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학교 안에 히틀러가 준 나무가?

2008. 2. 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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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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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림동엔 옛 양정고등학교 건물이 남아 있다. 인근 골목 이름이 양정길이다. 지금 양정고등학교 터는 손기정 체육공원이 됐다. 손기정이 학교를 다니며 세계를 재패한 곳, 중림동에선 손기정의 자취를 만날 수 있다. 손기정 체육공원에서...

ⓒ 조정래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은 평생을 골목 사진 촬영에 바친 故 김기찬(1938-2005)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펴낸 책이다. 총 150장 사진 중 무려 58장이 서울 중구 중림동이다. 사실상 중림동 사진집이라도 해도 될 정도로 이 책은 중림동에 큰 비중을 두었다.

그만큼 중림동은 골목이 잘 살아있는 마을이었다는 뜻이다. 놀라운 점은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에 1995년 중림동 골목 사진까지 있다는 사실이다. 90년대 중반까지도 중림동이 옛 골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서울대 양정재 교수가 1992년에 펴낸 <저소득층의 주거지 형태 연구>에도 중림동은 서울 달동네 10여곳에 포함돼 있다. 영화 <비트>를 찍은 김성수 감독이 달동네 뒷골목 풍경을 담은 작품 <비명도시>를 찍은 무대에도 중림동이 포함돼 있었으니, 중림동은 골목을 찾는 이들의 단골 명소였던 모양이다.

중림동은 조선시대 4소문 중 하나인 서소문 이웃 마을이었다. 서소문은 숭례문(남대문)과 돈의문(서대문) 사이에 있던 서남쪽 문이었다. 동남쪽에 있던 광희문과 함께 시신을 성 밖으로 내보내던 통로였다. 조선시대 공식 처형지로 이 곳에선 각종 모반 사건과 범죄에 연루된 자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14년 일제 도시계획에 따라 문이 사라졌고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손기정 체육공원 옆 언덕길엔 골목이 잘 남아 있다.

ⓒ 조정래

이 곳 출신이거나 살았던 걸출한 인물을 꼽자면 이승훈과 김정호를 들 수 있다. 한국 교회 최초로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처형된다. 정약용의 셋째 형인 정약용이 이승훈의 처남으로 그 역시 신유박해 때 처형됐다.

'대동여지도'로 유명한 김정호는 약현에서 살았다. 만리동에서 서울역으로 넘어오는 고개에 약초밭이 많아 고개 이름이 약현이었다. 약현이 있는 곳이 지금 중림동이다. 김정호에 관해선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는데, '대동여지도'를 본 신하들이 기밀을 누설할 위험이 있다고 해서 옥에 가두어 죽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설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다 한국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당대에 제대로 평가를 못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기찬이 사랑한 골목길 동네도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중림동 지역인 만리동2가 만리재길 북쪽 6만6852m²엔 2013년까지 아파트 1202채가 들어설 계획이다. 그 외에도 곳곳에서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2007년 한 차례, 2008년 1월 두 차례 중림동을 찾았다.

국내 최초 서양식 교회 건축물 약현성당, 경건한 마음 절로 들어

김정호가 중림동에 살았다는 표지석이 교통섬 꽃밭 한가운데 있다. 표지석 참 보기 힘든 곳에 세워놓았다.

ⓒ 조정래

한국경제신문건물을 바라보고 염천교를 건너면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 가운데 각 방향으로 건널 수 있는 교통섬이 있다. 이 교통섬 꽃밭 가운데 표지석이 하나 덩그러니 서 있는데, 그게 바로 김정호 표지석이다.

나름대로 이 지역 인물을 상징한다고 애를 썼지만 위치가 참 애매하다. 이 교통섬에 가려면 신호등을 최소한 1-2회는 건너야 한다. 게다가 꽃밭 한가운데 있어 보기가 쉽지 않다. 약력이라도 볼라 치면 아예 차도로 나가야 한다. 비석 앞면도 제대로 보는 이가 없는데, 약력을 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차도 쪽으로 나설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왕 대접할 마음이었다면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세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악현성당. 1892년 준공된 건물이다. 구불구불 오르막길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숨을 거두었다 부활하는 과정이 비석에 그려져 있다.

ⓒ 조정래

약현성당

ⓒ 김대홍

김정호 비석에서 산 쪽으로 눈을 돌렸을 때 보이는 건물이 약현성당이다. 1891년 착공하여 1892년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 서양식 교회 건축물로 사적 제252호다. 약현성당으로 들어설 때 직선으로 곧장 가는 넓은 길이 있고, 왼쪽 편 도보길이 있다.

