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목 칼럼>'어리버리'정책, '얼리버드' 성과 없다

2008. 7. 1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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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박재목 칼럼니스트]#1. 국민들로부터 지지받는 후보를 어떻게 해서든 끌어내리려고 지금 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다.(이 대통령 후보시절, 경남 당원특강에서)

#2. 한-미 FTA에 걸림돌이 되었던 쇠고기 수입 문제가 합의됐다고 들었다. 양국 대표들이 어젯밤에 한 숨도 안자고 밤을 새 협상을 했다고 들었다. 새벽에는 두 사람이 잠결에 합의한 것 같다.(웃음과 박수가 함께 한 미국 재계 관계자들과의 만찬에서)

#3. 그 밤에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래 소리도 들었습니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李대통령, 6.19일 특별 기자회견에서)

쇠고기 졸속협상이 괴담으로 전이되어 촛불의 열기를 더하고 있던 5월 초까지, 아무도 이를 대국민 민심교란의 엄청난 선전선동 전략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 때 유일하게 《데일리안》이 5월 5일자 칼럼 "각하! '대 국민 민심교란'에 뭐하세요?"를 통해 교조적 공포 조작을 엄단하고, 정책적 ´소신-책임-원칙´을 밝혀, 대통령 진정성으로 '당-정-청' 통치혼란을 접어 국민의 가치를 섬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정부와 보수 주류 언론들은 감을 잡지 못했다. 얼리 버드(early bird)만 강조했지, '어리비리' 정책은 외면되었다. 촛불 괴담이 '얼리 버드'에 묻힌 '어리비리' 때문에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책 부실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위의 3가지 장면과 연계하여, 쇠고기 괴담은 미쳐 날뛰게 되었고, 쇠고기 협상은 잠결에 합의한 것 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찔끔 개각으로 새 정부는 캄캄한 산중턱을 만나고 말았다.

'금강산 살인사건´ 해결, 이 대통령 마지막 역량검증 시험대

어찌 이번 사태가 한 사람의 살인사건인가? 분명한 도발이다. 2500만 사이비 교주는 또 "유감이나 책임은 남측에 있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여행 온 사람을 총을 난사해 죽여 놓고도 책임전가의 뻔뻔함을 보이는 집단에게 무슨 기대를 하고, 무슨 희망이 있을까? 북한 정권은 현장조사까지도 거부했다.

그래서 사태 장기화를 우려하기 전에 북핵, 납북인질, 연평해전 침략 등 그동안 북한 정권이 저지른 괴기한 사건들은 항상 2500만 사이비 종교집단이라는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조금이라도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금강산 살인사건´도 사이비 집단의 치밀한 전술 관점에서 사태를 파악해 나가야 한다. 의도성, 사체 유기, 북한 정권 거짓말, 금강산 관광, 대북정책, 통미봉남(通美封南) 대응 등을 다 함께 연계하여 이 문제를 풀어야 희미한 정답이라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일부 언론 보도와 같이 ´금강산 살인사건´ 보고를 사전에 받고도 이 대통령이 국회 개원연설에서 "과거 남북간에 합의한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을 어떻게 이행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 국민은 대북정책 성과의 조급성으로 사이비 교주의 새로운 시험대에 끌려 다니는 인상을 풍기며, 주도권을 ´통미봉남´에 빼앗기는 정부와 대통령을 보고 싶지 않다. 따라서 모든 대북경협, 금강산 관광 등에 대해 잠정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중단시키고 이 문제를 따지고 엄중한 사과를 받아야 한다.

이번 사태 접수에서 또 '어리버리' 정책이 튀어 나왔다. 사실관계야 어떻던 간에, "점심시간 핑계로 여유부린 청와대, 2시간 ´안보공백´ 허탈" 등의 메시지로 어떻게 대통령의 권징(勸懲)을 세울 수 있는가? 합참은 또 어이없는 '질병사망'을 보고하여 구멍 뚫린 ´당-정-청´ 위기대응시스템을 노골화시켰다.

