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손때 묻은 연장에 35년 달인 자부심

2007. 10. 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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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김은진]패스트푸드, 패스트패션 등 뭐든 '빨리빨리'가 미덕이 돼버린 세상. 옷이나 가구, 고가의 가전제품도 싫증나면 거리낌 없이 버려버린다. 그래서 손때 묻은 물건을 아끼고 고쳐 쓰는 일이 더욱 귀하다. 고쳐 쓰기의 달인인 김영기(54)씨는 그래서 더 빛이 난다. 때문에 35년 동안 구두수선에 바친 평범하지만 값진 그의 삶이 인정돼 지난 10일 경기 으뜸이로 선정되기도 했다. 경기도 안성시에서 구두정비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 씨를 만나봤다.<편집자주>

◇ 어둡고 비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몸을 구부리고 일해도 김영기(54)씨의 얼굴에선 환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 끼뉴스 민원기

경기도 안성시 서인동 시내 한 복판,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들어서 있는 구두정비센터. 이른 아침부터 김 씨의 손놀림이 바쁘다.

김 씨의 가게에는 바느질용 송곳, 나일론실, 구두굽, 열쇠 복사기 세트, 도장 등 지금껏 그가 일구어 온 삶의 흔적을 대변하듯 손때 묻은 살림살이가 가득하다.

오전 10시경 한 손님이 슬리퍼를 들고 찾아왔다. 인근의 'ㅅ'회사에서 근무하는 그녀는 하루 종일 서 있는 직업이라 다리가 피곤하다며 김 씨에게 슬리퍼를 푹신푹신하게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김 씨는 손님이 건넨 슬리퍼를 꼼꼼히 살펴보고 이리저리 구부려보더니 "바닥창은 푹신하고 중창은 너무 딱딱해. 그러니 균형이 안 맞지. 발 모양대로 휘어져야 정상인데 이렇게 구부러지지 않으니 피곤할 수밖에" 하고 혀를 찬다.

김 씨는 필요 이상으로 두꺼운 밑창의 절반을 잘라내고 바닥 무늬를 칼로 긁어낸 뒤 제화용 본드를 입히고 슬리퍼 모양을 본 뜬 푹신한 고무창을 덧대줬다.

잠시 후 한 아주머니가 손잡이가 뚝 떨어져버린 신발주머니를 내밀며 좀 꿰매 달라고 말했다. 그는 대꾸도 없이 나일론실이 꿰진 송곳으로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바느질했다. 수리가 다 되자 값을 묻는 손님에게 "요딴건 아무것도 아녜요" 하며 삯도 받지 않고 보낸다.

밑창 떨어진 신발의 바닥창과 갑피(구두의 겉가죽)를 꿰매는 일, 구멍 난 뒤축에 가죽을 덧대는 일, 작은 신발주머니를 수선하는 일은 김씨에겐 숨쉬기 보다 더 쉬운 일이다.

친절한 영기씨, 그는 누구?

김 씨의 미소는 '살인미소'로 통한다. 경상도 사나이라 무뚝뚝한데다 목소리도 본래 굵지만 손님들만큼은 밝고 경쾌하게 맞이하기 때문.

그는 구두의 브랜드, 가격에 상관없이 손님들이 맡긴 신발들을 명품처럼 소중하게 다룬다. 100원 내는 사람이나 만원 내는 사람이나 다 같은 손님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 너무 간단한 작업이라 삯도 받지 않고 손님을 보내는 경우에도 그는 친절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구둣방을 찾는 손님들은 10대에서 8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게다가 못 고치는 게 없어 동네 사람들에게 그는 '구두박사'로 소문이 자자하다.

어렸을 때 다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한 김 씨는 어머니의 권유로 양화점을 하던 동네 형에게 열아홉 살 때 맞춤구두 제작기술을 배웠다.

◇ 김 씨의 손은 구두망치, 구두칼, 송곳을 쓰느라 거칠고 힘줄이 튀어나와 보기엔 투박하지만 구두 밑창을 깁고 가방을 한땀 한땀 꿰매는 손놀림은 섬세하기 그지없다. ⓒ 끼뉴스 민원기

그 당시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 평소엔 인정 많은 형이었지만 일을 배우는 데 있어서는 호랑이, 짠돌이도 도망갈 지경이었다고 김 씨는 회상했다.

"그 형님이 대구에 물건을 떼러 가면 하루 종일 양화점을 지켜야 하는데 달랑 자장면 한 그릇만 사주고는 가버리죠. 그래도 그땐 자장면이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지금도 그 맛이 떠오르면 군침이 절로 넘어간다니까요."

