 받친 한때 주류사회의 백인이자 지식인이었던 한 남자의 얼굴이 뚫어지게 빗시를 응시합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도 물타기 사형제는 이제 그만

창과 방패와 같은 딜레마를 안고 있는 사형제는 얼핏 뫼비우스의 띠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 설까요? 세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분노나 사형제 부활이 정당하냐 아니냐가 문제인 게 아닙니다. 분노의 정점에서 그 분위기를 타고 쏟아지는 급조된 대책의 뒷배경이 의아스럽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지난해 초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용산참사를 희석시키기 위해 연쇄살인범 강아무개 사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지시한 경찰 문건을 받아 조중동을 필두로 보수신문이 강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연일 대서특필해 용산참사 물타기에 기를 쓴 사실을.

최근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일본 < 요미우리신문 > '독도 발언'이 공교롭게도 부산여중생 납치살해 사건과 맞물린 채 묻혀버렸습니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그 발언이 사실이라면 탄핵감'이라고 지적했음에도, 시선 빼앗기에 성공한 탓인지 문제의 발언은 언제 그랬냐 싶게 흐지부지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앞장서서 극형 운운하는 것은 사형제마저 정치적 활용대상으로 삼는다는 세간의 의구심을 뒷받침해 주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빈곤의 대물림 등 사회구조적 문제가 이들 범죄의 주요한 원인이라면, 그 처벌은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몫으로 치환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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