국가 안보의 최후 보루인 군대가 당혹스럽다고 하면서, 전선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이 아니라서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는 허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만약 남극에서 우리 국민이 피격당하면 구출하러 안 갈 것인가? 용서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대북 경고 메시지를 먼저 던지고, 빨리 우리 요구에 응하라고 겁을 주면서 전방위로 압박해 나가야 한다.

'나의 탓-치밀한 전략-결연한 의지' 부족

얼리 버드(early bird)의 부지런한 것은 좋으나, 완장(권력)에 취한 조급성으로 충분한 정책검토와 치밀한 상황판단 없이 무작정 서두르면 분위기만 어수선해지고 실리와 실익은 다 도망가게 된다.

국정을 통치한다는 것은 아파트 공사판과 같이 새벽불 피우고 눈 비비며 ´왔다 갔다´하는 '얼리(early)'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충분히 잠을 못잔(치밀한 전략부재) '얼리 버드'(early bird)는 방향을 잃고 헤매다가 어딘가에 부딪히고, 사전 대책없는 '얼리 무버'(early mover)는 빈손으로 허둥대다가 결국에는 실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 대통령은 G8(선진 8개국) 확대정상회의에서 "나는 얼리 버드(early bird)라는 평을 듣고 있는데, 기후변화와 에너지 분야에서만큼은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얼리 무버(early mover)가 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또 다시 성급함과 조급성을 과시했다.

무턱 댄 성급함으로 쇠고기 괴담에 그렇게 시달리고도 온실가스 감축에 앞장선다고 자랑한단 말인가? 지난 1997년 미국, 일본, 호주 등 많은 선진국들이 환경이라는 망상에 빠져 성급하게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제시했다가 자국 내 산업계의 심각한 비판과 경제문제에 직면해 결국 그 목표를 다 폐기했다. 이번에 그 사실을 충분히 알고 '얼리 무버(early mover)'를 언급했는지 정말 걱정이 앞선다.

기후변화협약의 온실가스 감축은 선진국들의 추이를 보면서, 앞장 설 듯 말 듯 하며 최대한 감축의무를 늦추는 것이 최상의 국익을 담보하게 된다. 그동안 기후변화협약 대책에서 우리는 진정성, 선도노력, 적극참여, 국제리더십 모두를 상실하고 말았다. 진정한 노력도 없이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우왕좌왕하다가 EU와 개도국 사이에서 박쥐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어리버리'는 머저리를 뜻한다. 바른 표기는 '어리보기'이다. 말이나 행동이 다부지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실수와 멍청함을 수시로 드러낼 때 쓰는 표현이다.

이와 같이 새 정부는 이번 쇠고기 괴담에서 주어진 상황을 조리 있게 해결하지 못하고 허둥댔다. 전략이 산만하여 촛불산성을 공략하지 못했다. 항상 '어리버리'하게 무능대응과 능장대응으로 일관했다.

결국 촛불괴담이 목적을 다 이루고서야 물대포와 원천봉쇄로 종교계까지 끌어들이고 말았다. 사회갈등 세력의 정권도전에 대처하는 가장 실패한 교범을 단기간에 만들었던 것이다.

'어리버리'정책과 능장대응으로 일관

2007년에 들어서자 이미 세계경제와 미래가치, 그리고 시대정신은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변화의 요동을 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 모두는 그 엄청난 파고를 넘을 비장할 정도의 자기헌신과 자기성찰을 외면했다.

결국 보수우파 한 쪽은 7-4-7 국민성공시대의 만용에 취하여 나불거리다가 국민저항에 주저앉았고, 진보좌파 또 한 쪽은 쇠고기 괴담을 만들어 생명의 공포로 자기나라 전부가 개판이라고 외치며 국가이미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말았다.

외국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웃기고, 얼마나 고소하겠는가? 불과 40년 전만해도 최빈국이다가 이제 겨우 밥을 좀 먹는가 싶더니 "끝내 그 거지근성을 다 버리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는구나!" 하면서 한편으로는 안타깝게, 다른 한편으로는 까불더니 잘됐다는 식으로 혀를 찰 것이 분명하다.