견습공 시절에 주로 했던 일은 찹쌀풀 끓이기, 실뽑기, 못 펴기 등이었다. 못이 귀할 때라 구부러진 못을 일일이 펴는 작업은 그의 손가락을 단단하게 단련시켜줬다.

좀 늑장을 부리거나 요령을 피우는 모습이 눈에 띄면 김씨의 머리에는 구두망치가 '작렬'했다고.

그때 하도 맞아서 지금 기억력이 떨어진다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 하는 그의 얼굴에 살짝 웃음기가 어렸다.

김 씨는 1년 동안 월급도 받지 못하고 구두 만드는 기술을 배우며 견습생 딱지를 떼기 위해 노력했고 이윽고 1968년 그는 역사적인(?) 첫 월급을 받았다고 한다.

"봉투를 열어 보니까 2천원이 들어 있더라고요. 첫 월급이자 내 손으로 번 돈이었죠. 지금 으로 따지면 20만원 정도니까 사실 박봉이지만 당시엔 공무원 월급이 만원이었으니까 아주 적은 액수는 아니었죠."

그렇게 구박(?)받으며 익혔던 기술은 지금 그에게 있어 인생의 주춧돌이 됐다.

구두 수선기술로 그는 94년에 에스콰이어에 입사했지만 이후 찾아온 IMF로 일자리를 잃게 됐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살아낼 수 있었던 건 바로 구두수선 때문이었다.

"이 일이 있어서 더 빨리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이 최소한 먹고 살 수 있도록 구두수선 기술을 가르쳐주려고 '구두정비센터'라는 이름을 내걸었죠."

몸에 밴 부지런함과 성실함 덕에 그는 1.5평 남짓한 자투리 공간에서도 아내를 돌보고 두 아이들은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다.

별 생각 없이 신고 벗으며, 구석에 밀어뒀다가 해어지면 버리는 구두. 하지만 김씨에게 구두는 친구처럼 35년 동안 좋은 동반자가 돼 줬다.

나의 소가죽 앞치마

◇ 유행 지난 부츠의 디자인을 바꾸기 위해 한 여자 손님은 김씨에게 굽을 통째로 갈아달라고 했다. 까다로운 작업이지만 그에겐 손쉬운 일이다. ⓒ 끼뉴스 민원기

구두를 수선할 때 김 씨의 무릎에는 언제나 소가죽 앞치마가 자리하고 있다. 구두 일을 처음 배웠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좋은 방패막이였다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외모(?)다. 여기저기 구멍이 난데다 밖은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하지만 안은 덧대고 기운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이 소가죽 앞치마는 고급 소파에서 떼 온 것. 고무가루, 본드 등 일하는 중에 생기는 각종 이물질이 바지에 들어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송곳이나 못에 찔리고 구두칼을 갈다가 녹물이 튀고 이런 것들을 막으려고 이런 가죽 앞치마를 덮지요. 지금처럼 쌀쌀할 땐 더 없이 좋지만 여름에는 가죽을 둘러쓰고 있는 것 자체가 고역입니다"

하지만 이 앞치마는 10년 이상 김 씨와 고락을 같이한 동지로 너무 자연스러워져서 이젠 몸의 일부분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구둣솔 역시 소중한 물건이다. 구두에 광을 잘 내는 특별한 비결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대뜸 작업 선반에 놓인 같은 모양의 구둣솔 2개를 보여준다.

하나는 먼지떨이용이고 하나는 구두약을 바르는 데 쓰인다.

"아무래도 시골사람들이 많아서 구두에서 먼지나 진흙 등을 다 털어내고 해야 광도 제대로 나고 염색도 잘 나옵니다."

허름하고 비좁은 공간이지만 이곳에 오는 구두들은 까만 구두약 묻은 김씨의 손길 아래서 다시 태어난다.

김 씨가 만나는 구두들은 새 것처럼 말끔한 멋은 없지만 구두 주인의 추억이 가득 담겨있다.

열아홉에 맞춤구두 제작 기술을 배운 뒤 35년 동안 한번도 손에서 구두를 놓아본 일이 없는 김영기씨. 앞으로 힘닿는 데까지 이 가게를 지키며 살 계획이라고.

오늘도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커다란 손을 부지런히 놀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김 씨에게서 삶의 소소한 즐거움과 여유를 한 움큼 얻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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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일리안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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