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희망,强小기업] (9) 성음악기

2009. 8. 16.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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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기타 '크래프터' 세계가 연주한다

베토벤은 기타를 두고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칭송했다. 바이올린과 같은 선율 악기이면서도 피아노처럼 화음을 낼 수 있어 다양한 음색과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성음악기 박인재 사장은 기타를 "삶이자 꿈"이라고 표현한다. 직원들에게도 늘 "아이를 키워 결혼시키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다루라"고 말한다.

성음악기는 박 사장의 아버지 박현권 회장이 1972년 4월 서울 창전동 자신의 집 지하실에서 4명의 직원으로 기타를 만들면서 탄생했다. 4명으로 출발한 직원은 현재 180명으로 늘어났고, 지하 작업장은 경기도 양주시에서 연간 7만2000대를 생산해 매출액 180억원에 이르는 국내 대표적인 통기타 공장으로 탈바꿈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국내에서는 70년대 통기타 붐으로 소리가 좋다는 명성이 퍼지면서 다른 국산 제품에 비해 고가였음에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수출에 집중해 '크래프터(Crafter)'라는 브랜드로 영국 미국 브라질 등 세계 40여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중고가 통기타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영국에서도 점유율 2∼3위를 기록할 만큼 해외에서의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이러다 보니 외국에 나간 한국인들이 외국 명품 브랜드로 알고 사서 오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대표적인 통기타 제조업체를 일군 박 회장이지만 박 회장의 젊은 시절 꿈은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회사 내에 예배실을 따로 둘 정도로 독실하다. 지금도 어려움에 직면하거나 고민이 있을 때는 기도를 한다. 전남 목포에서 신학교를 다녔던 박 회장은 재정난으로 학교가 문을 닫자 상경해 기타 공장에 취직하면서 기타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독립한 박 회장은 악기상과 연주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다소 비싸더라도 고품질의 기타를 생산하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품질에 대한 열정은 아들 박 사장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대학 졸업 후 86년 입사한 박 사장은 최고의 제품은 최고의 원료에서 나온다는 생각으로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최고 목재만을 구입한다. 짧게는 200년에서 길게는 500년 수령의 나무들만 구입해 바로 만들지 않고 2∼3년 정도 장기간 자연 건조시킨다.

박 사장은 "우리나라처럼 계절에 따른 습도차가 큰 나라에서 자연 건조를 제대로 시키지 않고 기타를 만들면 4∼5㎜ 변형이 일어난다"며 "창고에 쌓아두는 기간만큼 비용이 드는 것이어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좋은 기타를 만들지 못한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이러한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내수 위주의 성음악기를 수출 위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8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악기 전시회 '메세(MESSE)'에 참가해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웠던 성음이라는 사명 대신 브랜드명 '크래프터'를 만들어 마케팅 활동에 나섰다. 품질이 좋았던 만큼 3∼4년간의 마케팅 활동 끝에 해외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영국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출에 나선 성음악기는 점차 수출 비중을 늘려 한때 매출의 95%가 수출로 이뤄질 만큼 해외에서의 반응이 좋았다. 브라질 수출의 경우 서울 낙원상가를 방문했던 브라질 수입업자가 크래프터의 소리를 들어보고 성음악기에 먼저 연락해 수출이 성사됐다. 박 사장은 "당시 수입업자가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이 가능하냐고 하기에 안 된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그쪽에서 그렇다면 수입하겠다고 하더라. 다른 업체들이 크래프터 품질을 가진 브랜드를 판매하는 것을 우려한 때문"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때 50여개를 헤아리던 국내 기타 업체들은 인건비에서 중국에 밀려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성음악기는 품질 및 디자인에서 차별화하기 위해 기술개발 및 디자인 연구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박 사장은 "기타의 주 생산기지가 미국-일본-한국-중국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각 나라에서 일류 브랜드는 모두 살아남았다"며 "지금까지 성과를 기초 다지기라 생각하고 크래프터가 세계인의 악기가 될 수 있도록 본격적인 도전을 시작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양주=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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