도킨스와 맥그래스는 둘 다 영국 최고의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천재다. 하지만《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을 쓴 도킨스는 무신론의 대명사다. 그러나 또 다른 한 사람 맥그래스는 《도킨스의 망상(The Dawkins Delusion)》을 써서 무신론의 허위를 공격했다.

이와 같이 똑같은 세상과 가치를 보고, 오래 연구하고 생각하고 추론하고 분석했지만, 자기 자신의 관념을 어떻게 통치(Governance)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가치와 인간적 신념은 확연하게 달라진다.

이런 관점 차이를 촛불 선동가들은 심각한 생명의 공포를 동원하여 적절히 잘 이용했다. 식욕(食慾)의 먹을거리 행복을 공포인 광우병의 망상(妄想)으로 계속 겁을 주면서, 자신들의 권력 파이를 확대하고 기득권을 호도했다.

이런 한심한 작태를 안타깝게 본 국민들은 늑장대응과 무능대응으로 일관한 정부권력을 너무 원망스럽게 한탄했다. 선전선동, 민심교란, 가치왜곡의 세력들이 광화문의 마이크를 장악하고, 숭고한 대한민국 정신인 헌법 제1조를 파탄적 선동교란의 구호로 둔갑시킨 것을 보면서, 이 땅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너무 슬프고 통탄스럽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촛불 핵심들이 집단적 아집으로 뭉치고 지성의 카르텔로 위장하여 버젓이 사회적 리더로 행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수많은 자체모순을 안고 있으면서도 인터넷 까대기로 21세기 집단지성을 자처하며, 계속하여 순진한 국민들을 괴담과 촛불로 집결시키고 있다.

결국 국내증시가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앞으로 어디까지 추락할지도 모른다. 외국인직접투자(FDI)는 급감하고, `셀코리아´만 난무하여 환율안정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어쩌면 쇠고기 괴담으로 촉발된 위기의 한국경제에 투자하는 사람과 증권을 투매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머저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촛불의 주범들이 그렇게 희망하던 시간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지고, 주가는 폭락하고 있으며, 환율은 요동친다. 그들의 이런 전략을 정부는 왜 미리 몰랐을까?

증시 패닉, 촛불들이 그렇게 희망하던 시간이 도래

인류공멸의 가장 큰 위협은 공포를 조성하는 것이다. 막연한 불안감과 불확실한 미래의 위기감은 성찰과 미래가치에 대한 긴 안목을 방해한다. 반면에 공격적이고 승자독식의 투쟁적 갈등을 유발한다.

모든 인간의 비극은 망상(妄想)에서 촉발된다. 망상은 항상 오해, 오역, 오인, 괴담, 헛소문, 유언비어, 흑색선전, 민심교란, 왜곡, 오도(誤導), 과장, 불공정, 부정확, 불신, 사기, 날조까지 만들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또한 그러한 근거를 제공한다.

쇠고기 괴담도 처음에 미국 연방관보의 오역(誤譯)에서 광우병 공포의 빌미가 잡히고 말았다. ´주저앉은 소(downer cow)'는 급박한 충격, 도살 공포, 환경 변화 등으로 자주 발생하는 현상인데, 이를 모두 광우병 소라고 겁을 주면서 거짓말로 방송을 했으니, 국민들이 깜짝 놀란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동물학대 고발용 영상을 그들은 광우병 걸린 소와 치매환자로 사망한 사람과 함께 방영하여 국민들을 기묘하게 기만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망국적(亡國的) 작태를 국가권력이 방치했다는 것이다.

어떤 폐족들이 전 국민을 먹을거리 공포에 휩싸이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주어야 할 정부는 자기 권력 지키기에만 급급했다.

정부는 자기 권력 지키기에만 급급했다

이것은 분명히 극복되어야 할 관점이자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이다. '탈MB-반MB-노MB'는 정치적 신념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선택은 좋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시(國是)와 우리 후손들은 어떡하라는 건가?

국가 이미지와 경쟁력 브랜드에 스스로 먹칠을 하고, 자기 나라 가치가 모두 왜곡되고 거짓이라고 세계만방에 떠벌리는 작태를 어떻게 무심히 바라보고 그것을 용서하고 이해해야 하는가?

