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칼럼] 골드미스는 '릴리스'의 부활?

독일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분석가인 한스 요아힘 마츠가 펴낸 '릴리스 콤플렉스'에 따르면 인류 최초 여성으로 알려진 이브 이전에 릴리스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면, 릴리스는 아담과 동등하게 흙으로 빚어졌다. 이런 점 때문에 릴리스는 아담과 동등한 대우를 받길 원했다. 부부관계를 맺을 때도 아담 밑에 있기보다 위에 올라타서 사랑의 유희를 즐기려 했고, 아담의 말에 순종하기보다 자기주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결국 아담은 릴리스와 갈등을 빚었고, 이를 참지 못한 릴리스는 에덴 낙원에서 떠나 홀로 살았다.
1920년대 이화학당에 박인덕이란 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팔방미인이었다. 졸업 후엔 모교 이화학당에서 교사로 재직했고, 유관순 열사의 스승이기도 했다. 그녀는 경제력 없고 무능하며, 더구나 보수적인 남편을 만났다. 결혼 후에도 교사로 일하면서 육아는 물론이고 가사도 도맡아 했다. 남자의 호령, 여자의 울음소리, 매질로 인한 비명소리가 박인덕 씨 가정에 끊이질 않았다고 '지식프라임'에서 전봉관 KAIST 교수는 적고 있다.
그녀는 고달픈 결혼생활에 염증을 느꼈던지 두 딸과 남편을 남겨두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유학 6년 만에 모국에 들어오자마자 이혼을 결심한다. 남편이 경제력이 없었기에 남편에게 위자료를 지불한 대신에 두 딸의 양육권은 그녀가 차지했다.
1953년, 한국인 최초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 홍용명 씨는 당시 한강에서 남자 피겨선수 이해정 씨와 페어연기를 벌였다. 당시 그녀는 풍기문란죄로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그녀의 이런 풍기문란(?)은 10대부터 시작됐다. 32년 평남 안주에서 출생한 그녀는 피겨스케이팅을 배웠고 13살 때 이화여중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되기 전에도 서울 덕수궁 연못 스케이트장에서 뭇 남성들을 잠못 이루게 만들었다. 긴 부츠에 짧은 치마를 입고 다리를 들어 올려 남성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으니 말이다. 그녀의 이런 용기가 있었기에 김연아 선수가 밴쿠버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지 않았을까.
남편에게 위자료를 주고 이혼하면서까지 자기 삶을 살려고 노력했던 박인덕 씨와 풍기문란죄로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까지 한국 피겨스케이팅 뿌리를 내렸던 홍용명 씨는 그저 조금 앞서 선구자적인 삶을 살았을 뿐이다. 아마도 한스 요아힘 마츠는 이들의 행동 저변에 '릴리스 콤플렉스'가 자리했다고 평가하고, 댄 킨들런 하버드대 아동심리학 교수는 이들을 '알파걸'로 지칭했을 법하다.
경제력과 함께 전문성까지 갖춘 '골드미스'가 국내에서도 부쩍 많아지는 추세다. 이들은 남성들과 동등하게 실력을 겨루길 원하고, 성적으로 개방돼 있으며, 결혼은 선택사항이라고 믿는다. 이들의 심리 밑바탕엔 '릴리스 콤플렉스'가 깔려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 출생률이 세계 최저이기 때문에 경제성장 잠재력을 키우고, 사회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결혼을 서두르고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국가 체제 유지가 중요하지만 개인의 삶과 행복도 값지기 때문이다.
릴리스 콤플렉스를 말하지 않더라도 골드미스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우리들은 살고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삶의 목표가 물질에서 정신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에 놓여 있다. 정신혁명이 앞당겨져 골드미스의 환상을 집어던질 날이 오길 기대한다. 순간의 행복이 아닌 지속가능한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역사는 릴리스 대신 이브를 기록하고 있지 않는가.
[이제경 편집부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46호(10.03.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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