도보길엔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못 박힌 채 숨을 거두었다 부활하는 과정이 열 네 차례에 걸쳐 비석으로 그려져 있다. 비석그림을 하나하나 보면서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오르다 보면 자연스레 경건해질 것 같다.

그렇게 예수의 마지막을 따라가다 보면 눈앞에 약현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약현성당은 1999년 2월 화재로 첨탑이 사라진 바 있는데, 이후 복원하면서 1892년 건립 당시 형태로 모두 고쳤다. 이 때 콘크리트로 덮었던 바닥도 목재마루로 복원했다.

성당엔 1893년 3월에 들여온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종을 비롯 창립 1백년이 넘은 가톨릭출판사도 있어 오랜 역사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마라톤 영웅 손기정 자취 남아 있어

손기정 체육공원 안에 있는 손기정 발도장

ⓒ 조정래

중림동하면 떠올릴 수 있는 유명 인물로 손기정을 빼놓을 수 없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딴 손기정은 지금은 목동으로 옮겨간 양정고등학교 출신이다. 1905년 개교한 양정고등학교는 98년 목동으로 학교를 옮기기 전까지 만리동에 있었다.

양정고가 떠나간 뒤 학교 터는 손기정 체육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양정고등학교는 체육공원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서울역사 뒤편 만리동 고개를 오르다 고개 중간쯤에서 오른쪽으로 꺾은 뒤, 골목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손기정 체육공원이다. 이르기 전 한 골목엔 100여년 된 박우물터가 있다. 지금 식수로는 사용하지 않지만 화재등 비상시에 소방용수로 사용한다.

양정고등학교는 1936년 손기정이 금메달을 딴 것을 기념해 손기정이 머리에 쓴 것과 똑같은 월계수를 학교에 심었다. 이제 80여년 된 나무가 꽤 크다. 잎이 가득 달린 가을쯤 와서 보면 시원한 정자나무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나무 옆엔 당시 독일 총통인 히틀러가 준 나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공원 안에선 실제 손기정 선수의 발바닥 크기를 알 수 있는 발도장이 있는데, 생각보다 무척 작다. 이 작은 발로 금메달을 딴 게 놀라울 뿐이다. 그 외 손기정기념관에서 손기정의 생애를 알 수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

손기정 체육공원 옆 언덕 동네에 골목이 잘 발달돼 있다. 이 언덕 꼭대기에 학교 하나가 있는데, 겉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이 건물이 봉래초등학교인데, 1895년에 세워졌으니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동네 소식 전하는 골목길 평상, 길 곳곳에서 나그네 맞아

동네 한가운데 있는 쉼터

ⓒ 조정래

농촌에 가면 어디서나 공통으로 볼 수 있는 게 정자나무다. 여기서 마을 어르신들은 정담을 나누고 여름엔 더위를 피한다. 정자나무는 마을소식을 나누는 사랑방이면서 더위를 피하는 피서지였다.

도시에선 어디가 정자나무 역할을 할까. 건물 아래 그늘 진 평상이 그런 쉼터가 아닐까. 중림동엔 유난히 그런 곳이 많았다.

약현성당 뒤쪽엔 기와집이 무리를 이룬 마을이 있다. 주변엔 고층빌딩들이 둘러싸고 있어 과연 이런 곳이 있을까 의아해지는 동네다. 작은 동네지만 마을 한가운데엔 두 군데 빈터가 있다. 한 곳은 온갖 야채를 심었던 흔적과 함께 화분이 놓여 있다.

또 다른 한 곳은 제대로 쉼터처럼 꾸며져 있다. 가운데 탁자가 놓여 있고 옆엔 의자가 몇 개 있다. 위엔 햇빛과 비를 막을 수 있도록 가리개도 쳐 놓았다. 골목에서 야채를 다듬던 할머니께 여쭤보니 이웃 주민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날씨가 좋을 때는 여기에 모여 정담을 나눈다고 한다.

동네 주민이 직접 만든 쉼터라고 하니 더 정감이 간다. 특이한 것은 이 쉼터를 가운데 두고 집이 빙 둘러 있어 광장 같은 느낌이 난다는 점이다. 아마 마을에서 함께 처리할 일이 있을 때는 이 곳에 모여 처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쉼터엔 태극기를 달았고, 인근 나무에 인공 귤을 달아서 모양을 냈다. 달력도 걸려 있다. 골목여행을 함께 다니는 후배 정래는 "이 쉼터를 보니 마을 전체가 아늑한 느낌"이라며 감탄했다.

