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증시 비관론자 2인'의 변심
'황소(낙관론자)가 곰(비관론자)을 눌렀다.'
주가가 거침없이 오르면서 증시 비관론자(또는 신중론자)들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 올 3월 1000선에서 출발해 오름세를 탄 증시는 반 년 만에 1700을 넘어섰다. 지난해 9월 세계 금융위기 직후와 비교해도 11개월 만에 70% 이상 올랐다.
횡보장이 없진 않았다. 지난 5월엔 1400 언저리에서 세 달 동안 맴돌았다. 또 지난 8월 말 1600에 접어든 뒤 며칠간 조정 국면이 있었다. 하지만 대폭적인 조정이 온다는 비관론자들의 주장이 무색하게 1700까지 쭉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비관론자들의 논리는 이랬다. 국내 대표적인 비관론자로 꼽히는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 4월 매경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공급 과잉으로 과대 설비 조정이 필요한데 본격적인 설비 감축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미국 기업 실적 악화를 우려하며 제2의 실물쇼크까지 예견했다. 당시 내놓은 코스피지수 하한선은 1120. 1300이 넘어가면 팔아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도 부정적으로 봤다. 그는 세계 금융위기에 앞서 본인의 주식 관련 자산을 처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센터장은 올해 증시를 '상고하저'로 예견했다. 위기 뒤 급상승장을 연출할 수 있지만 펀더멘털(기초경제)이 개선된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하락세로 돌아설 경우는 극단적으로 1000선까지 빠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관론자가 돌아설 때가 꼭지?
최근 두 비관론자가 견해를 다소 수정했다. 김학주 센터장은 최근 증시에 거품이 끼었다고 규정하면서도 거품이 쉽게 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과 중국이 계속해서 주가 거품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아시아 특히 한국 주가는 더 오를 것이라는 설명. 김 센터장은 "산업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 주가를 어둡게 봤는데 미국 정부가 구조적인 문제를 경기 순환 주기의 문제로 바꿔놓아 오버슈팅(이상 과열)이 계속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종우 센터장은 "코스피지수 1800선도 가능하다"며 강세론자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 저금리에 각국 정부가 풀어놓은 엄청난 돈이 주가를 좀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 대표 비관론자들이 돌아서면서 '오히려 이제 정말 꼭지가 온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그동안 낙관론을 주장해왔던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최근 "지수가 목까지 차오른 것 같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역설적이지만 '비관론자들의 항복'과 증권사들의 목표주가 상승 행진을 들었다. 과거 최후의 비관론자가 두 손을 들었을 때가 꼭지였던 사례는 나라 안팎을 막론하고 여럿이다. 최근만 해도 2007년 비관론자였던 유명 전략가가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지 얼마 안돼 주가가 미끄러졌다.
김학주 센터장과 이종우 센터장은 여전히 경계의 목소리를 굽히지 않았다. 김 센터장은 "내년 긴축 정책으로 금리가 올라가면 금리 연동 부동산 대출이 다시 부실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1850선까지 거품을 예상하면서도 그는 올해 코스피지수 최고치 1540을 수정하지 않았다. 이 센터장은 "3분기 실적을 확인한 뒤 주가가 꺾일 수 있다"며 "그 시점은 10월 중하순쯤이 될 것"이라고 봤다. 신중론자로 꼽히는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생각보다 기업 이익이 좋았고 외국인의 한국 주식 수요도 커 예상보다 큰 폭 상승했다"면서도 "6개월 이상 쉬지 않고 오른 사례는 과거 대세 상승기에도 찾기 어려워 조정폭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각 증권사 코스피지수 전망 상향 조정
주가가 오르자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이 올해 코스피지수 전망치를 상향 조정 중이다. 1700을 넘은 지난 9월 17일 현대증권은 최고치를 1700에서 1800으로 급히 올렸다. 한동욱 현대증권 연구원은 "중·단기적 관점에서 미국 경기의 반등 강도가 당초 예상했던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며 "연말까지 코스피지수가 1800포인트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리츠증권은 지수 예상 범위의 상단을 1900으로 높였고, 동양종금증권은 연말까지 목표지수를 1690선에서 1800선으로 상향 조정했다. 동양종금증권 내부적으로는 내년 중 2200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본다.
