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불능' 섬 머스마 민재, 풍랑주의보 뚫고 입학식에 가다

2008. 3. 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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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주빈 기자]

전남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 앞에 있는 서소우이도에 있는 서리분교의 전교생은 민혁, 민재 형제 두 명. 다섯 살 혜민이도 오빠들을 따라 서리분교의 나홀로 입학생이 될까.

ⓒ 이주빈

민재를 처음 만나던 날

'나홀로 입학생' 기획을 진행하는 후배에게서 한 어린이의 이름과 입학할 학교 이름을 건네받았다.

김민재, 올해 여덟 살, 도초초등학교 서리분교 입학 예정.

나 또한 섬에서 나 한동안 섬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기에, 민재에 대한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커져만 갔다. 서리분교가 있다는 서소우이도(전라남도 신안군 도초면 소재)는 우이도 본섬에서 얼마나 더 가야 하나, 서리분교엔 재학생이 몇 명 있을까, 민재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일까....

목포에서 도초도까진 매우 편하게 갔다. 2일 오후 시속 60km로 바다를 달리는 쾌속선은 한 시간 만에 나를 도초도에 내려줬다. 멀쩡한 날에도 2m 높이의 파도가 울렁이는 흑산바다를 태어나서부터 오갔던 내겐 목포-도초 간 바다는 육지의 아스팔트와 다를 바 없이 편안했다.

하지만 호사는 거기까지였다. 도초도에서 우이도 본섬과 민재가 살고 있는 서소우이도를 가는 연안 연락선에 올랐을 땐 풍랑예비특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덩치 큰 배는 대야 안에 놓인 바가지처럼 흔들거렸다.

그렇게 약 한 시간을 파도에 시달리며 서소우이도 서리 선착장에 도착했다. 아이 세 명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법 볼 살이 오른 아홉 살 민혁이와 까만 피부에 눈이 유달리 반짝이는 다섯 살 혜민이 그리고 유달리 신나 있는 민재가 그 주인공이었다.

민혁이는 민재의 형이고, 혜민이는 민재의 여동생이다. 그러니 한 가족이 전부 누군가를 마중 나와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서리분교장으로 새로 부임하는 홍준호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홍 선생님은 3일부터 아이들의 한 분뿐인 선생님이자 친구가 될 것이다.

나홀로 입학생 민재가 다닐 서소우이도에 있는 서리분교 전경. 교실 한 칸, 관사 한 칸, 농구대 하나.... 모든 게 작고 좁지만 민재의 꿈만 크고 넓기를...

ⓒ 이주빈

민재가 다닐 서리분교 앞에서 세 남매가 장난을 치고 있다.

ⓒ 이주빈

이번에 나홀로 입학할 민재를 포함하면 서리분교의 재학생은 모두 두 명. 민재와 민혁(3학년) 형제가 외딴 섬마을 분교의 전교생인 셈이다.

사람과 놀이가 그리웠던 것일까. 아이들은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잘하는 운동이 뭐예요" "이 공 받아서 패스해요" "마빡이 같이 해요" "우리 비밀기지 가서 함께 놀아요" 등등 줄기차게 질문을 퍼붓고 놀이를 권유했다.

특히 나홀로 입학할 민재는 기세가 말 그대로 '섬머스마' 같았다.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다가는 갑자기 형에게 달려들어 씨름을 하고, 좁은 분교 운동장을 느닷없이 뛰다가 농구대에 야구공을 던지곤 했다. 어찌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던지 정신이 다 멍할 정도였다.

간신히 말을 붙여 보았다.

"민재야, 꿈이 뭐야?"

"(숨도 쉬지 않고) 축구 선수나 달리기 선수요!"

민재 아빠 김태호(35)씨는 "아이구, 저 통제불능들"이라고 혀를 내두르면서도 넉넉한 웃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이 섬에서 나 이 섬에서 새우와 병어잡이 어장을 하고 있는 젊은 어부가 민재의 아빠다.

김씨는 "공부 잘하는 사람보다는 착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커갔으면 좋겠다"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민재에게 미리 입학 축하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민재 엄마 박진(30)씨는 "민혁이도 혼자 학교를 다녔는데 걱정"이라고 했다. 왜냐면 "또래 아이들이 없으니까 학교에 흥미를 잃고 어른들하고만 어울렸기 때문"이다.

아홉 가구 스무 명 남짓의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서소우이도엔 민재 형제들이 놀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형이 친구고, 동생이 동창인 것이다. 박씨는 "그래도 이번에 지 둘이 다니니까 그나마 나을 것 같다"며 "새로 오신 선생님도 경력이 많은 분이 오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기대했다.