이제 평생 동안 쇠고기 이미지를 '미친 소'로 만든, 왜곡된 광우병 망상의 두려움으로 인해 전 국민의 먹을거리 행복은 망가졌다. 그래서 이런 천인공노할 비인간적 만행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든 엄정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그들은 또 무슨 핑계든지 대고 무조건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 진실이 뻔히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인간의 가치로 보지 않고, 단지 망상(妄想)으로 호도시켜 국민을 생명의 공포와 가치의 기만에 떨게 한 정신적 범죄행위를 어떻게 묵과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진실을 거짓으로 바꾼 작태를 국가권력은 현실적으로 지적하지 못했다. 정부무능은 그 괴담의 황무지에 국민들을 불안하게 내몰았다. 지구촌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과학적 진실을 가장 잘 왜곡시킨 지구촌의 위대한 괴담의 전사가 되고 말았다.

가공할 바이러스와 죽음의 공포를 조장하여 인간의 가치와 순전한 마음을 사회적 신뢰에서 피탈시키고 말았다. 어린 학생들의 영혼에 침투하여 순수한 인간성과 미래 희망을 파괴했다. 인간의 숭고한 가치를 한갓 고기 먹고 중독되어 미치고 날뛰는 괴담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안에 망령된 생각이 없으면 밖에 망령된 행동 없다

내무망사 외무망동(內無妄思 外無妄動). 주자(朱子)는 절대적 진리로서 마음속에 화두로 잡을 수 있는 본체론으로 "안으로 망령된 생각이 없으면 밖으로 망령된 행동이 없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많이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실수는 적당히 하는 것이 인간적이고, 줄여 나가는 노력은 소박한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그렇게 하자면 항상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에 하늘의 이치가 들어 있는 인성론은 16세기 후반 이황(李滉)과 이이(李珥) 등이 밀착한 주자성리학의 요체였다. 거경궁리(居敬窮理)는 인간 삶의 모순구조를 극복해야만 하는 종착점이었다. 그래서 망령된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일이 없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사물의 본질을 탐사해 나가면 망령된 일은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

망상(妄想)은 '밖'이 아닌 '안'의 사물, 즉 스스로 자기를 기만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망상은 제 정신을 잃어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망상의 delusion의 라틴어 'deludere´은 '잘못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망령될 망(妄)은 도리나 예법에 어둡고 이치에 거슬리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망상의 가장 큰 특징은 첫째로 세상 사람들 모두가 망상이라고 하는데도 본인만 아니라고 우기는 것이며, 둘째 세상이 이기적으로 변해갈수록 망상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망상(妄想)을 망상(望床)으로 착각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를 들러보면 전부가 자기중심적이다. 남을 배려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모습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그 대신에 이무 상관도 없는 일을 자신과 연관 지어 남을 배척하고, 위협하고, 빈정대고, 욕하고, 험담한다.

부도덕한 부와 권력을 동시에 잡고, 거기다가 명예까지도 한 몫에 잡으려다가 망신을 당하고서도, 왜 자기만 가지고 그러냐고 항변하기 일쑤다. 불투명한 재산 축적과 은닉, 불법투기, 병역비리, 이중국적, 논문표절, 학력위조, 세금포탈과 체납, 주가조작, 비자금 은닉, 불법로비와 금품수수 등은 사회적 문화와 실력으로까지 성장했다.

아무 비전과 전략도 없이 국민성공시대를 외치고, 아프리카 부족 수준의 경제마인드로 환율정책을 강행하여 수출확대의 망상을 나타났다. 그래서 어쩌면 사고(思考)의 이상 현상임 망상(妄想)을 보기 좋게 하기 위하여 큰 잔치 때 음식을 괴어 차려 놓은 큰 상을 뜻하는 망상(望床)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의 경제위기와 글로벌 불평등은 이미 오래 전에 경고

현재의 경제위기와 글로벌 불평등, 그리고 에너지 위기는 이미 2007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제4차 평가보고서에서 지적되고 경고되었다. 이 보고서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을 다루기 위하여 미래의 예측(prediction)이 아닌 다양한 미래의 이미지인 시나리오(scenario)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이와 더불어 값싼 석유와 값싼 식량은 더 이상 없다고 유엔 및 전문기관들은 일찍부터 예고했다. 그래서 2006년 말부터 유럽탄소시장(EU ETS : EU Emission Trading System)에서 탄소배출권 가격은 1톤당 20유로를 향해 급등하기 시작했다.

