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어온 나무상자가 편백나무 목욕탕 된 사연(상)

2008. 12. 3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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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부흥 기자]

▲ 얻어 온 상자

편백나무 목욕탕과 화장실의 골격이 될 재활용 목재

ⓒ 정부흥

공짜의 유혹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아무래도 공짜로 먹은 음식이고 가장 재미있고 신나는 일은 원하는 물건을 공짜로 얻을 때가 아닌가 싶다.

같은 직장의 신 박사가 내가 지리산에 집을 짓는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외국에서 구입한 장비 포장 상자가 튼튼한 나무로 되어 있으니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한다. 덤프트럭으로 240x130x150cm짜리 큰 상자 2개와 6장 정도의 합판을 계룡산 상신리 집으로 옮겨왔다.

'세상의 모든 걱정은 소유와 집착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진리를 확인하는 나날이 계속된다. 큰 상자 2개가 주차장을 차지하고 있으니 주차문제도 문제거니와 출근 때마다 이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저 상자들과 합판을 필요한 곳에 잘 써야 할 텐데'라는 생각에 가져온 날부터 편칠 못했다.

광주에 다녀올 일이 있을 때, 시랑헌으로 이 목재들을 옮겨 놓았지만 마음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집사람도 같은 문제로 걱정을 했는지, 상자 하나는 화장실로 만들고, 하나는 공구 보관함을 만들자는 나의 제안에 쉽게 동의하였다.

재활용 목재는 활용하기 위해 손질하면서 많은 못을 빼야하는 고생과 이리저리 자르고 연결하는 일을 하다보면 애착심이 생겨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공짜의 함정으로 빠져든다. 처음엔 공짜로 가져온 상자를 꼭 필요한 손질만 하고 가격이 저렴한 변기를 설치하여 급한 일이나 해결하겠는 정도에서 시작하였지만, 설치작업을 하면서 규모나 경비가 구르는 눈덩이 같이 커져버린다. 그러나 눈덩이를 굴리며 작업하는 동안에는 활기찬 삶의 보람과 후회 막급한 심정이 동전의 양면으로 상존한다.

다시 시랑헌으로

지난 10월 집사람이 시랑헌 마무리 공사 때 전동공구에 손가락을 다치고 난 후 모든 공사를 3년 뒤로 미루고 한달에 한 번 정도 시랑헌을 둘러보러 오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공짜 나무상자와 합판이 생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동안 화장실이 없어 겪었던 불편을 해결하자고 나와 집사람은 의기투합하고 근 3개월 만에 다시 시랑헌에 들어섰다.

▲ 동지팥죽의 고사 상

시랑헌에서 채취한 취나물과 호박나물을 함께차린 동지팥죽 고사 상

ⓒ 정부흥

시골이나 산골에서 자연과 함께하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낮이 길어진다는 사실은 생명이 돌아온다는 의미가 된다. 즉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하는 기점이기 때문에 24절기 중에서 동지가 가장 큰 명절이다. 동짓날에 악령이나 잡귀를 떨쳐버리고 청결한 몸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은 바람이 동지죽의 기원이 됐을 것이다.

전전 주말인 12월 21일이 동지였지만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시랑헌에 갈 수 없었다. 전 주말부터 나무상자를 이용한 목욕탕 및 화장실 건물 짓기를 시작하였다. 다시 시작해 보겠다는 의미를 되새기고 싶어 시랑헌에 도착하자마자 팥죽을 쒀, 가장 낮은 곳으로 자신을 낮추고 자연과 상생하는 삶을 영위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으로 동짓날을 기리는 고사를 지냈다.

시랑헌의 본 화장실은 재래식으로 만들 생각이나 손님들의 입장을 생각해 터닦기 공사 때 수세식 화장실을 위한 정화조를 설치했다. 목욕탕과 화장실의 배관공사는 정화조로 연결된 곳까지 연결작업이다. 공사의 규모는 벌써 확장되어 상자 하나는 목욕탕이 되고 다른 하나는 수세식 화장실로 설계가 변경되었다. 남원에 나가 필요한 자재를 구입하기 위한 목록을 만들었다.

