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태종 이방원에게 배워라"

2008. 6. 1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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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현자 기자]

이방원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경복궁에서도 이야기를 나누며...

ⓒ 김현자

"1년여 동안 <오마이뉴스>에 오는 즐거움은 이정근 님이 90%는 제공하신 듯합니다." - 카우보이비밥(misterlove)

"내년까지 연재가 이어지길 바랐는데 아쉽습니다." - ddo(nenock)

"태종이방원을 읽는 것이 일상사 중에 큰 낙이었는데 이제 기다릴 것이 하나 없어져 버렸군요." - 도융(southsky)

"해박한 지식과 감동을 더하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 소용녀(mayonaka81)

"태종 이방원의 고뇌를 읽으며 세상을 새삼스레 바라보았습니다." - 길(goodsama)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13개월(2006.11~2007.12) 동안 많은 관심을 받았던 '태종 이방원' 마지막 회(212) '오르는 길보다 내려오는 길이 어렵더라'에 독자들이 남긴 댓글 일부다.

이외에도 '세월낚시꾼(yjd510)' 등 많은 독자들이 "정말 소장가치가 있는 역사책이 출간되겠군요", "드라마화 된다는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책이 언제 나온다는 걸 알아야 서점에 가서 사지, 언제쯤 출판 될지 알려 주세요"라며 책의 출간과 드라마 제작에 많은 기대를 했다. 그만큼 '태종 이방원'은 관심이 집중된 역사소설이었다.

연재 중, 개인 사정으로 며칠간 연재물이 올라오지 않자 "왜 태종 이방원이 올라오지 않느냐? 기자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가 있을 만큼 인기가 많았다는 후문이다. 이런 '태종 이방원'이 <이방원전>(1권-혁명기·2권-집권기, 가람기획)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태종 이방원', <이방원전>으로 출간

<이방원전>겉그림

ⓒ 가람기획

지난 3일 오후 1시, '이방원'의 주요 활동무대였던 경복궁에서 저자 이정근씨를 만나, 책 출간과 그가 생각하는 '태종 이방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처음부터 글이 굉장히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첫 작품인가?

"내 작품으로는 처음이다. 하지만,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기 전에 TV의 역사물 프로그램 대본을 썼다. 원래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 수많은 역사인물 중 하필 '태종 이방원'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혹시 이방원의 후손 아닌가?

"(웃음)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런 쪽으로 전혀 관련 없다. 역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역사물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필생에 반드시 한번은 쓰고 싶을 만큼, 그리하여 평생을 연구해도 가까이 가지 못할 만큼 태종 이방원은 큰 존재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태종 이방원에 대해 썼다. 하지만 '권력의 화신'이나 '골육상쟁'과 같은 어떤 한 부분만을 다룬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사람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야만 최소한의 편향이나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때문에 태종 이방원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모든 과정을 최대한 담아보고 싶었다.

또 그의 큰 그릇, 즉 인간적인 매력과 고려에서 태어나 조선의 왕을 4명이나 만든 삶의 과정이랄까, 장군의 아들로 태어나 선비로, 선비에서 혁명아, 혁명아에서 왕으로, 왕에서 다시 상왕으로의 바뀌는 대서사적인 삶에 끌렸다."

-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조차 이방원은 '골육상쟁'과 같은 면만 더 많이 기억하는 것 같다. 이방원은 어떤 사람인가?

"오늘보다 내일을 중시했던 발전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다. 세자인 양녕대군을 폐하고 충녕을 등극시킨 것으로 이방원의 미래지향적인 성격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몇 백 년 전 당시, 조선은 '세계의 모든 중심'이라는 중화주의의 중국, 즉 명나라의 영향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 조선과 이방원에게 세자 양녕이 오늘이라면 충녕은 조선의 미래이자 내일이었다. 이방원을 쓰자고 마음먹고 자료를 찾아 글을 쓰는 동안 아버지로서의 혈육의 정을 단호하게 끊고 군주로써 충녕을 택할 수밖에 없는 그 깊은 고뇌를 보았다. 이방원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1996년부터 이방원에 빠져들어... 중국·일본에서 당시 자료 수집

- 조선에 태종 이방원은 어떤 의미인가?

"이방원은 자신을 포함한 4명의 왕을 만들었다. 조선 500년 역사에서 태조 이성계와 세종은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이들에게 태종 이방원의 존재감은 매우 중요했다. 그 역할에 비해 가장 많이 축소된 사람이 이방원 아닌가 생각한다. 가령, 세종을 등극시킨 후 상왕으로 있으면서 실질적인 병권을 쥐고 대마도 정벌을 했지만 태종 몇 년이 아닌 세종 몇 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방원은 조선사에 제대로 자리매김 되어야 할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 <이방원전>프로필에 '1996년부터 이방원에 빠져들었다'고 적혀있던데, 준비기간이 꽤 길었던 것 같다.

"이방원에 대한 자료는 방대하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 국내에 공개된 자료만 가지고도 몇 권의 책을 낼 수 있을 만큼 많다. 그렇게 자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권력의 화신이나 골육상쟁 등 부정적인 면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다. 이제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른 태종 이방원을 만나고 싶었다. 때문에 방대한 자료에서 옥을 찾아내는 작업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태종 이방원'과 다소 다른, 즉 묻혔던 그에 관한 진실을 많이 밝혔다는 평이다. 그런 자료들은 어떻게 구한 건가.