IMF도 원자재 가격은 2010년까지 절대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기에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쓰나미'처럼 파고를 일으켰다. 세계금융은 결국 신용부실과 거품불안에 이르렀다.

중국과 인도 등의 저가격 상품과 석유 등 저에너지가격 등으로 그동안 구가되었던 '골디락스(goldilocks)', 즉 높은 성장을 이루고 있음에도 물가가 상승하지 않는 상태는 이제 요원한 꿈이 되고 말았다.

지금 1980년 제2차 오일쇼크 이후 근 30년간 잊혔던 인플레이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어쩌면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우리 같이 자원빈국은 죽을 수도 있게 되었다.

많은 전문가들이나 금융기관들은 유가 1배럴당 200달러, 2006년 온스당 600 유로하던 금값은 조만간 2000 유로, 곡물가는 2007년 말의 5배까지 급등할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한국, '대재앙'의 시험장이 될 것

그러면 이런 세계적 위기에 가장 취약한 국가들은 어느 나라들인가? 한국은 지금 에너지 자급률 거의 제로 상태, 무역자유도 5.8%, 쌀을 제외한 식량자급률 5% 이하, 1차 상품 전량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여기에 아프리카 최빈국들을 더하여 '대재앙'의 시험장이 될 것이라고 전문기관들은 예측하고 있다.

이런 지구촌 위기를 논의하기 위해 선진 8개국(G8) 정상들은 7월 8일 일본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유가와 식량가격 급등이 글로벌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외쳤다. 하지만 그들이 한국과 아프리카 사정을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털끝만큼이라도 생각했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그들은 이참에 자신들의 경제적 파이를 갉아 먹는 한국을 그대로 죽이려고 획책했을지도 모른다. 기어이 우리는 G13에도 빠지고 말았다. 결국 촛불시위 효과가 큰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자기나라 정부는 개판이고, 정책은 모두 거짓말이고, 미국은 '미친 소'를 강제로 떠넘기는 나쁜 우방이라고 호도하는 국가의 대통령을 선진 8개국 정상들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았을까?

정부의 졸속 협상이 아무리 국민을 가볍게 보았다고 치더라도 96개국에 수출하는 미국 쇠고기를 종교집단까지 나서서 광우병 괴담으로 몰아붙인 촛불 작태를 어떤 나라가 신뢰하겠는가?

결국 G8 선진국은 세계문제의 공유 파이를 넓히기 위해 G13 확대개편 방안을 논의하면서 한국을 빼버렸다. 기후변화 주요국 회의(MEM)에 참석한 한국, 인도네시아, 호주, 중국, 인도, 브라질,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중 한국, 인도네시아, 호주가 빠지고 말았다. 그동안 우리는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라고 자랑해 왔다.

7% 성장하려면 5천만 전 국민이 허리띠 졸라매고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는 눈앞의 경제위기 요동을 바로 보지 못하고 7-4-7 국민성공시대의 망상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우리나라 경제규모에서 7% 성장하려면 5천만 전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총화 단결하여 죽을 정도로 생업에 매진해야 달성가능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자랑삼아 떠들었다. 사법과 검찰 등 국가법질서 신뢰도는 계속 떨어지고, 마약이나 보이스 피싱 등 국경을 넘나드는 사건은 급증하며,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더 이상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까지 다다랐다. 이런 신뢰붕괴 과정에서도 세계 제7대 강국을 자랑했다.

부정부패와 사기범죄는 급증해 지금 당장 사회적 신뢰구축이 가장 심각한 국가적 과제로 부각했는데도 불구하고, 학력위조, 공직자 부패와 거짓말, 사회지도층 도덕적 해이 등은 만연하고 있다.

