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에 고꾸라진 '노도강'(노원·도봉·강북)의 비애
[한겨레] 강북 아파트값 끝모를 하락세
투기성 자금 차익실현 뒤 빠져나가추격매수 실수요자만 피해 떠안아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사는 주부 이아무개씨(40)는 요즘 인근 중개업소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가 두렵다. 111㎡(33평)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은 지 석달이 다 돼가는데도 "몇천만원 더 깎아주면 사겠다는 손님이 있다"는 식의 권유만 받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은 이씨는 내놓은 집을 다시 거둬들일까 고민하고 있다.
올들어 서울 강북의 일명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집값이 내림세를 지속하면서 집주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등 정부의 잇단 규제 완화로 강남권 일대 집값이 오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강북에서는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어서다.
■ 위협받는 3.3㎡당 1천만원=
부동산114조사를 보면, 지난주 노원(-0.01%), 도봉(-0.02%), 강북(-0.09%)구 아파트 매맷값은 여전히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소형 저가 아파트 급매물 위주로만 거래가 간혹 이뤄질 뿐 매수세는 실종된 상태다. 닥터아파트의 1분기 잠정 집계에선 올들어 이달 20일까지 강남(0.3%), 서초(0.54%), 송파구(2.46%) 등 강남 3개구와 강동구(2.18%)는 집값이 올랐다. 그러나 도심권(-1.28%), 강북권(-1.00%), 강서권(-0.61%) 등은 모두 하락하며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노원구 상계동의 상계현대 112㎡는 지난 1월 최고가 기준으로 4억3천만원선이었지만 이달에는 4억원 밑으로 내려왔다. 강북구 미아동 북한산시티 109㎡의 경우 연초 4억원선 안팎의 가격을 형성했지만 3월 들어서는 3억5천만~3억8천만원대로 조정됐다.
미아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부자 감세니 재건축 규제 완화니 해서 강남 집값은 들썩이지만 강북은 경기침체 직격탄을 맞아 실수요와 투자수요 모두 실종된 상태"라면서 "111㎡(33평)형 저층 급매물이 3억3천만원에 나온 것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사정이 있는 급매물이라고는 하지만 방 3개가 딸린 110㎡대 매맷값이 3.3㎡당 1천만원선까지 떨어질 위기에 놓인 셈이다.
■ 가계부실 뇌관 되나?=
강남북의 이런 집값 판도는 불과 1년 만에 뒤바뀐 것이다. 지난해 이맘 때는 '버블세븐' 지역 아파트값이 약세를 보이고 강북을 대표하는 '노도강' 집값은 급등한 바 있다. 노원구 아파트값은 지난해 연간 18.7% 올라 서울에서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부동산업계에서는 강북 집값 하락세의 배경에 경기침체 외에 지난해 강북권에 대거 흘러들어온 투기성 자금이 빠져나간 데 따른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1년 전 강북 집값 급등의 불길은 외지인들이 저렴한 강북 아파트 매물을 '싹쓸이'하고 호가를 올리면서 발화됐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께부터는 큰 손들이 강북에서 발을 빼면서 매물을 처분하고 이익을 실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노원구 상계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지난해 아파트값 급등 당시 노원, 의정부, 동두천 일대에서는 매수자 요구로 매맷값을 실제보다 올리는 '업(up)계약서'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면서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차익을 챙기고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약서'란 예를 들면 2억원짜리 아파트를 2억5천만원에 거래했다고 신고하는 것으로, 나중에 되팔 때는 5천만원의 양도차익을 감출 수 있는 세금 탈루 방법이다. 이런 업계약서로 인해 집값이 급등한 곳에서는 뒤늦게 호가대로 추격매수한 실수요자만 집값 하락 때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게 된다.
만일 강북에서 '거품 붕괴'가 현실화돼 아파트값이 지난 2007년 이전 수준(꼭지점인 2008년 상반기보다 20% 가량 낮은)으로까지 돌아간다면 그 충격파가 상당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자칫하면 '집값 하락 → 가계부실 → 금융기관 건전성 악화 → 대출축소·내수위축 → 경기침체 가속 → 자산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촉발될 수 있다는 뜻이다. 김희선 부동산114 전무는 "강남과는 달리 강북권의 중소형 주택 소유자들은 소득 대비 가계빚 이자상환 비중이 높다"면서 "그만큼 집값 하락 충격에도 취약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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