"국내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되, 중국에 가서 중국 역사 속의 조선과 태종 이방원의 흔적을 찾아 다녔다. 아울러 일본과 미국에 있는 그 당시 관련 자료들까지 최대한 수집, 이렇게 수집된 수많은 자료들에서 옥을 찾아 면밀히 검토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를 되풀이했다. 국내 자료, 그것도 이제까지 알려진 자료들만 바탕으로 한다면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게 그려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현재 <오마이뉴스>에 연재중인 '소현세자'도 마찬가지다."

97% 역사적 사실을 자신하는 <이방원전>

왕과 왕실을 수행하는 관청 건물들이 있던 궐내 각사도 복원 예정, 그 터에 2010년 복원 마무리 계획으로 2007년 7월에 해체된 광화문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 김현자

- 역사소설과 사극은 재미와 흥미를 위해 어느 정도의 허구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를 진짜 역사로 여기기도 한다. 따라서 그 어떤 장르보다 신중한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역사에 충실하되 재미있게 써야한다는 생각에 고민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수필이나 신변잡기와 같은 글들은 혹은 잘못 써도 자신으로 그치고 만다. 하지만 인터넷에 연재를, 그것도 역사를 연재한다? 수 천 수만의 독자를 대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어 바로 수정한다고 해도, 인터넷에 이미 글이 올라가 있는 상태라 어느 정도 책임은 면할 수 없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고 잘못 알고 썼다고 해도 역사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 가지 사건에 대한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수도 없이 되풀이 한 후 확신이 들어야만 글로 옮겼다."

- 그럼 <이방원전>은 몇 %짜리 역사적 사실인가?

"97% 이상은 자신한다."

- '태종 이방원'에 이어 현재 '소현세자'를 연재중이다. 또 다른 인물 연재 계획이 있나?

"현재로서는 없다. 태종 이방원 연재를 마칠 때도 소현세자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역사에 관심 있는 몇 사람이 모임을 했다. 그분들이 다음 인물을 선정, 즉석투표로 소현세자가 결정되는 순간 그에게 끌렸다. 지금은 오직 소현세자와 함께 걸어갈 뿐이다. 다음 인물은 소현세자를 끝내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고한 기준은 있다. (책으로써)태종 이방원이나 소현세자의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시장을 중시하는 출판계의 시류에는 결코 따르지 않겠다는 것, 그보다는 역사와 독자에 부응하겠다는 것이다. 이방원이나 소현세자처럼 고뇌를 공감할 수 있는 주인공을 선택, 독자들과 함께 하고 싶다."

- 태종 이방원과 소현세자의 공통점은?

"당시 대륙을 보는 눈이 예리했으며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약소국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인정했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은 세계 초일류 강대국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아무리 날고 뛰어도 약소국의 한계가 있다. 조선은 감정에 휩쓸려 맞받아치면 대륙의 야욕에 흡수되어 소멸하고 마는 위험에 놓여 있었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흩어진 민족들이 수없이 많다. 고구려처럼 강대국과 겨룰만한 힘을 길러 맞장을 뜰 때까지 국가를 제대로 보전하겠다는 줏대, 그런 시각이 태종 이방원과 소현세자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연재, 힘들기도 하지만 독자와의 약속이 더 중요"

태종 이방원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경복궁에서 저자와 태종 이방원을 이야기하다

ⓒ 김현자

- 역사를 평가하거나 역사소설을 쓸 때 인물이 우선인가? 사건이 우선인가?

"사건을 우선으로 한다. 인물 중심으로 사건을 보다보면 그 인물에 가려 사건이 보이지 않는다거나 인물의 동선에 따라 사건이 그려지게 된다. 인물의 입맛에 맞게 왜곡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있다. 이런 것들은 역사를 제대로 알기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13개월동안 연재를 했다. 일주일에 3~4회 이상 올리는 게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연재는 독자들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태종 이방원을 마치고 소현세자를 시작할 때 '그렇게 힘든 연재를 또 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연재를 하는 동안 독자와의 약속 때문에 게을러질 수 없었다. 긴장을 늦출 수도 없었다. 힘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독자들과의 약속이 더 소중했다. 연재를 마치고 나니 그렇게 보냈던 날들이 무척 큰 의미로 남아 있다."

- 연재하는 동안 에피소드나 기억에 남는 독자는?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는 '당신 틀렸다'며 이제까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자료를 들어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자신의 석·박사 논문에서 이렇게 썼는데 기자님의 글이 사실이라면 난감하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교수들 중에는 '어떻게 이런 자료를 발굴했냐?'며 감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분들,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들과 교류하며 우리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태종 이방원 덕분에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분들과 좋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 우리가 <이방원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태종 이방원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 것 같지만 고려의 패망사이자 조선 건국사이다. 이런 역사의 가장 큰 전환기에 태종 이방원은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는 오늘보다 내일을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다. 쌓은 명예나 부, 쟁취한 권력을 현재에 모두 소비하거나 탕진, 혹은 쓸모없이 축적해두지 않고 내일에 투자할 줄 알았다. 현재의 통치자들이 이런 그의 사고를 귀감삼아야 하지 않을까?

세종이 자신의 정치적인 이상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고 역할을 해주었던 사람들은 태종과 태종 때의 신하들이다. 오늘날 정치현실을 예로 든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내에 가시적인 실적을 내겠다고 하는 것보다 자신의 뜻을 펼치면서 차기 대통령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방향과 바탕을 마련해주는 것이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국민들이 행복해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의 통치자들이 지난 역사에서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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