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탄광촌' 나이든 '주모' 의 하루

2008. 12. 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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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 양광삼] 낡은 시장 한 귀퉁이. 미로처럼 빽빽이 들어선 주점 안에서 여인네의 아련한 목소리가 형광등 불빛을 타고 비좁은 골목을 빠져 나오려 몸부림친다. 6㎡(두 평)남짓한 포장마차 안. 백발이 성한 늙은 주객과 주모가 나란히 마주 앉아 한잔의 술을 건넨다.

'니나노~ 난 실로 내가 돌아간다'는 흥겨운 노랫가락에 맞춰 술상을 두들기던 숟가락·젓가락 장단은 이제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젊은 작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사랑을 약속했던 수많은 '오빠' '자기'는 떠났다. 그 자리엔 이제 환갑이 가까운 주모의 주름진 손이 겹겹이 쌓인 세월을 대신하고 있다. 불황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다가오는 요즈음 강원도 태백 탄광촌에서 젊음을 불사른 주모의 넋두리가 더욱 처량하게 들린다.

△이혼 후 찾은 탄광촌.

31살이던 1982년 10월. 이혼의 상처를 이기기 위해 정처 없이 길을 나선 그녀가 버스에서 내린 곳은 태백이었다. 첩첩산중의 가을은 고향인 남쪽보다 훨씬 추웠다. 코끝을 스치는 산골 찬바람만이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새까맣다.듬성듬성 판자촌도 보였다. 탄광촌임을 깨달았다. 여관에 여장을 풀고 광산을 배회했다. '광부'속에서 지내며 '광부'를 알고 싶었다. 탄광촌의 밤은 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선술집을 차리면서 시커먼 광부들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화려한 불빛이 탄가루를 뒤집어 쓴 뭇 사내들을 달래기에는 충분했다. 밤새 '니나노~난실로 내가 돌아간다'는 노래를 부르며 술상을 두들겼다. 양 옆에는 젊고 예쁜 아가씨가 '오빠'를 부르며 술잔을 기울었다. 숟가락,쇠젓가락은 이미 휘어질 때로 휘어져 있다.

사내들은 같이 살자는 농 가득 담긴 말로 그녀의 환심을 사려했다. 그러면서 연신 막걸리잔을 들이켰다. 그것도 부족하면 시장 옆 사창가에서 돈을 쥐어주고 하룻밤 사랑을 샀다. 아가씨를 품고 그대로 잠이들었다. 한 달 월급을 대포 한잔과 하룻밤 풋사랑에 다 날렸다. 불빛도 취하고 거리도 취했다. 그녀가 전한 그 시절 광부의 일상이다.

△떠나는 사람들

37살이던 88년. 광업소에서 일을 하다 다른 일을 찾아 나선 정 많은 사내와 살림을 차렸다. 안식처가 필요했다. 술 한잔 나누던 날이 많아지자 수저를 같이 들었다. 그 사내와 10년을 살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인연이 아니었을까. 사내는 그녀와 아들을 남기고 떠났다. 90년대 중후반이었음을 기억한다. 주점을 찾던 많은 광부도 하나 둘 소리없이 떠나갔다. 사내를 떠나 보내고 나니 50이 다 되었다. 참 기구한 인생임을 깨달았다. 살면서 정이 드는가 싶더니…, 첩첩산중을 등지고 떠나는 님의 모습을 보니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날 밤 함석판 지붕 위에는 흰 눈이 검정 탄가루와 섞여 층층이 쌓이고 있었다. 여인네의 가슴에도 무정하게 떠난 님에 대한 한이 고이고이 쌓였다.

님은 떠났고, 주점은 남았다. 머리에는 벌써 세월을 이기지 못함을 알리는 흰 머리카락이 수북이 쌓였다. 한가득 정을 남기고 떠나간 사내들도 그녀처럼 그리움에 쌓여 옛 일을 회상하고 있을까?

주점의 형광등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한다. 삼겹살에 한 잔 술을 나누던 그 늙은 주객도 옷을 털고 일어섰다. 주모는 '오빠, 잘가세요'라며 유리문을 열고 배웅한다. 백발이 성한 '오빠 주객'이 흔들거리며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그녀는 골목길에 놓인 의자에 앉아 가느다란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물었다.

그녀의 신세 한탄이 넋두리처럼 들려왔다. "정 준 사람은 다 떠나고…, 내 젊은 날 낭만도 떠나고…, 고향 떠나온 지도 벌써 30년이 지났구먼…." 좁은 골목길엔 주점을 달구는 매캐한 연탄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태백 탄광촌의 흥망성쇠

1960~70년대 탄광촌이던 강원도 태백에서는 '개도 만원권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남한 최대의 탄전지대로 1981년 장성읍과 황지읍이 합쳐져 태백시로 승격하면서 탄광산업에 박차를 가했다. 장성·함태·황지·어룡·동해·태영·흥복·경동광업소 등이 들어서면서 태백시 인구가 한때 15만 명에 이르렀다. 급여도 달랐다.

60년대 광부의 월급이 2만 원, 70년대 초 3만 5000원을 받을 정도로 타 업종에 비해 몇배나 높은 급여를 받았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값싼 중국 석탄이 들어오고 대체 연료산업이 등장했다. 반면 탄광은 노후되고 폐광산이 늘자 광부도 점차 그 수가 줄었다.

태백의 부흥이 30년도 채 되지 않은 셈이다. 이후 폐광 지역의 주민생존권 보장과 지역 간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1995년 12월 29일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카지노를 세우기로 했다.

정부와 지방 자치 단체가 1000억 원을 기금으로 (주)강원랜드를 설립했다. 99년 7월 정선군 고한읍에 소규모 카지노 신축 공사를 시작으로, 2002년 사북읍에 대규모 카지노가 세워졌다. 강원랜드 현재 고용인원은 4200명이 넘는다. 지역 주민 70% 정도가 고용돼 있다.

태백=양광삼 기자 [yks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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