풍랑주의보가 떨어졌다며 민재 아빠가 도초도로 서둘러 나가라고 길을 재촉했다. 이제 며칠간 연안 여객선이 서소우이도에 들어오진 못할 것이다. 아이들의 아우성 소리를 뒤로 하고 사선(私船)에 몸을 실었다. 요란한 기관 소리에 묻혀 민재 아빠가 한 톤 높여 하는 얘기가 들려왔다.

"내일 바다 날씨 봐서 도초 본교에서 열리는 민재 입학식에 갈 수 있으면 갈게요."

민재와 민혁의 '비밀기지'. 생선 말리는 줄 아래 그물이 아이들의 비밀기지이자 놀이터다.

ⓒ 이주빈

민재가 함께 입학한 친구들과 함께 입학선물을 받았다. 민재가 다닐 학교는 도초초등학교의 한 곳 뿐인 분교, 서리분교다.

ⓒ 이주빈

민재 입학식 하던 날

3일 아침 8시 무렵 민재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배 타고 도초 가고 있거든요…." 그리고 전화는 끊기고 말았다. 우이바다를 건너고 있는 듯했다. 허름한 도초도 여관방 TV에선 "서해바다에 강풍이 불고 있고 풍랑주의보가 내려졌으니 항해하는 배들은 조심하라"는 멘트가 반복되고 있었다.

걱정스런 마음에 일찌감치 입학식이 열리는 도초초등학교에 가 민재 가족을 기다렸다. 도초초등학교의 전교생은 114명. 이번에 새로 입학하는 24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수다. 기철호 교장 선생님에 따르면 3월 3일자로 동도초등학교와 통폐합해서 입학생 수가 조금 더 많다고 한다.

도초초등학교에 딸린 분교는 민재가 다닐 서리분교 하나 뿐. 분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입학시도 본교에 가서 치러야 한다.

잠시 후 민재가 형 민혁과 함께 입학식이 열리는 대강당에 모습을 나타냈다. 바다엔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상태. 서른다섯 젊은 아빠는 평생 한 번뿐인 둘째 아들의 입학식을 치르러 섬에서 섬으로 배를 몬 것이다.

낯선 곳이 생소했는지 민재는 조금은 긴장한 얼굴로 새로 입학하는 친구들과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았다. 드디어 오전 10시, 민재의 입학식이 시작됐다.

민재가 고사리 같은 손을 왼쪽 가슴에 얹어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가 싶더니 잘 모를 법한 애국가도 참새처럼 입을 오므리며 곧잘 따라 부른다. 그러나 민재가 누구던가. 아빠조차 '통제불능'이라 하지 않았던가. 묵념이 시작됐는데도 민재는 눈을 감고 머리를 숙이기는커녕 외투를 벗었다 입었다 하고 눈을 들어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민재가 입학선물로 받은 사탕목걸이를 머리에 두르고 있다.

ⓒ 이주빈

기철호 교장 선생님은 민재를 비롯한 새로 입학한 어린이들에게 "남보다 잘하는 것 한 가지 가지라"고 했다. 또 "동생 입장, 외로운 친구 입장이 되어 보라"며 "서로 배려하는 어린이가 되자"고 새싹들에게 당부했다.

6학년 김진아 학생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착한 일을 하는 귀염둥이가 되자"며 환영했다. 김진아 학생의 환영사가 끝나자 6학년 어린이들이 1학년 입학생들에게 명찰을 달아주었다. 또 5학년 어린이들은 사탕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단체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민재의 입학식은 끝났다. 민재는 형과 다시 서소우이도에 있는 서리분교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도초도에 있는 본교로 나와 같은 학년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갖기도 할 것이다.

민재와 함께 서리분교 생활을 시작하는 홍준호 선생님은 "민재가 부잡스럽게 보이기도 하겠지만 아이들은 12번 변하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오랜 교직 경력에서 우러나오는 얘기를 한다. 홍 선생님은 "민재가 자유스러우면서도 약속을 잘 지키고 책임을 완수하는 어린이로 커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민재와 함께 할 분교 생활의 각오를 다졌다.

목포로 가는 여객선을 기다리며 민재 아빠에게 전활 걸었다. "입학식도 끝났으니 자장면을 먹으러 갈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사나운 바닷바람을 헤치고 바다갈매기가 선착장 하늘 높이 날고 있었다.

민재도 어느 날엔가는 바다갈매기처럼 훌쩍 날아올라 너른 세상을 둘러보게 될 것이다. 민재가 보다 높이 나는 갈매기보단 보다 큰 꿈을 꾸는 갈매기가 되기를…. 민재가 보다 멀리 나는 갈매기보단 보다 따뜻하게 나래짓하는 갈매기가 되기를….

민재가 입학식을 마치고 서리분교에서 함께 공부할 홍준호 선생님과 엄마 그리고 여동생 혜민이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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