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물고기 설화 품은 금정산 산행이 즐겁지만은 않은 이유

2009. 5. 2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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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연옥 기자]

▲ 의상봉 가는 길에서. 금정산성의 성벽이 참 예쁜 길이다.

마치 우리들 삶의 여정을 보는 듯했다.

ⓒ 김연옥

지난 23일 나는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부산 금정산(金井山, 801.5m) 산행을 나섰다. 부산광역시 금정구와 경남 양산시 동면에 걸쳐 있는 금정산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금색 물고기의 설화를 품고 있는 영산(靈山)이다.

얼마 전 마음 맞는 몇몇 친구들끼리 작은 산악회를 만들었다. 사실 말이 산악회이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조그만 모임이라 할 수 있다. 중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는 신두진 선생님, 유치원서 놀이 수학을 지도하는 조수미씨, 그리고 한때 귀금속공예를 했던 이미영씨 등으로 무엇보다 하하 호호 웃으며 느긋한 산행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우리 일행이 범어사(梵魚寺,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50분께. 우리나라 일주문 가운데 걸작품으로 평가 받는 조계문(曹溪門, 보물 제1461호) 쪽으로 천천히 올라가고 있을 때 조수미씨의 손전화가 울렸다. 갑작스레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 그런 것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정신이 얼떨떨했다.

▲ 부산 범어사 조계문(보물 제1461호)

ⓒ 김연옥

▲ 범어사 관음전에서 기도하는 불자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 김연옥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어 가슴이 먹먹한 상태로 우리는 범어사 대웅전(보물 제434호) 앞에 이르렀다. 신라 문무왕 18년(678)에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범어사는 화엄사상을 널리 펴던 화엄십찰(華嚴十刹) 가운데 하나로 조계문, 대웅전, 삼층석탑(보물 제250호), 목조석가여래 삼존좌상(보물 제1526호)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주말이라 그런지 그날 절집을 찾은 사람들이 매우 많았는데,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觀音殿)에서 불자들이 경건히 기도하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관음전은 특히 금정산의 정기가 모인 곳이라 하여 그곳서 간절히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퍼져 늘 기도하는 불자들로 가득하다고 한다.

▲ 금정산 장군봉 정상에서.

ⓒ 김연옥

우리는 먼저 장군봉을 오른 뒤 금정산의 주봉인 고당봉(姑堂峰) 정상으로 가기로 했다. 장군봉으로 가는 길은 비교적 가파른 오르막이지만 오솔길처럼 호젓해서 좋다. 초록빛 숲길을 걸어가는 기쁨을 한껏 누리며 1시간 정도 올라갔을까,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하는 드넓은 장군평원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장군봉(734.5m) 정상을 오르면서 돌아다보는 장군평원은 평화로운 푸른 초원 같다. 오전 11시 40분께, 장군봉 정상에 올라 아담한 정상 표지석 부근에 자리 잡고 우리는 신선한 방울토마토를 곁들여 시원한 막걸리를 쭉 들이켰다.

마애여래입상 앞에서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 가산리 마애여래입상(경남유형문화재 제49호)

ⓒ 김연옥

장군봉 정상에서 내려와 고당봉을 향해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고당봉 가는 길 또한 운치가 있어 오월의 싱그러움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숲 속은 마치 아름다운 동화 속 세계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산행 도중에 우연히 가산리 마애여래입상(경남유형문화재 제49호, 경남 양산시 동면 가산리)을 감상할 수 있었다. 화강암 절벽 위에 가는 선으로 새겨 놓은 불상으로 높이가 12m이다. 토속적인 인상에 얕은 선각(線刻)으로 표현된 조각 수법 등으로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오랜 세월 비바람으로 인해 마멸이 심한 상태였다.