▲ 편백나무 욕조

처음엔 만들어볼 생각이었으나 우선 실력자들이 만든 모양을 보고 한 두 차례 연습해볼 생각으로 구입한 나무욕조

ⓒ 정부흥

플라스틱 욕조는 편백나무 욕조로 바뀌었고 바닥도 천연방부재로 깔 생각이다. 벽면 인테리어도 편백루바로 마감할 계획이고 지붕도 삼나무 루바로 처리하고 세면기, 거울도 붙일 계획이다. 밖은 천연 방부목재로 돌릴 것이다. 한 평 남짓한 나무 상자가 최고급 편백나무 욕조를 설치한 고급 목욕탕으로 거듭난다.

모든 공사를 나와 집사람으로 구성된 우리 팀의 최대 장점은 설계 변경이 자유자재이고 필요한 공구 및 장비를 갖추고 있어 어떤 경우라도 추가 비용이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편백나무 욕조를 포함하여 남원에서 필요 자재를 구입하는 데 소요된 돈은 130만원을 넘지 않았다.

상하수도 배관공사

노고단에서 세석으로 연결되는 지리산 주 능선 쪽이 붉게 달아오르면서 어슴푸레 날이 밝아온다. 팥죽으로 농장의 곳곳에 고수레를 하고나서 배관공사를 위해 굴착기로 지반을 파보니 지반이 10cm 이상의 깊이로 얼어있어 땅파기가 만만치 않다. 서툰 기사가 운전하는 굴착기가 앞뒤로 심하게 출렁거리니 이를 지켜보는 집사람 애간장이 다 탄다.

굴착기는 앞뒤로 심하게 요동쳐도 위험하지 않다고 굴착기에서 내려와 집사람 등을 토닥거리고 다시 굴착기로 올라가서 언 땅 파기를 계속한다. 왕눈이 집사람 얼굴에 공포의 빛이 완연하다. 어렵사리 상하수도 배관을 마치고 나니 집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 하수도 배관공사

땅이 얼어있어 작업이 힘들었다.

ⓒ 정부흥

▲ 상수도 배관

지하에서 자연적으로 용출하는 생수인지라 원 줄기의 물을 차단할 장치를 만들어 놓지않아 상수도 연결작업에 어려움이 많았다.

ⓒ 정부흥

"여보! 상하수도 배관 위치가 맞아? 설계도 내놔 봐." 집사람 입장이 갑자기 감리단장으로 바뀌면서 채근 댄다. "이 까짓 것, 상자 목욕탕과 이동식 화장실 같은 코딱지 만한 건물에 설계도는 무슨 설계도여" 하면서 대들어 보나 집사람은 이런 상태로 기초 단을 쌓고 시멘트 시공을 하고나면 다시 뜯어내야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설명한다. 이미 집사람은 건물주이고 나는 시공업자이다.

시랑헌으로 돌아와 집사람 스케치 그림을 참고로 욕조와 변기의 치수가 정밀하게 고려된 상하수도 배치도를 그렸다. 완성된 배치도를 집사람에게 보이니 이제야 얼굴에 웃음이 돈다. 두개의 상하수도 배관위치와 엑셀로 연결된 상수도 부동전 위치가 바꿔졌으니 오전 일의 절반은 헛고생한 샘이다. 이것도 나를 강하게 하는 시련일까? 대책 없는 나의 우매함에 속절없는 한숨으로 배관공사를 다시 했다.

기초 단 쌓기와 시멘트 미장공사

기초 단을 쌓는 일과 시멘트 미장일을 남겨 놓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 후 차 한잔 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전동렬씨 지프가 시랑헌 고갯길을 오르다 미끄러지고 다시 오르다 미끄러지는 일을 반복한다. 내가 소리치면서 손으로 제지 신호를 보낸 후에야 차에서 내려 시랑헌으로 올라온다.

전동렬씨는 나와 같은 나이이고 젊은 시절 광주에서 복싱체육관을 운영한 스포츠맨이다. 군사정권 시절 삼청교육대 입소 대상자 지명 수배를 피해 부인과 같이 무일푼으로 지리산 깊은 산골로 숨어들어 양봉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26년간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산사람이다.