1600선을 돌파했던 지난 8월에도 상향 조정이 잇따랐다. 신영증권은 상한선을 1550에서 1680으로, 한국투자증권은 1450에서 1650으로 올렸다. 우리투자증권도 120포인트를 올린 1710으로 수정 제시했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시장이 한 단계 높은 수준에서 등락을 보일 것으로 예상돼 전망을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FTSE 선진국지수 편입을 앞둔 점, 달러 유동성이 좋은 점을 고려하면 투자자들이 (상승 추세를) 좀 더 즐길 수 있다"며 "다만 미국이 10월 말에 단기 채권 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흡수할 수도 있어 유동성 관련 변수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1500선에서 조정 가능성을 점쳤던 토러스증권도 의견을 바꿨다. 이경수 토러스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외국인 매수세 축소, 3분기 경기둔화 가능성, 미국의 더딘 소비 회복 등을 이유로 1500선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지만 유동성의 힘을 간과한 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외국계 증권사도 시각을 바꾸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한국 비중 축소에서 확대로 전환했다. 한국 기업 이익이 올해와 내년에 안정적이고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는 이유에서다. 매도에서 매수로 역시 의견을 바꾼 노무라 증권은 "이익 모멘텀이 개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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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예상과 달리 지수가 1700선을 넘겼다.
이종우 센터장 :
상반기만 해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반기 경기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2분기 기업실적이 어닝서프라이즈(깜짝실적)를 기록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여기에다 각 나라에서 펼친 저금리, 막대한 재정지출 정책들이 힘을 더 실어줬다. 증시가 1400선을 뚫고 상승세를 탈 때 상반기 예측이 틀렸다고 판단했다.
김학주 센터장 :
미국의 거품 만들기가 성공했다. 미국은 실물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돈을 풀어 거품을 계속 만드는 중이다. 여기에 중국이 동참할 줄 몰랐다. 미국과 달리 중국은 구조조정도 하면서 실리를 챙길 것으로 봤다. 사회주의 체제다 보니 정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중국 동참으로 거품이 커지다 보니 저금리가 국내에 들어와 증시를 끌어올렸다. 최근 국내 증시가 FTSE 선진지수에 편입된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증시가 더 갈 것으로 보는가.
이 센터장 :
추가 상승할 것으로 보지만 그 폭은 크지 않을 것이다. 3분기 실적에 따라 상승이 마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센터장 :
주가가 경제를 떠나 정치로 간 상황이다. 미국 정부는 실물경기가 움직일 때까지 계속 거품을 만들 것이다. 주가는 여기에 따라갈 것이다.
어떤 종목에 관심을 가지면 될까.
이 센터장 :
자동차와 IT가 실적 향상을 이끌었는데, 자동차업종은 더 관심을 둘 만하다.
김 센터장 :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주식이 뭔지를 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삼성전자를 좋게 본다. 휴대전화 부문에서 노키아를 제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데다 반도체도 대만, 일본과의 격차가 커질 것이다.
앞으로 계속 비관론을 견지할 것인가.
이 센터장 :
일각에선 반성문을 쓰라는 비판도 듣고 있다. 비관론을 제시할 때 이런 비판은 충분히 예상했던 부분이다. 지금 분위기가 증시 하락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데 분명 조심해서 투자할 때라고 본다.
김 센터장 :
이상과열은 당분간 지속되겠지만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거품기라고 보기 때문에 위험이 커진다는 것을 계속 얘기할 수밖에 없다.
거품 문제가 안 생기다 보니 사람들이 안심하고 있다. 경기가 회복되면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발생해 출구전략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 김충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25호(09.09.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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