누구하나 믿을 수 없는, 법 지키면 나만 손해 보는, 사회적 신뢰 수준이 OECD 최하위 상태에서 사회적 연대나 국민총화의 가장 기초적인 비전하나 없이 어떻게 4만 달러 국민소득이 가당하다는 말인가?

여기에 정치권도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하여 국정통치가 아예 괴담, 망상의 상태로 추락했다. 이런 신뢰 붕괴의 사회에서 어느 국민이 진정성을 가지고 국가발전을 걱정하겠는가? 불신과 부패의 사회적 파열음은 이미 곳곳에서 독버섯의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쇠고기 촛불괴담을 들고 안일하게 광우병 망상(妄想)에 빠져 허우적거릴 건가? 이를 방치한 정부도 "쇠고기 두려움 없으니 소리없이 먹어라."라고 망상(妄想)의 본질을 외면할 건가?

지난 10년간 기후변화대책 하나도 제대로 못해

1997년 12월 교토 프로토콜 이후 10년간 정부는 기후변화대책 하나도 바로 세우지 못했다. 종합대책 수립도 옳게 못하고 산업계 지연 전략에 말려 EU와 미국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면서 눈치만 보다가, 결국 지구촌 박쥐신세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어느 누구하나 우리의 지구온난화 대책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진정성이 없는 기회주의 국가라는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10년 전부터 자치단체와 산업계가 감축 시스템을 주도하고, 정부는 탄소금융 전문가를 양성하여 서울을 개도국 탄소시장 허브로 키워야 했었다. 결국 우리가 아둔하여 그 가치를 외면하니 중국 북경이 그 자리를 낚아채가고 말았다.

여기에 지금은 국내원화의 환율 문제까지도 불안하다. 시장의 흐름에 안착하지 못하고 꼭 정부가 외환보유고로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남의 손에 우리 돈 가치가 걸린 것이다. 그러면 어떤 위기상황이 발생해 임계수준이 터지면 그 때는 어떡할 건가?

이런 상황인데도 계속하여 괴담 주최자들은 현 정부 경제실책이 '촛불'을 불렀다고 하고, 정부는 촛불이 경제위기를 초래했다고 하면서, 초등학교 수준의 공박을 계속하고 있다.

분명하게도 지금의 촛불과 경제위기는 우리의 아둔한 망상(妄想)과 국제상황 때문에 촉발되었다. 그러므로 촛불도 경제위기도 '남의 탓'이 아니라 바로 '우리 탓'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도 이제 더 이상 정부 탓만 하지 말고, 대한민국 장래를 이끌 성장동력의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고, 전 국민 동참을 선도해 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정부를 질타해야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가지지 않는가?

사과(謝過)란 소통(疏通)의 발전소

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에 '사과데이(apple day)'라는 것이 있다. 2002년부터 사과향기가 그윽한 10월에 '둘(2)이 사과(4)한다'는 의미로, 그동안 소통이 막혀 있던 친구나 애인끼리 서로 사과(沙果)를 주고받는 날을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가 제안해 생겨났다.

사과(謝過)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소통(疏通)의 발전소다. 그래서 사과는 진정성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소통을 전제로 한 사과에 조금이라도 "진짜? 정말?"이라는 의혹과 회의가 깔리면 그 사과는 사과(四過), 즉 다음 4가지 과오로 변질되고 만다.

《변화의 리더십》를 쓴 하버드 경영대학원 존 코터 교수는 실패를 자초하는 변화전략의 4가지 과오로 △열정을 지피는 대신 탁상공론만 한다(추동력 부족) △너무 많이 이야기하거나 너무 적게 말한다(소통 부실) △전쟁이 끝나기 전에 승리를 선포한다(단기성과 조급성) △모든 잘못된 장소에서 악인을 찾는다(저항관리 실패)를 지목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통과 변화의 중요한 가치로 대의(大義)를 위한 긴박감 조성과 실행력 확보, 의사소통과 메시지 전달 노력, 설득과 양보, 행동하는 양심과 리더의 일관성, 조급한 삼패인 경계, 몰입유지의 위대한 방식, 변화의 장려와 기회의 약속 등이 등장한다.

