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출항 앞둔 군산-장항 80년 뱃길

2009. 10. 1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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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조종안 기자]

마지막 운항일이 10월31일이어서 11월1일 부터는 탈수도, 볼 수도 없는 '금강1호'.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뱃길이 중단된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 조종안

전북과 충남의 가교 역할을 해온 군산-장항 뱃길이 11월 1일부터 중단된다고 한다. 회사 측은 적자가 누적되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어디 필자뿐이겠는가. 한 번이라도 뱃길을 이용했던 분이면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을.

서민들의 애환을 80년 가까이 싣고 나르던 뱃길이 중단된다는 소식을 처음 듣는 순간, 마지막 배는 꼭 타봐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깜빡 잊을지도 모르고, 한가할 때 서해와 만나는 금강 하류의 아름다운 전경을 둘러보며 아련한 추억들을 더듬어보려고 '군산도선장'(나루터)을 찾았다.

역사의 그늘로 사라질 도선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은 쌀 창고를 개조한 횟집도 있고, 술집이나 택배 사무실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석양빛을 받아 더욱 붉게 보이는 선박수리소의 녹슨 기계들과 드럼통에 가득 쌓인 쇳가루가 쇠퇴해가는 항구의 옛 영광을 말해주는 듯했다.

도선장 입구에 있는 선박수리소 풍경. 선박 수리에 앞서, 녹슨 기계를 먼저 손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야릇한 미소가 지어졌다.

ⓒ 조종안

해망동 수협을 오가면서도 그냥 지나쳐서 그런지 어디가 어디인지 헷갈렸다. 해서 말도 붙일 겸 이 사람 저 사람 잡고 물었더니 마침 10분 후(4시 30분)에 출발하는 배가 있다고 해서 얼른 표를 구입했다. 수시로 배가 다니던 시절에는 출발시각을 알 필요 없이 나가도 되었는데, 배에 오르기 전부터 격세지감을 느꼈다.

곧 출발하니까 빨리 승선하라고 해서 올랐더니 6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친절하게 인사를 하는데 승객이 고작 3명, 난생처음 겪는 썰렁함이었다. 2007년 12월 31일로 폐쇄된 장항역이 옮겨져 군산역과 연결되고, 군산 시내버스가 장항을 거쳐 서천까지 운행되고 있으니 썰렁할 수밖에.

군산·장항에서 반반씩 살았다는 장명수 선장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선장실이 있는 이 층으로 올라가니까 시야가 탁 트이면서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왔고,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넉넉하게 생긴 장명수(64세) 선장이 키를 잡고 앞을 주시하다 돌아보더니 웃으며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스물세 살에 선원으로 취직해서 올해 예순 넷이니, 41년을 군산-장항 뱃길과 함께 해온 장명수 선장. 넉넉한 인품에 항상 표정이 밝아 고민이 하나도 없는 양반 같았다.

ⓒ 조종안

장 선장은 누가 어디 사느냐고 물으면 "저는 군산과 장항에서 반반씩 살았어요!"라고 한다면서 껄껄 웃었다. 걸쭉한 목소리가 매력인 장 선장은 군 복무도 뱃일해가며 도선장 앞 수상파출소에서 방위 1기로 마쳤다면서 자랑하듯 말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선원이 6~7명은 됐지요"라고 했더니 2001년 월명토건이 인수하기 전만 해도 여섯 명이 두 조로 나눠 24시간씩 교대로 근무했는데 지금은 선장, 기관장, 갑판장, 화장, 선원 등 모든 뱃일을 셋이서 처리한다며 그래도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장님은 일하신 지 오래된 것 같은데, 언제부터 근무하기 시작했나요?""1968년부터 시작했지요. 지가 올 때만 해도 '도선사업소'였고, 그 전에는 건설과 도선계 소속이었지요. 그때만 해도 이곳 소장으로 계장들이 발령받아 왔는데 사무관으로 진급하는 지름길일 정도로 시청에서 노른자위였습니다." (웃음)

"배가 중단되면 선장님은 역사적인 인물로 남을 것이지만, 어디 취직하기도 그렇고 무척 심심하고 쓸쓸하시겠네요. 저 같은 사람도 허전한데 오죽하시겠습니까?"

