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기억이 되살리는 추억의 '뻥튀기기'

2009. 1. 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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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종국 기자]

▲ 뻥튀기기, 튀밥

유년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것 중의 하나가 뻥튀기기다.

ⓒ 박종국

본격적인 뻥튀기의 계절이 돌아왔다. 사실 뻥튀기기계로 튀겨 놓은 튀밥은 겨울철이어야 제 맛이 난다. 어렸을 때 따로 군입거리가 없었던 시절, 튀밥은 으뜸인 간식거리였다. 강냉이, 쌀, 떡국 등등을 잘 말렸다가 호리병형 기계 안에다 넣고 일정한 온도를 가했다가는 순간적으로 '펑'하고 튀겼다. 그러면 마치 요술을 부리듯 한 됫박의 강냉이가 한 포대로 바꿨다. 실로 눈 깜짝 할 사이에 그 형태가 변해 버린 것이다.

"야, 우리 집에는 내일 강냉이 뻥튀기 하러 간다!" "말도 마라. 우리도 간다. 쌀을 튀겨 이따만하게 강정을 만든다." "우리 집은 말린 떡국으로 뻥튀기한대."

추운 겨울날 양지바른 담벼락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노는 그때 그 시절 아이들 얘기다. 하도 군입거리가 없었던 시절, 군침 도는 얘기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때문에 겨울철 뻥튀기 얘기는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였다. 사실 그만큼 그때는 집집마다 뻥튀기를 많이 했다. 마치 설날 준비로 떡국을 몇 말이나 썰어두어야 하는 것처럼.

겨울은 뻥튀기기, 튀밥의 계절이다

세태에 따라 입맛이 많이 변했다. 요즘 아이들에게 그깟 튀밥이야 간식거리가 아니다. 그만큼 간식거리가 다양해졌다. 그러니 옛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는 튀밥은 이제 나잇살 든 어른들의 향수어린 간식일 뿐이다. 나는 지금도 튀밥하면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참 많이 그리워진다.

▲ 튀밥 재료 넣기

호리병형 기계에다 튀밥 재료를 놓고 있다.

ⓒ 박종국

▲ 튀밥 튀우기

일정하게 가열된 튀밥을 튀울 준비를 하고 있다.

ⓒ 박종국

▲ 튀밥 튀우기

일순간 뻥하고 튀밥이 터졌다.

ⓒ 박종국

웬 뜬금없는 이야긴가 싶을 테지만, 간절곶으로 해맞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잠시 울주군 언양시장에 들렀다. 낮선 곳, 그곳 시장에 눈에 띄는 반찬거리가 있나 싶어서였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날은 장날이 아니었다. 그래서 발길을 돌려나오는데, 저만치 앞에서 튀밥을 튀기고 있는 가게가 보였다. 그것도 한집 가게가 아니고 네 집이 의좋게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반가웠다.

"이렇게 여러 집 함께 붙어있으면 장사가 잘 되나요?" "보다시피 요즘 같으면 집안 식구 다섯이 몽땅 매달려도 손이 딸리지예. 그런대로 잘 돼지예. 20년 전에 제가 먼저 여기에다 터를 잡고 튀밥을 시작했는데, 그게 소문이 나서 이제는 네 가게가 나란히 장사를 하고 있어예. 손님들도 어느 가게를 따지지 않고 덜 분비는 데 먼저 찾아예. 그게 우리네 장사 법칙아인교. 아무리 내 가게에 손님이 없어도 남의 손님 절대로 빼앗지 않지예."

▲ 튀밥 맛보기

가게 앞에다 한 소쿠리 가득 맛보기로 내놓은 튀밥이 순식간에 밑바닥을 보인다.

ⓒ 박종국

뻥튀기 두 대를 번갈아 운용하며 튀밥을 만들고 있는 정광섭(60·울주군 언양읍)씨는 연신 바쁘다. 튀밥 튀길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아주머니들은 그의 손을 타고 튀겨지는 튀밥 맛은 유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가게 앞에다 한 소쿠리 가득 맛보기로 내놓은 튀밥이 순식간에 밑바닥을 보인다. 그러나 바쁜 와중에도 정씨는 또다시 튀밥을 한 소쿠리 담아낸다. 근데 이번에는 보리로 튀겨 만든 강정이다. 좀 까끄름하고 텁텁한 맛이 받치지만 자꾸만 손이 간다.

까끄름하고 텁텁한 맛이지만 자꾸만 손이 가는 튀밥

"튀밥은 왜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것일까요?" "튀겼으니까요. 콩알만한걸 뻥~ 하고 부풀리기 해놨으니 안은 텅텅 비었고, 그 부피만 큰 걸. 그것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는데 배가 부르겠어요? 먹어도 실속이 하나도 없는데…."

튀밥마니아 아내의 얘기다. 아내는 튀밥이 다이어트에 좋다며 간식거리로 즐겨먹는다. 튀밥은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다. 사실 쌀로 만들어진 튀밥은 원래 생쌀하고 그 부피가 13배나 차이가 난다. 그만큼 부풀러지는 것이다. 실속이 없다. 그래서 옥수수나 쌀로 튀밥을 만들었을 경우 옥수수 한 알이 가지고 있는 칼로리는 변함이 없으나 그 양이 너무나 커졌기에 그렇게 배부르게 먹어도 다이어트에는 별 지장이 없는 것이다.

