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토리]시향제

2007. 11. 1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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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경기 최진연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 묘지앞에서 제를 올리는 문중들. ⓒ최진연 기자

"각지에 흩어져 살던 후손들이 묘지에 도착하면 입구에서 전통 예복인 도포를 갈아입고 검은 베로 만든 유건을 써야 합니다. 그래야만 조상님이 받아들이십니다."

지난 11월10일 경북 안동시 임동면 전주 류씨 시향제 날, 문중 일을 도맡아 보는 유희걸(70)선생이 도착하는 문중들께 알린다.

묘지입구 돗자리에 일렬로 선 문중은 산 중턱에 모셔져 있는 조상들께 큰절을 올린다.

"금년에는 제관도 상을 당해 참석 못하고 문중에 이런 일 저런 일로 인해 20여명만 참석했습니다. 갈수록 인원이 줄어드니 조상님은 누가 모셔야 될지 큰일입니다."

유선생은 80여명은 참석해야 시제를 지낼 수 있다면서 몹시 안타까워했다. 이날 문중 후손들은 거의 칠순은 훌쩍 넘긴 나이다. 그분들은 홀기의 구령에 따라 능숙하게 움직인다.

한 장면도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풍경들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 도착하면서 조상께 인사를 드린다. ⓒ최진연 기자

"500년 동안 국내서 시향제를 지내는 곳은 우리 전주 류씨 수곡파 뿐입니다."

"조상을 섬기는 것은 자식의 도리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문화가 변하면서 우리의 정신도 무너지고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안동에서는 유희걸 선생을 모르는 이가 없다. 공직생활 35년, 그는 안동민속박물관을 설립해서 초대 관장까지 지냈다.

전주 류씨가 임동에 정착한지는 500년, 그동안 이조참판을 비롯해 70여명의 고관을 배출한 명문가다. 그분들의 무덤을 모신 이곳에 매년 음력 10월1일 시향제를 올린다.

산 지형이 U를 뒤집어놓은 형세로 양쪽 산등성이에는 한때 권세를 누린 조상의 무덤들이 서열에 따라 자리 잡고 있다. 중심에는 넓은 분지가 형성돼 문중 후손들은 이곳에서 차례의식을 의논한다. 우리민족의 특성 가운데 세시풍속만한 것이 없다. 그 중 조상숭배는 하늘과 같았다. 조상들은 효를 으뜸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 시도석에서 분정을 확인하는 문중들. ⓒ최진연 기자

10월은 일 년 중 가장 좋은 계절이며 절기상 소설이 들어있어 겨울이 시작되는 달이다.

햇볕이 따뜻해 조상을 섬기는 달로는 가장 적합하다.

제관은 묘소 입구에서 도포를 갈아입고 제석에 먼저 재배한 다음 접수처인 시도석에서 등록을 마치고 집안어른과 친척들에게 인사를 나눈 뒤 개좌하고 나서 분정이 있는 곳으로 간다. 이 예법은 전주 류씨뿐만 아니라 안동 지방에서는 거의가 따르고 있다. 제관은 분정이 붙어있는 곳으로 모여 자기의 위치를 확인한 다음 각자 선조 묘지로 간다.

◇ 홀기를 읽고 있는 후손. ⓒ최진연 기자

이들 문중은 7대의 묘소에 동시에 제를 올리기 때문에 제관의 정족수는 83명이 있어야 하며 묘제로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많은 인원이 동원된다. 시향제가 있기 전 음력8월에는 묘역을 살피며 벌초를 하는 풍속이 있다. 예전에는 산지기가 벌초를 해주는 것이 상례였다. 산지기가 없어진 요즘 자손들이 직접 묘소를 찾아 벌초를 한다.

한국 사람들은 죽어서도 제사를 통해 조상과 후손이 만난다. 조상을 숭배하고 효를 으뜸으로 삼았던 유교정신은 우리의 미풍양속으로 아직까지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인간답게 살고자 할 때 가장 근본은 '효'이다. 전주 류씨 수곡파 시향제는 곧 한국인의 정신이며 뿌리이다.

글·사진 최진연 기자(cnnphoto@naver.com)/ 데일리안 경기 최진연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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