"남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먹고 살자고 이런 일 저런 일 하다 보니까 막판에 선장 되어가지고 마음만 그렇습니다···." (한숨)

"41년이면 배에 청춘을 바치셨는데, 결혼해서 애들도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을 것이고, 진급도 하는 등 좋은 일이 많이 있었을 텐데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좋은 시절도 많이 있었고, 가슴 아픈 시절도 있었는데, 특별히 좋은 일을 어떻게 고르겠습니까. 결혼해서 아들 둘 보았는데 걔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고, 저도 아무 탈 없이 무사고로 지금까지 다녔다는 것이 행운이고 좋은 일이지요."

장 선장이 공무원으로 시청 복귀를 마다하고 뱃길을 택했던 사연, 지금은 박쥐가 나올 것 같이 시커멓게 변해버린 '세일러하우스' 건물에 얽힌 이야기, 뱃길이 중단되면 도선장은 어떻게 될지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 밖으로 나와 잠시 선상을 거닐었다.

금강 1호는 장항 도착을 앞두고 경적을 울렸는데 귀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이상했다. 예전에 다니던 '군산호'는 '애~애~앵'하고 사이렌을 울렸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수업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소리도 사이렌이어서 더욱 낯설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금강1호'와 '군산호' 그리고 '안창호'

해방 이후 군산시는 금동에 '도선사업소'를 장항에는 '도선출장소'를 설치하고 여객선을 운영했는데 이달 말로 운항을 마감하는 '금강1호'는 군산시와 서천군이 공동 투자한 '금강 도선공사'에 의해 운영되던 1984년부터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군산-장항 도선 사업은 1934년에 왜놈들이 뱃길을 열었고, 해방과 함께 여객선도 목선에서 철선으로 바뀌었으며 군산시가 직영하다 1984년에 설립한 '금강도선공사'로 운영권이 넘어갔으나 정부의 지방공기업 매각방침에 따라 2001년 1월 민간업체인 월명토건에 인수되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군산1호 여객선. 이용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련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군산 시사(市史)에서

'군산1호'에 이어 등장한 '군산2호'. 자가용을 보기 어려웠던 70년대까지만 해도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만원이었다.

ⓒ 군산 시사(市史)에서

'금강 1호'가 다니기 이전에는 배 이름이 '군산호'였고, 군산호도 제1호와 제2호가 따로 다녔다. 두 대가 교대로 다녔다는 것은 그만큼 승객이 많았다는 기록이나 다름없겠는데 80년대부터는 서천군에서 운영하는 '서천호'가 추가 운항하기도 했다.

1990년 금강 하굿둑이 완공되기 전에는 바닥이 뒷간 텃밭보다 넓은 직사각형 모양의 '안창호'가 자동차를 실어 날랐다.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이나 승용차가 대부분이었는데, 무거운 화물차를 어떻게 몇 대씩 싣고 다닐 수 있는지 한 때는 의문의 대상이기도 했다.

보기에도 탱크처럼 육중했던 안창호는 굉음을 내며 운항했는데 엔진 소리가 째보선창 넘어 구암동까지 들렸다. 날씨가 좋은 날은 창고건물이 막고 있는 필자 집에까지 들려왔는데, 볕이 따사한 봄철에는 그렇잖아도 서울을 동경하던 촌놈 마음을 심란하게 하기도 했다.

군산 근교 개정면에 사는 아주머니가 부둣가 구경을 다녀와 이웃집에 가서 자랑하자, 안창호도 봤냐고 물으니까 얼버무리는 바람에 창피 당했다는 급우 얘기가 떠오른다.

ⓒ 군산 시사(市史)에서

당시에는 충남, 전남 등지에서 수학여행 오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어른이든 아이든 군산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 이만저만한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출발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가는 사람과 미국에서 잉여농산물을 싣고 온 무역선보다 화물차를 싣고 가는 안창호를 보면서 놀라고 감탄하는 학생과 어른을 여럿 보았으니까.

배 이름도 안전운항을 비는 뜻으로 '안창호'라고 했다는데, 하루에 3~4회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다 도선장에 나가면 자동차를 배에 싣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하느라 선원들 고함소리가 요란했는데, 출발을 기다리는 기사들이 술을 마시거나 화투를 치다 싸우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60~70년대에는 군산1, 2호가 20분 간격으로 다닌 것으로 기억하는데 설이나 추석명절 대목을 앞두고는 자정이 넘도록 운항할 때도 있었다. 30분 연착은 정상으로 생각하던 시절인데다 대목이라 출발하는 열차마다 연착하는 바람에 늦도록 기다렸다가 귀향객을 싣고 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1세기에 가까운 80년 세월의 역사와 서민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한 군산-장항 뱃길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아쉽고 답답하기만 한데, 패키지여행 코스로 거듭나게 해서 으뜸 관광상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전력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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