▲ 튀밥 버무릴 재료

솥단지 안에는 조청(물엿)이 녹아 있고, 설탕과 튀김기름이 놓여 있다.

ⓒ 박종국

▲ 튀밥 고명

튀밥 고명으로는 땅콩과 깨, 검은콩이 주로 사용된다.

ⓒ 박종국

▲ 쌀 튀밥 버무리기

조청이 잘잘 끓으면 재료를 넣고 쌀 튀밥을 버무린다.

ⓒ 박종국

튀밥은 곡식, 즉 쌀로 만들어 지방은 없다. 또 저 칼로리라 간식으로 좋다. 다이어트 중인 여성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간식이고 남성들도 좋아한다. 그러니까 많이 먹어도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여러 다른 간식들보다 칼로리가 낮기 때문에 간식으로 굉장히 인기가 있다. 아내는 튀밥마니아다

또 튀밥은 다른 간식들 보다 불순물이 없어 좋다, 튀밥은 자연 그대로로 튀기기 때문에 크게 걱정은 안 된다. 하지만 그것을 이용해서 만든 강정은 조청과 튀김기름, 색소, 땅콩 등 여러 가지 고명을 넣기에 먹는 데는 조금 신경을 써야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너무 많이 먹으면 곤란하다. 그렇지만 튀밥은 간식으로, 심심풀이 할 때 굉장히 좋은 간식이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벌이가 좋았다이인교. 겨울한철 바짝 일하면 일년 먹고도 남았으니께. 하지만 지금은 그전만 못하지예. 나잇살이 좀 든 사람이 아니면 가게에 오지도 않는다아입니꺼. 튀밥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뻥 튀기는 그 소리가 듣고 싶은 거지예. 앞을 지나가도 그냥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고…." "뻥튀기는 한철 장사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튀밥은 습기가 닿으면 눅눅해져서맛이 없어예. 눅으면 질겨서 잘 씹히지도 않는다아인교. 더구나 물엿으로 버무리는 강정은 차가운 계절이 아니면 녹아 허물어져 버린다아인교. 그래서 튀밥과 강정은 겨울철 먹거리라예."

튀밥을 튀기는 재료는 다양하다. 쌀, 보리쌀, 강냉이, 깨, 콩은 물론이거니와 떡국 말린 것, 누룽지, 땅콩, 밤 등속을 다 튀겨낸다. 그리고 이것으로 강정을 만드는데, 튀밥 본연에다 조청과 꿀, 튀김기름, 고명(땅콩, 검정깨, 콩)을 튀밥에 버무려 판판히 밀어서 만든다.

▲ 판짜기

강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한 두께로 판짜기를 해야한다.

ⓒ 박종국

▲ 공굴대로 밀기

판이 짜지면 공굴대로 판판하게 민다.

ⓒ 박종국

▲ 판갈이

판판히 밀어진 틀을 드러낸다.

ⓒ 박종국

강정의 종류로는 쌀강정, 현미강정, 보리강정, 잡곡튀밥강정, 옥수수강정, 깨강정 등이 있다. 옛날 설날에 세배 온 아이들에게 세배 돈 대신 덕담과 강정을 내어 주기도 하였다. 유년의 추억을 고스란히 되살려주는 뻥튀기다.

유년의 추억을 되살려 주는 '뻥튀기기'

정광섭씨 튀밥 가게는 바쁘다. 그래서 이맘때만큼은 아들 정호창(34·울주군 언양읍)씨가 아버지를 돕고 있다. 벌써 20년째란다. 특히 그는 튀밥으로 강정을 만드는 게 주업이다. 쌀 두 되를 튀기면 튀밥 여섯 판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강정을 만드는 데는 여러 손이 필요하다. 정씨 가게는 아들과 아내를 비롯하여 다섯 명이 일하고 있다.

▲ 잘 식힌 강정 자르기

한동안 식혀둔 강정을 기계에 넣어 자른다.

ⓒ 박종국

▲ 기계에 장착된 강정판

잘 식혀진 강정판을 기계에 건다.

ⓒ 박종국

▲ 잘려지 강정

천편일률적인 크기로 잘려진 쌀강정이 예스러운 맛이 덜한 것 같았다.

ⓒ 박종국

먼저, 조청과 설탕, 튀김기름에다 고명을 얹고 쌀 튀밥을 넣어 알맞게 버무린다. 이것을 일정한 틀에 부어 공굴대로 판판하게 밀어서 한참을 식혔다가 알맞은 크기로 자르면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은 쌀강정이 된다. 하지만 요즘은 사람의 손으로 자르지 않고 그 공정을 기계가 대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천편일률적인 크기로 잘려진 쌀강정이 예스러운 맛이 덜한 것 같았다. 아무리 기계가 편리하다해도 손맛을 따를 재간은 없는 것이다. 한참을 어떤 강정으로 살까 망설이든 아내는 결국 보리강정을 한 봉지 샀다. 개중에 가장 맛이 없고 영양가도 못한 강정이다. 아마 아내는 옛 추억을 그리며 심심풀이 간식삼아 샀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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