전동렬씨도 이제 당뇨병을 앓고 있다. 그의 언행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부인이 항상 그의 보호자이고 그는 감시의 대상인 모양이다. 그의 언행 하나하나가 부인을 의식하고 있다. 그의 부인은 매우 신앙심이 깊은 기독교인이다. 그는 법보다 의리와 주먹이 가까운 사람이다.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사람으로 친화력이 좋다. 우리나라 어느 곳이든 전동렬씨 친구나 선?후배가 없는 곳이 없다. 지금은 생계 걱정에서 벗어나 시랑헌 뒷산 견두봉 부근에 상당한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어제 김치를 갖고 시랑헌에 들렸던 그가 한심한 우리의 공사 진척상황이 걱정되었는지 다시 우리를 방문하였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조언으로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벗어붙이고 나선다. 돌로 기초 단을 쌓고 자갈을 채우고 그 위를 모르타르 시멘트로 마감하려던 나의 계획이 그에 의해 전면 수정되었다. 그는 황토 집을 몇 채 지은 경험자인지라 공사가 진척되어 감에 따라 그의 경험과 실력은 진가를 발휘했다.

▲ 기초단 쌓기

굵은 돌로 기초단을 쌓고 시멘트로 틈새를 매울 생각이었으나 나중에 데크에 묻힐 것을 고려해 동렬씨 조언대로 시멘트 벽돌로 쌓았다.

ⓒ 정부흥

▲ 시공 중인 목욕탕 기초

시멘트 벽돌로 테를 두르고 굴착기와 트럭으로 자갈을 운반하여 바닥을 채우고 그위에 시멘트로 미장을 하였다.

ⓒ 정부흥

돌은 시멘트 벽돌로 바꿨고 모르타르는 모래와 시멘트를 섞고 물과 반죽한 레미콘으로 바꿔 시공되었다. 시멘트 벽돌은 산동면에서 사왔고 모래는 산동-고달 간 도로공사 후 남은 모래를 덤프트럭으로 날랐다. 그는 작업 중에도 시종 즐거운 표정이었다. '일을 서둘지 말고 즐겨라'는 주문을 여러 차례 하였다. 항상 대전으로 귀가시간에 쫓기는 우리에게는 현실감이 없는 얘기로 들리기도 했지만 백번 새겨 들어야할 조언이다.

날은 저물고 시간은 6시가 지나간다.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졌지만 아직 시멘트 미장 작업이 끝나질 않았다. 시멘트 일은 시간 차이를 두고 나눠서 하면 나중에 나눈 부분에 말썽이 생기기 때문에 모든 공정을 한꺼번에 끝내야 한다.

전동렬씨에게 "전형! 우리들의 대전 갈 기차시간이 7시 40분이고, 지금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여기서 끝내야겠네" 하면서 의중을 떠보니 "7시까지 혼자서 끝낼 테니 친구는 공구들 잘 챙기고 대전 갈 준비를 하게" 하면서 작업을 중단할 기미가 없다. 그러나 쫓기는 시간에 일이 거칠어진다.

서울 딸에게 전화하여 인터넷으로 발권한 기차표를 반환케 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트럭의 전조등으로 공사장을 비추고 전등도 추가로 설치하였다. 야간작업 준비가 끝나자 나도 본격적으로 전동렬씨가 하고 있는 일을 거들었다. 7시 40분 남원에서 서대전으로 떠나는 열차를 타야 할 시간에 시멘트 공사가 끝났다. 주위를 정리하고 나니 8시이다.

▲ 화목난로에 생굴을 굽는 전동렬씨

난로에 생굴을 굽는다고 할 때 처음엔 심난했지만 전동렬씨는 장갑을 끼고 능숙하게 굴을 구워 늘 하는 솜씨임을 알았다.

ⓒ 정부흥

▲ 조촐한 뒷풀이

험하고 고된 일을 마치고 구운 생굴과 소주의 뒷풀이였지만 입담있는 전동렬씨의 유머와 얘기는 폭소를 자아냈다.

ⓒ 정부흥

전동렬씨, 나, 그리고 집사람은 힘차게 타오르는 시랑헌 화목난로 앞에 개선장군이라도 된 기분으로 둘러앉았다. 아침 일찍 산동 주유소 앞에서 쉬고 있는 수산물 운반차량에서 산 생굴을 구어 먹으면서 소주 한잔 타임이다. 겉모습은 거지 중 상거지인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오른 손에 살짝 구운 굴과 왼손엔 소주잔을 들고 마음껏 웃어본다. 옹골찬 웃음소리가 지리산 골 따라 흐른다.

2009년 새해 연휴 때에는 공짜 유혹의 산물인 130만 원짜리 히노끼(편백나무의 일본말)탕에서 목욕할 수 있는 시랑헌의 호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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