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빠진 일제고사, 쪽지시험보다 못해

2008. 10. 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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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부영 기자]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가림막을 친 가운데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 권우성

10월 8일, 처음으로 전국에 있는 모든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를 대상으로 국가 수준의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 평가를 '초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학교 학습과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능력을 진단하기 위해 읽기·쓰기·기초수학 영역의 기초학력 도달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평가'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에 있는 모든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들이 똑같은 문제지로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일제히' 보는 시험(일제고사)이 가져올 문제로 학부모와 교사들은 걱정하면서 거부하기까지 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나도 이런 시험이 국가수준으로 꼭 필요하고 같은 날, 같은 문제로 일제히 꼭 치러야 하나 의문을 갖있는 사람 중에 한 명으로, 3학년인 아이가 있다면 이 볕 좋은 가을날 골치 아프게 시험 보는 대신에 단풍이 물들어가는 산으로 소풍이나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대체 우리나라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서른 문제로 제대로 진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은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의아했다.

그러나 어쨌든 시험은 진행됐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각 교육청에 내려보낸 '시행 계획'에 보면 학교에서 평가지를 받으면 '학교장 책임하에 문제지, 답안지 등 평가도구에 대한 보안관리를 철저(보안구역을 설정하여 이중 잠금장치 장소에 보관)'하게 하라고 나와 있다. '보안구역'을 만들어서 '이중잠금장치 장소에 보관'하라니 참으로 중요하고도 대단한 평가지임에 틀림없나보다.

시험시간에 아이들이 수학문제가 이상하다고 했지만, '시행 계획'에 보면 '인쇄상태가 불분명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질문을 받지 않도록 한다'고 되어 있다. (참고로 이 기사에서 지적한 평가지는 경기도교육청에서 경기도 양평 지역 초등학교에 보낸 것으로 다른 시도 평가지의 경우 지역에 따라 기사에서 지적한 문제가 없을 수도 있음을 밝힌다)

[오류①] 보기가 빠져 풀 수 없는 수학 문제

아이들이 이상하다는 기초수학 11번 문제를 보자. 진짜 이상하다.

▲ 기초수학 진단평가지 11번 문항

보기 문항에 분수가 나와있지 않아 문제를 풀 수 없다.

ⓒ 이부영

'색칠한 부분의 크기를 분수로 바르게 나타낸 것은…'이라고 했는데, 몇 번을 읽고 또 읽어봐도 색칠한 부분은 있는데 분수가 없다. 문제를 잘못 이해했나 싶어서 또다시 읽어보아도 이 문제 진짜 이상하다.

[오류②] 덧셈 뺄셈 부호는 아래로 내려쓰기?

평가가 모두 끝나고 기초 수학 평가지를 자세히 살펴봤다. 그런데 11번 말고도 이상한 곳이 여러 곳 눈에 띈다. 덧셈과 뺄셈 문제에 +와 -표가 아래로 쳐져 있다. 언제부터 +와 -표를 이렇게 아래로 내려 쓰기로 한거지? '국가수준'의 수학 평가지에서는 이렇게 쓰기로 한건가?

▲ 아래로 내려쓴 +과 -표

문제지의 모든 곳에 +와 -표가 아랫쪽으로 내려 써 있다. 초등학교 기초수학이라면 +와 -같은 부호를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

ⓒ 이부영

다른 문제도 보면 +와 -는 모두 다 아래로 처져서 쓰고 있다. 교과서에도 동네 학원 모의고사에서도 +와 -를 이렇게 쓰지는 않는다.

▲ 국가수준 기초 수학 진단평가지 12번 문항

+, - 를 비롯하여 부호들을 모두 아랫쪽으로 내려썼다.

ⓒ 이부영

[오류③] '쌓기나무 그림'으로 개수 세기?

그 다음 24번 문제를 보자.

▲ 국가수준 기초수학진단평가 24번 문항

2-나 3단원 '쌓기나무 놀이'의 학습목표를 평가하는 문항으로 알맞지 않다.

ⓒ 이부영

평가문항만을 두고보면 아무 문제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문항을 평가를 왜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따져보면 매우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이 문제는 수학 2-나 3단원 '쌓기나무 놀이'에 나오는 내용인데, 이 평가 문항에서는 '그림을 보고' 쌓기나무 개수를 알아맞히는 것으로 되어있다.