썩은 상자와 썩은 사과

사회부패 이론 중에 '썩은 사과' 이론과 '썩은 상자' 이론이 있다. 냉소적이며 비리를 감싸는 문화가 조직 전체에 만연할 때 '썩은 사과(rotten apple)' 이론은 힘을 얻는다. 이런 입장에서 제시되는 처방은 겉으로 조직 전체가 개혁해야 하는 부담감이 없어 단기간에 문제 해결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부정부패의 원인이 '썩은 상자(rotten barrel)'에 있다고 보면, 조직의 근본 문제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물론 관리책임도 뒤따른다. 그래서 대부분은 '썩은 상자' 이론을 외면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성공한 국가는 모두가 처방을 내리기 좀처럼 쉽지 않은 '썩은 상자(rotten barrel)' 이론을 국가개혁 전략과제로 채택했다. 반면에 실패한 정권, 후진국, 권력중독에 빠진 정부들은 모두가 '썩은 사과'(rotten apple) 이론을 선호했다. 사회와 정권은 괜찮은데 국민 일부가 부패하고 나태하여 사회발전이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한국사회는 어떤가? 앞으로 정부는 이번 촛불괴담을 단순한 처벌 위주로 해결하지 말아야 한다. 그 대신에 이념갈등 극복, 국민통합 공감, 국가비전 공유 등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시스템 전략으로 국가부패와 사회갈등, 국민통합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촛불 집회에서 본 바와 같이 미래 이 땅의 주인공인 학생들과 순전한 국민들이 인터넷 집단까데기, 익명성 마타도어, 공권력 불복종, 비인간적 자극과 선동, 침묵과 방조 등의 '썩은 상자' 안에 들어가면, 정상적 사고와 판단을 가진 '멀쩡한 사과'들은 급속히 부패하고 만다.

'정책파동-조각파동-공천파동'과 3명 개각의 시각

공천파동과 조각파동, 그리고 지난 인수위 실책에서부터 최근 광우병 망상과 쇠고기 괴담을 촉발시킨 정책파동으로 뒤덮였던 거리에 희망의 빛을 넘치게 하겠다던 지난 6월 19일 이 대통령 특별 기자회견 약속은 3명의 장관을 경질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때 이 대통령은 "이제 새로 시작하자, 두려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다가가겠다, 새로 출발하는 저와 정부를 믿고 지켜봐 달라."라고 국민들에게 고게 숙여 사과했다.

그러나 지금 국민들은 "그렇게 약속했던 '두려운 마음'이 고작 이것이었나?"고 하면서 실망을 금지 못하고 있다. 내각이 총사퇴했던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벌써 잊어버린 것 같다는 불만이다.

잘못하면 앞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의 사과 대행인'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고 많은 국민들은 걱정하고 있다. '사과하라' '사과 안하면 책임 묻겠다' '사과는 무슨, 개방 해놓고 사과 하냐' '사과 안하면 전면 공격할 것' '사과 않으면 법적 조치' 등의 대통령과 정부에 온통 사과상자가 난무하고 있다.

이미 대선 전부터 ´이명박 사과´에는 수 만개의 댓글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들딸 위장전입 의혹 사과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의 비난 강도는 다른 방편으로 계속 확장되어, 그것이 지금의 촛불로 이어졌다.

제자리로 돌아가자고 할 '꺼리' 먼저 만들어야

우리가 어떤 사안에 대해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바로 '실천'하고 안하고의 문제다. 최근 자유기업원은 "촛불시위의 해법은 국회에 있다."라고 했다. 하지만 진정한 촛불 괴담의 정답은 '이명박 정부'에 있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 브랜드와 정부정책의 비전이 강력한 빛을 발했다면, 괴담과 망상의 촛불은 분명히 그 힘을 잃었을 것이다. 그런데 '7-7개각'에서 3명의 장관을 경질하는 의지를 가지고, 어떻게 신뢰회복 비전의 강력한 빛을 기대하겠는가?

그동안의 실책에는 과감히 사과하고, 불법에 대해서는 엄정한 공권력을 집행하는 강렬한 권징(勸懲)을 '이명박 정부'는 왜 보이지 못할까? 강한 빛의 연료는 대통령 자신의 국민을 섬기는 진정성임을 국민 모두는 다 알고 있다.

