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나치에 협력한 조국 문학 이름으로 고발.. '소멸'

2008. 8. 2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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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토마스 베른하르트/현암사

20세기의 거장 토마스 베른하르트(1931∼1989)는 아마도 소설을 쓰면서 자신이 구원받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가 작고 3년 전 발표한 '소멸'은 과거의 업(業)에 속박되어 있다가 해방되는 느낌을 주는 대작이다.

"프란츠 요셉 무라우는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간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나치 시대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작가이면서 로마에서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는 무라우는 부모와 형의 부고를 받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볼프스엑으로 향한다. 두 여동생은 졸지에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게 된 무라우의 눈치를 살핀다.

그러던 중 무라우는 나치 장교들이 조문 온다는 사실에 분개한다. 나치 장교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부모의 도움으로 호위호식하며 살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무라우는 볼프스엑의 모든 것을 냉정하게 관찰한 보고서를 쓰는데 그 보고서의 제목이 '소멸'이다. 소설 속에 또 하나의 소설이 들어 있는 것. "내가 쓰고자 하는 보고서는 보고서에 기록된 것, 즉 내가 볼프스엑으로 이해하고 있는 모든 것, 볼프스엑을 의미하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지요."(150∼151쪽)

그는 왜 볼프스엑을 악몽으로 여기고 있을까. 그 중심에 어머니가 있다. 다섯 개의 도서관을 만들고 예술 총서를 수집하며 정신적인 삶을 최고로 여기던 가문에 시집 온 어머니는 시댁을 소시민적 취향으로 바꿔버린다. 어머니는 예술 문외한이자 반문화적 인간이다. 무라우는 어머니를 '히스테리가 심한 나치'이자 '독일 여자'로 묘사한다.

나치즘의 아성으로 그려지는 볼프스엑은 작가의 조국 오스트리아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에 대한 작가의 냉소는 신랄하기 그지 없다. "언제나 하는 말처럼 민주주의 국가라고 떠들어 대지만 실은 가공스럽고 비굴하며 수치심을 모르는 국가고, 자신의 가공스러움과 비굴함, 수치심을 모르는 철면피함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런 끔찍함을 대외적으로 자랑하기도 한다. 살인마에게 터무니없는 연금을 송금하고 공로 훈장을 떠안기면서, 셰어마이어와 같은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국가가 도대체 무슨 국가란 말인가."(341쪽)

무라우는 존경했던 대주교 스파돌리니가 죽은 부모와 형을 한없이 미화하는 것을 보고 그마저도 마음에서 소멸시킨다. 자신의 뿌리인 고향이야말로 청산해야 할 대상이었기에, 그는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글을 자서전이 아닌 '반자서전'이라고 부른다. "나는 정말로 볼프스엑에 사는 식구들을 분해하고 해부하여 소멸시킬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 자신도 분해하고 해부하여 소멸시키지요. 그런데 나 자신을 분해하고 소멸시킨다는 생각을 하면 아주 기분이 좋아집니다.(224쪽)

조국을 정직하고 객관적으로 보았다는 이유로 생전에 기소당했던 베른하르크는 작품을 통해 나치에 협력했던 조국을 역으로 고소하고 있다. 부모의 모순을 청산하기 위해 자신의 핏속에 흐르는 모순까지도 헤집어내 소멸시키는 무라우야말로 베른하르트 자신인 것이다. 500쪽 분량에 문단 구분이 전혀 없어 지루해보일 수도 있지만 힘들게 읽은 만큼 한층 더 정신적으로 고양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소설이다. 지성의 유희를 즐긴다면 이 소설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정철훈 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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