평가는 교육(학습)목표를 확인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평가 문항은 학습목표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게 출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평가 문항을 보면 2-나 3단원 '쌓기나무 놀이'에서 제시하고 있는 목표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수학 2-나 교사용 지도서 3단원의 개관을 보면 '쌓기나무로 만들어진 입체도형을 보고 똑같이 쌓기, 주어진 쌓기나무로 여러 가지 입체도형 만들기, 쌓기나무로 만들어진 간단한 입체도형에서 쌓기나무의 개수 알아보기를 통하여 공간감각을 기르도록 하였다'면서 단원학습목표를 다음 세 가지로 제시해 놓고 있다.

① 쌓기나무로 만들어진 입체도형을 보고 똑같이 쌓을 수 있다. ② 주어진 쌓기나무로 여러 가지 입체도형을 만들 수 있다. ③ 쌓기나무로 만들어진 입체도형에서 쌓기나무의 개수를 알 수 있다.

이 단원에서는 분명히 쌓기나무로 만들어진 '입체도형'을 보고 하게 되어 있지, 쌓기나무로 만들어진 '입체도형 그림'을 보고 하게 되어있지 않다. 입체도형을 보고 하는 것과 '입체도형 그림'을 보고 하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이 평가문항은 3단원 학습목표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평가문항으로 이런 문제를 출제해서는 절대 안된다. 국가 수준의 평가문제를 출제하는 사람들이 단원 학습목표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기초학력 진단을 '일제고사'로 '지필고사'로 하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평가지 다시 나눠주고 문제 푸는 해프닝도

퇴근 뒤에 2주마다 모여 하는 공부 모임에 가서 주변 학교 선생님들과 기초 학력 평가지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곳에는 3학년 담임교사가 둘이나 있었는데, 11번 문제를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3교시 수학 시험 시간이 끝나고 답을 쓴 시험지를 다 거두어놓고 읽기 실기 시험을 보는 4교시에, 부장 선생님한테 메신저로 연락이 와서 11번 문항에 분수가 빠져있으니 아이들에게 수학 평가지를 나누어 주고 다시 11번 문제를 풀라했다고 한다.

그래서 거둬놓은 평가지를 아이들에게 다시 나누어 주고, 11번 문항에 빠진 분수를 쓰게 한 뒤 다시 풀게 해서 거뒀다 한다. 그러면서 왜 수학 평가지를 빨리 거뒀느냐고 했다 한다. 교육과학기술부 시행 계획에 보면, '시험시간표를 반드시 준수하여 운영한다'고 나와있다. 평가에서 이미 아이들에게 거둬놓은 평가지를 다시 돌려주고 다시 답을 써서 내게 하는 것이 과연 국가 수준의 평가인가? 학교에서 하는 쪽지 시험도 절대로 이렇게 막 하지 않는다.

우리 학교에도 기초수학 시험이 다 끝난 오전 11시 24분 37초에 경기도교육청 초등교육과장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긴급 업무연락이 왔다.

국가 수준 기초학력 수학 시험 문항(11번) 문항의 오류를 다음과 같이 알립니다. 오류내용 : 11번 문항 보기 탈락 ① 1/3 ② 2/3 ③ 1/2 ④ 2/5

8일 오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정답표를 보니 11번 정답이 ④로 나와 있다.

이 밖에도 기초 수학 평가문항을 모두 살펴보니, 이 평가문항으로 3학년 수준의 '기초학력'을 과연 제대로 진단할 수 있을지, 과연 교육과학부가 '국가 수준'으로 제시하고 있는 '기초수학'의 수준을 제대로 짚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초등학교 홈페이지 팝업창으로 올리라는 홍보문 Q&A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Q2. 왜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평가하나요? A : 국가 수준 평가는 개별 학생의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여 책임지도함으로써 학생들이 기초·기본학력을 보장하고, 객관적이고 신뢰성 높은 학력정보를 학생·학부모에게 제공하기 위한 평가입니다.

오류투성이인 '국가수준' 기초 수학 진단 평가지로, 원칙도 없이 우왕좌왕하면서 실시되는 '국가수준' 기초학력 진단평가 시행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부모들이 원하는 현장체험학습까지 '불허방침'을 내세우며 '일제히 강행'하면서까지 '객관적이고 신뢰성 높은 학력정보'를 얻겠다고 하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참 딱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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