이러니 전봇대 야단법석, 영어몰입교육 파동, 통신비 인하와 유류세 인하 기대감허탈, 서민정책 실종, 숭례문 국민모금 철회, 장어 회식의 극단을 보여 준 어설픈 인수위 분위기가 아직도 여전히 선명하게 국민들 뇌리에 괴담으로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정책에 명분과 도덕적 힘 없으면 갈등만 유발

촛불의 주체들은 앞으로도 좌시하지 않겠다고 한다. ´1+5 투쟁´은 반MB의 핵심이라고 공개적으로 제시했다. 광우병 괴담전략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한다. △공기업 민영화 △교육개혁 △공영방송 개혁 △수도 민영화 △대운하 반대의 5대 투쟁 목표로 현 정부를 '다우너'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면서 "경제가 정치의 유질(留質)인가?", "무역은 기업이 하기 때문에 국가이미지는 망가져도 괜찮다."라고 강변한다. 또한 제3차 오일쇼크라고 걱정한 대통령의 진정성도 정치적 의도가 뻔한 ´경제위기론´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안타깝다. 경제가 어려워 먹을거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치적인 촛불이 무슨 가치를 가지는가? 아직도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뭐가 더 낫다는 개똥철학을 읊조릴 것인가? 외국 관광객 발길이 끊긴 것이 엄연한 사실인데도 끝까지 ´촛불괴담´ 난동 책임이 아니라고 항변할 것인가?

친박 복당에 때를 맞춰 7-4-7 아집 빨리 벗어야

이런 책임 추궁과 함께 정부도 시원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서 빨리 7-4-7 망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어느 정도 안착될 때까지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사소한 국민과의 갈등을 더 이상 일으켜서는 안 된다.

오만과 독선, 무능과 늑장 대처에 대해 솔직히 사과하고 희생과 헌신을 정부와 함께하자고 국민들에게 호소해야 한다. 꿈의 상실로 인한 저소득층의 분노를 꿈과 기회의 복원으로 가라앉혀야 한다.

또한 정부는 자상함과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7-7개각의 언론사별 논평을 냉철한 시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친정부적 언론은 걱정과 부담, 현실미봉과 보신, 좌고우면의 책임전가, 국민 눈높이 무시, 들끓었던 민심기대 이탈 등으로 보도했다.

반정부적 언론은 오만함으로 민심 무서움 망각, 걱정스러운 시국인식, 용두사미, 국정쇄신 기대 저버린 소폭개각 등으로 정권타도를 내세웠으며, 중립적 언론도 혼란정국 추스를 책임, 장고 끝에 민심은 어디로, 약발 먹힐지 미지수, 시늉뿐인 개각 등의 표현으로 정부를 질타했다. 그리고 'MB노믹스'의 상징인 강만수 장관을 많이 지적했다.

꿈의 상실로 인한 저소득층 분노 빨리 보듬어야

이와 같이 여전히 '이명박 정부'의 국정불능은 모두가 권력의 소통부재에서 촉발되고 있다. 소통할 소(疏)의 뜻 중에는 '빗질'의 의미가 담겨 있다. 빗질은 헝클어진 머리를 단아하게 빗어주고 정연하게 '정-반-합'의 가르마를 타준다. 가르마는 관점과 논리이다.

이런 차원에서, 일반적으로 국민들은 권력과 정부가 소박하게 국민에게 다가와 헝클어진 민생(民生)을 빗겨주고 쓰다듬어 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민심(民心)을 움직이게 한다. 언제나 소통은 국민의 기대와 희망의 물이 잘 흐르게 하여 잘 통하게 만드는 것이다.

소통할 소(疏)의 상대어는 막힐 조(阻)다. 소통의 반대 의미인 막힐 조(阻)는 위험하고, 음흉하고, 아슬아슬하고, 의심하고, 저상한 것을 말한다. 여기서 저상(沮喪)이란 '패망'의 옛말로 '기운을 잃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소통이 안 되는 것은 열정과 사기를 잃고 실패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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