그 시대에 어떻게 그렇게 높은 암벽을 타고 불상을 새길 수 있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게다가 마침 그곳에서 일하던 분이 마애여래입상이 발견된 사연을 소상히 들려주는 과정에서 일행 가운데 부산이 고향인 신선생님에게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그가 여섯 살 무렵 생전에 불심이 깊었던 할머니의 손을 잡고 그곳에 왔던 기억을 되살리게 된 일로 너무 신기해서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하늘서 내려온 금빛 물고기가 놀았다는 금샘으로

▲ 금빛 물고기 설화를 품고 있는 금샘. 아스라이 금정산성 북문이 보였다.

ⓒ 김연옥

오후 1시 20분께 화강암 봉우리인 고당봉 정상을 가까이서 올려다볼 수 있는 지점에 도착하자 그 웅장함에 매료되어 내 가슴이 자꾸 콩닥콩닥 뛰었다. 우리는 일단 금샘을 구경하고 고당봉 정상으로 올라가기로 했는데, 잘못 세워져 있는 이정표 때문에 금샘을 찾느라고 한참이나 헤매야 해서 속상했다.

금정(金井)의 산 이름과 범천의 고기, 즉 범어(梵魚)라는 절 이름은 금샘 설화와 관련이 있다. 범천의 금색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서 놀았다는 금샘은 날이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황금빛 물로 항상 가득 차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금샘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하고 가면 금샘의 크기에 적잖이 실망할 것이다. 현실적인 잣대로 설화를 해석하려고 들면 정말이지, 더러 실망스러울 때가 있다. 설화는 그저 설화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그러면 시간과 공간을 건너뛰어 옛사람들의 풍류가 보이고 그들의 간절한 소망 또한 느껴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 금정산 고당봉 정상을 올려다보며.

ⓒ 김연옥

▲ 금정산의 주봉인 고당봉 정상에서.

ⓒ 김연옥

바위 덩어리들로 이루어져 있는 고당봉 정상은 등산객들로 북적거렸다. 더욱이 시야가 탁 트여 멋스런 바위에 걸터앉아 조망을 즐기면서 일상의 피로마저 씻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일단 금정산장으로 내려가 늦은 점심을 한 뒤 원효봉(687m)으로 올라갈 계획이라 우리는 서둘러 내려갔다.

▲ 고당봉 정상

ⓒ 김연옥

금정산장에 도착하여 준비한 김밥, 산행 전날 냉동실에 얼려 둔 하모회와 컵라면 등을 맛있게 먹었다. 그날 식탁에서 인기를 끈 음식은 단연 하모회였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하모회를 그날 처음 맛보았는데 맛이 좋았다. 점심 식사 후에 우리는 금정산성(金井山城, 사적 제215호) 북문을 거쳐 원효봉 정상을 향해 천천히 올라갔다. 성가실 정도로 그 길에는 돌계단이 많았다.

원효봉 정상을 지나 능선을 타고 의상봉으로 가는 길에서는 금정산성의 아름다운 성벽을 구경할 수 있다. 낙동강의 하구와 동래 지방이 내려다보이는 요충지에 위치한 금정산성은 바다로 침입하는 적에 대비하기 위해 쌓았다 한다. 현재 4km의 성벽만이 남아 있지만 본디 17km가 훨씬 넘는 성벽 길이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산성이라 할 수 있다.

▲ 부채바위

ⓒ 김연옥

그런데 생각지 않게 귀여운 산토끼와 마주쳤다. 사람들을 보고 당황한 산토끼가 껑충껑충 뛰어가는 모습에 괜스레 미안했다. 부채바위 등 웅장하면서도 기이하게 생긴 바위들이 많아서 마음 설레었던 금정산. 10여 개의 봉우리 가운데 그날 네 군데를 다녀온 셈이다. 금정구 구서동 쪽으로 하산하니 벌써 저녁 6시가 훨씬 넘어 버렸다.

산행은 좋았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산행 다음날 밤에 나는 조수미씨와 둘이서 봉하마을을 찾았다. 내 마음속에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그분 가시는 길에 하얀 국화꽃이나마 꼭 바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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