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성기] 시말서

2008. 8. 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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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기사를 놓쳤을 때 기자들은 "물먹었다"고 한다. 다른 신문이나 방송 등 매체를 따돌리고 주요 기사를 먼저 보도하는 특종(特種)과는 정반대의 경우다. 특종을 한 기자는 능력을 인정받아 상(賞)을 타지만 '물먹은 기자'는 선배나 상사로부터 질책을 듣고 시말서를 제출해야 한다.

특종과는 무관하게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대부분 기사를 작성했는데 게으르거나 판단력이 무뎌 기사를 누락한 기자는 인사(상벌)위원회에 회부돼 징계를 받기도 한다. 다만 사안이 아주 중대한 경우가 아니라면 담당 데스크가 시말서를 받아두고 동향을 보다가 슬그머니 돌려주는 게 대부분이다. 지난 일로 벌을 주기보다 반성하고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업무가 복잡하고 경쟁이 치열한 직장일수록 실수는 잦게 마련이다. 공무원이나 일반 직장인을 가리지 않고 시말서를 쓰고 나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시말서는 보통 본인의 잘못을 전제로 해서 작성되지만 경위서는 책임 소재와는 무관하게 중립적으로 일의 자초지종을 밝힌 문서로 볼 수 있다. 시말서는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의미에서 경위서라는 용어로 순화하는 추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는 최근 반성문 성격의 시말서를 제출하라는 요구는 헌법상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명령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파견근무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말서 제출을 요구받고 이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견책' 처분을 받은 한 사회복지사가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 행위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청구 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것이다. 재판부는 시말서와 경위서 용어의 차이보다 사용자측인 복지관 인사 규정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반성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시말서를 요구할 수 있다'는 규정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논리다.

반성이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돌아본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시말서도 반성을 기반으로 구성원들의 업무 역량과 신뢰를 강화하려는 취지에서 운용돼야 실효를 기대할 수 있다. 실책을 부각시키거나 모멸감을 주려는 의도로 악용되면 분규의 불씨만 키울 뿐이다.

김성기 수석논설위원 kimsong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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