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감독 "속는 게 그렇게 부끄러워?"

2008. 1. 2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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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성필 기자]

▲ 가벼운 러닝

통영종합운동장에서 가벼운 러닝으로 훈련을 시작하는 대전시티즌 선수단

ⓒ 이성필

지난 22일 오후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 안정공단 내 한국가스공사 통영 생산기지 잔디구장. 새로운 전술에 익숙지 않은 몇몇 선수가 실수하자 곧바로 백발의 감독이 불호령을 내린다. 선수 대부분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조아린 뒤 신속히 제자리로 돌아간다.

몇몇 선수에게 조용히 다가가 괜찮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결같이 "지금까지 제가 축구를 잘못 배웠는가 봐요, 새로운 기분이 들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름 아닌 지난 10일부터 통영에서 시작된 프로축구 대전시티즌의 전지훈련 분위기다.

[압박] 자신있게 상대를 밀어올리는 '벌떼 축구'

▲ 불호령

조금이라도 실수가 보이면 어김없이 김호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야, 니 누구야? 누가 그리 하라 그러데?"

ⓒ 이성필

대전의 김호(64) 감독은 선수단에 4-3-3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한 공격 능력 확대를 줄기차게 주입하고 있다. 공격을 하면 뒤는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계속 나가라는 것이다.

훈련 도중 왼쪽 측면 수비수가 중앙 수비수 쪽으로 이동하자 곧바로 고함이 터져 나온다. 반대쪽에서 앞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같이 앞으로 나가 상대의 수비를 유도하면 공간이 생겨 골 찬스가 날 수 있으나 선수가 주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팀 미팅에서도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상대를 줄기차게 압박할 것을 요구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이 칼링컵 4강 2차전 '북런던더비'에서 아스날을 상대로 9년만에 승리한 것을 설명하며, 상대를 보면 절대로 물러나지 말라고 선수들에게 강조했다.

"대전은 10년 동안 피해의식에 젖어 있다. 팬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더 재미있고 과감한 축구가 이를 없애줄 것이다."

김호 감독은 이 같은 말로 공격적인 축구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이러한 공격축구에 대해 '벌떼축구'라는 명칭을 붙였다.

그는 "우리 선수들은 자기가 속는 부끄러움만 생각하고, 실수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면서 "실수 속에서 상대를 막는 방법을 배운다"고 과감한 플레이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시즌 종료 후 대전은 수많은 선수를 내보내고 받아들였다. 그중에는 부산에서 온 공격수 박성호(26)와 미드필더 이여성(26)이 있다. 이들은 김호 감독이 생각하는 공격축구의 구심점이 될 전망이다.

특히 이여성은 '천재 미드필더' 고종수(30)의 짝으로 낙점됐다. 지난해 좋은 능력을 보였던 미드필더 박도현이 군 복무 해결을 위해 내셔널리그 안산 할렐루야로 돌아가면서 이여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것이다. 2002년 수원에 입단해 김호 감독의 눈에 들었던 그는 경찰청과 부산을 거쳐 대전으로 왔다.

[과감] 프런트여 용기를 내라

대전의 훈련장에는 여러 가지 인상적인 장면들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테스트를 받으러 오는 선수들이 상당히 많다.

이 중에는 외국인 선수도 눈에 띄었다. 23일 오후 훈련에는 2005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잠시 수비수로 활약했던 브라질 국적의 파비오가 같은 국적의 안델손과 함께 테스트를 받으러 왔다.

김호 감독은 그들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대신 고등학생 연습생에 대한 관심과 아쉬움을 표현했다. 한 축구관계자가 간곡히 부탁해 지켜봤는데 너무나 재능이 뛰어나 키워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 선수는 국내 풋살 대회에서 우승한 뒤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 대회에서 4경기 동안 스무 골을 넣어 득점왕을 차지했다고 한다.

선수가 하나라도 부족한 상황에서 재능있는 선수의 발굴은 감독에게 좋은 일이지만 입단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게 김 감독에게는 아쉬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불어 훈련에는 외국인 선수가 없다. 마빡이 세리머니로 유명했던 공격수 데닐손(포항스틸러스)을 비롯해 브라질리아(울산 현대), 슈바(전남) 등이 모두 이적했기 때문이다.

이 중 두 선수는 이적료 한 푼 건지지 못하고 보냈다고 한다. 선수를 길러 한푼 두푼 모아야 하는 시민구단 입장에서는 아쉬울 노릇이다. 자연스럽게 일을 처리하는 구단으로 화살이 돌아간다. 조금만 영리했다면 비싸게 이적시킬 수 있었는데 너무 싸게 팔았다는 것이다.

대전은 새로운 사장이 임명된 뒤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사무국 직원을 12명에서 5명으로 줄였다. 구단 운영을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돈까지 아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나중을 생각해 좀 더 공격적으로 선수를 영입할 줄 알고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감독은 현재 프랑스에서 활약하는 선수를 영입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 못하는 상황을 예로 들었다. 이 선수가 영입되면 프로축구판을 뒤집을 파괴력이 있는데 잘하면 몇 배의 이익을 보며 다른 구단에 이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 "과감하게 압박해라"

김호 감독은 '벌떼축구'를 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좀 더 과감해져야 한다고 했다. 사진은 23일 오후 훈련을 나서기 전 팀 미팅 현장. 김 감독은 "자기가 속는 부끄러움만 생각해 뒷걸음질 한다"며 연습경기나 훈련에서 계속 속고 실패할 것을 주문했다.

ⓒ 이성필

[효과] 통영을 살리는 '김호'효과

다른 팀들이 속속 해외로 나가고 있지만 대전은 국내에 계속 머무른다. 재정이 빠듯한 시민구단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지만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것이 김호 감독의 판단이다. 날씨가 그다지 춥지 않은 데다가 해외에 가지 않으면 적어도 1억원을 줄일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자신을 있게 해준 통영에 대한 보답이다. 대전이 훈련을 하면 지역경제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이유다.

택시기사 유용택씨는 "김호 감독이 여기 오면 그냥 옵니까?"라며 "초, 중, 고, 대학팀들이 전부 온다 아입니까"라고 대전의 전지훈련을 반겼다.

김호 감독의 고향 사랑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시내 한 일식집으로 안내한 김 감독은 태안 유조선 기름유출 사고 이후 수산물 소비가 감소하는데 통영도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아쉬워하며 "생선 좀 먹어달라, 아무렇지 않은데 왜들 그러냐"고 호소(?)했다. 김 감독은 41명의 선수단을 이끌고 일주일에 두 번씩 횟집에 간다고 한다.

대전은 숙소로 충무관광호텔을 사용하고 있다. 바로 앞에는 최신식 리조트가 있지만 객실 요금이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호텔 내에는 사우나와 체력 단련 시설이 없어 모두 시내에서 해결한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만이 없다. 훈련에 집중하기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한 달을 장기사용하는 만큼 호텔 직원들의 표정에는 화색이 돈다. 한 관계자는 "겨울철은 비수기라 객실이 많이 비는데 선수단이 메워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호 감독의 고향 통영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대전의 겨울은 따뜻하다.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훈련하는 이들의 성과가 올가을에 어떻게 나타날지 기대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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