손기정 체육공원 옆 언덕길 골목동네가 제법 길맛이 난다. 뒷산을 따라 난 골목길은 경사가 급하다. 계단길을 몇 개 오르다 보면 숨을 고르게 된다. 그런 위치에 꼭 평상이 놓여 있다. 큰 평상 하나만 놓여 있을 때가 있고, 큰 평상 작은 평상이 함께 놓여 있는 경우도 있다.

이 곳은 주차지역이 아닙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쉬는 곳이랍니다.

ⓒ 조정래

한 평상엔 페인트로 '임시휴게소'라고 써놓았다. 재미있다. 멋들어진 휴게소는 아니지만 언덕길을 오르는 이들에 대한 동네 주민의 마음씀씀이가 잘 드러난다.

이런 배려는 손기정 체육공원 아래 이면도로 쪽에서도 볼 수 있다. 주차금지 표지판이 길가에 있었는데 이유가 '주야간 노약자 쉬는 곳'이다. 표지판이 서 있는 곳은 꽃밭 옆인데, 근처엔 의자가 몇 개 놓여 있다. 자기 집 차를 대기 위해 주차금지 표지판을 세우긴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본 것 같다.

쉼터라고 하면 꼭 돈을 들여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목책을 두르고 그 안에 팔각정이라도 세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 중림동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평상 하나로도 좋은 쉼터가 됨을 느끼게 된다.

자장면에 생맥주. 아주 맛있게 먹었다.

ⓒ 조정래

마지막 쉼터를 구경할 때쯤 이미 해가 지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정래에게 "우리도 쉬어야 하지 않겠어?"라고 물었다. 손을 호호 불던 정래가 '헤' 웃는다. 뒤풀이 장소는 미리 정해져 있었다.

중림동 약현성당 뒤 생맥주를 파는 자장면집. 자장면과 생맥주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둘은 아주 맛있게 먹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두 음식을 먹으면서 빌딩 숲과 골목이 공존하는 중림동을 생각했다. 모두 똑 같은 게 보기 좋을 수도 있지만, 각기 다른 것들이 함께 있는 것도 나름 괜찮을 수 있다. 자장면과 생맥주처럼 말이다.

80년 된 이발소 41년 된 이발사

만리동고개 만리시장에 있는 성우이용원

ⓒ 김대홍

중림동은 아니지만 만리동고개 근처엔 아주 오래된 명물이 한 곳 있다. 용산구 청파1동 만리시장에 있는 성우이용원이 그 곳이다. 1927년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80년이 됐다. 건물은 80년 전 그대로다.

슬레이트 지붕과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대문,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창틀은 세트장같은 느낌마저 든다. 설마 아직까지 이발을 할까 싶은데, 문을 열고 들어서면 걱정은 싹 사라지게 된다.

훈훈한 기운이 실내를 감싸고 있다. 머리에 물을 뿌릴 때 쓰는 물뿌리개, 물을 데우는 난로, 언제 만들어졌는지 가늠하기 힘든 선풍기, '지직'거리며 돌아갈 것 같은 레코드 턴테이블 등 실내는 살아있는 박물관이었다.

주인은 이남열씨(59). 외할아버지인 서재덕씨(작고), 아버지인 이성순씨(작고)에 이어 18세부터 가위질을 시작했다. 벌써 41년째다. 이발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섬세한 손놀림과 규칙적으로 들리는 가위질 소리가 금세 마음을 편하게 한다.

한 구석에 빈 라덴 그림이 보여 물었더니 직접 그린 그림이란다. 그림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이씨는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렸을 뿐 빈 라덴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웃었다. 손 기술이 좋으면 그림에도 재주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블루클럽'처럼 값싸고 빨리 깎아주는 체인형 이발소가 대세를 이룬 요즘, 오로지 가위로만 머리를 깎는 이발소는 점점 퇴물이 되고 있다. 장인이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남열씨는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이발사는 이미 씨가 말랐다"며 "아마 내 이후로 대가 끊길 것 같다"고 말했다. 기본 기술만 익히는데 7년 이상 걸리는데, 그 일을 누가 하겠냐면서. 요즘은 반년만 익히면 독립하려 한다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너무나 빨리 만들고 빨리 버리는 인스턴트 사회. 빠른 세상에서 한 발 물러나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다면 '성우이용원'에 가 볼 일이다. 단 월요일은 피할 것. 대청소를 하는 날이기 때문에 바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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