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팔' 이오수 "난 끝까지 두산 사나이"

2007. 8. 4.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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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호영 기자] "저는 KIA팬입니다."

"아! 미안합니다."

2007년 최고의 투수 다니엘 리오스(35·두산 베어스)가 KIA 타이거즈 팬인 필자에게 던진 첫 마디다. 사실 리오스가 미안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단지 KIA 구단의 방침에 따랐을 뿐이다. 그럼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는 리오스. 특유의 노련미는 경기장 밖에서도 여전했다.

"흙 덮인 내야의 광주구장, 놀랐다"

▲ '전라도 용병'에서 이젠 '두산 가이'가 된 리오스.
ⓒ2007 오마이뉴스 김귀현

지금은 두산 베어스의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지만 그가 한국 프로야구를 처음 만난 것은 KIA에서였다. 2002년 당시 KIA는 마무리 투수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리오스를 영입했다. 하지만 리오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나는 거짓말에 속았다(웃음). KIA에 입단할 당시 마무리를 그만둔 지 4~5년이나 됐는데 입단한 다음에야 마무리로 뛸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는 마무리로 뛴다면 1이닝만 던지겠다고 가장 먼저 얘기했다. 만일 내가 2~3이닝씩 매일 던진다면 팔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단 첫날부터 2이닝 마무리를 시켰다. 어떤 경우는 3이닝 동안 몸 풀기를 시킨 적도 있었다. 내가 22살도 아니고 이렇게 계속 던지다간 팔이 남아날 수 있을지 걱정됐다. 팀 관계자에게 나는 선발이 더 잘 맞고 그것이 팀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꾸준히 설득했다."

리오스의 말에 의하면 자칫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선발투수가 마무리 투수로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할 수도 있던 아찔한 대목이었다. 이어 리오스는 프로야구에 만연한, 원칙 없는 마무리 투수 기용에 대한 따끔한 말도 잊지 않았다.

"마무리는 한 이닝만 던지게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마무리의 특성상 스트레스가 매우 심한 편인데 하루에 2~3이닝 정도를 던진다는 것은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나는 15개 정도만 던지고도 경기에 투입될 수 있는데 불펜에선 너무 오랫동안 몸 풀기를 시킨 것도 문제였다. 미국에선 3번 정도 불펜에서 몸을 풀었으면 그날은 쉬게 해주는 편인데 한국은 그렇지 못해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한국에 오기 전, 미국과 멕시코에서 뛰어온 리오스는 마무리 투수의 많은 이닝 소화를 비롯한 한국 야구 시스템을 일종의 문화 충격으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선수들의 부상이 비일비재한 현실에서 야구계의 지도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매서운 충고이기도 하다.

마침 그에게 충분히 충격으로 다가왔을 만한 KIA 구장의 열악한 환경이 떠올랐다. KIA는 40년이 넘은 광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다행히 리오스는 광주구장과의 첫 만남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직도 나는 첫 경기를 기억한다. 토요일에 두산과 경기였고 2이닝 던지고 세이브에 성공했다. 광주구장은 무엇보다 내야가 흙으로 덮인 것이 신기했다. 미국은 그렇지 않아 이상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적응한 상태다."

광주구장은 2004년 3월 인조잔디를 포설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 전에 내야는 흙으로 덮여 있었다. KIA팬도 기억을 떠올려야 생각나는 부분인데, 리오스는 아직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전라도 떠난 '이오수', 두산서 대활약

▲ 리오스는 KIA 시절 부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2007 오마이뉴스 김귀현

'전라도 용병'으로 불리며 KIA에서 은퇴할 것만 같았던 리오스. 팬들은 그에게 '이오수'란 애칭을 지어주고 그와 영원히 함께하길 원했다. 그러나 이오수와 KIA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았다.

2005년 KIA는 사상 최초로 최하위를 달렸다. 이에 분위기 쇄신을 위해 부진하던 리오스를 이적 시장에 내놨다. 결국 7월 10일 리오스는 내야수 김주호(22)와 함께 두산으로 전격 이적했다. KIA는 리오스를 보내며 좌완투수 전병두(22)를 받아왔다.

이적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해 리오스의 부진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이적 전인 3년 동안 두 자리 승수(14-10-17)를 기록했을뿐 아니라, 3점대의 평균자책점(3.14-3.82-2.87)을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냈지만 2005년은 달랐다. 전반기가 지난 시점 6승 10패, 5.23의 평균자책점으로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리오스도 여기까지인가'하는 우려를 떨치기 어려웠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리오스는 두산으로 이적 후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후반기에만 9승 2패를 거두며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일등공신으로 자리매김한 것. KIA 시절 성적 부진에 대해서 오랫동안 말을 아끼던 리오스는 자신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말할 수는 없다. 두산으로 트레이드된 후에 더 세게 던진 것도 아니고 다르게 던진 것도 아니다. 윤석환 코치가 몇 가지 점을 바로잡아 준 것이 전부였다.트레이드 됐을 때, 당시 1위였던 두산이 나를 반겨줘서 기뻤다. 내가 없어도 잘할 수 있는 팀에서 나를 좋아해준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두산에서 성적이 좋았던 건 나도 열심히 했지만 팀원들도 열심히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삼진만 잡아내는 투수가 아니다. 팀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당시 KIA팬이라면 리오스 부진의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좁은 광주구장과 붕괴된 내야진, 가라앉은 팀 분위기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리오스는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다"며 철저히 자신의 생각을 감췄다. 그러면서 두산의 의욕적인 팀 분위기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개인보다 팀과 동료를 우선시하는 리오스의 야구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리오스는 6년째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선수다. 특히 근래에 보기 드문 완투형 투수라는 점이 리오스의 가치를 더욱 빛낸다. 지난해까지 3년 연속 200이닝 이상(222.2-205.1-233)을 던져 '고무팔', '철완'이란 별명을 얻었다.

올해도 벌써 164.2이닝을 던져 4년 연속 200이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통산 15번 완투했음에도 여전히 꾸준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리오스의 비결은 단연 간결한 투구 폼이다. 물론 원래부터 투구 폼이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 후 간결하게 던지는 폼으로 바꾸었고 고교시절과 대학교 때는 지금과는 다른 거친 폼이었다. 2004년 와인드업 동작에 변화를 시도했지만 다시 원래대로 복귀했다. 평소 효과적인 투구를 위해 오버핸드와 스리쿼터를 혼용하는 편이다."

현재 그의 간결한 투구 폼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산물이었다. 또한 리오스는 간결한 투구 폼에서 나오는 자신의 포심 패스트볼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9회까지 시속 145㎞가 훌쩍 넘는 강속구가 구사되니 자신감을 가질 만도 하다.

하지만 강속구의 힘은 때가 되면 떨어지는 법. 현재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앞으로 한계에 부딪힐 경우 종으로 변화를 주는 커브와 스프리터, 포크볼과 같은 구종을 연마할 생각은 없는지 궁금했다. 투구 폼이 간결해 오래 뛸 수 있을 것 같다는 질문에도 리오스는 거침없는 답변을 쏟아냈다.

"내가 정말 45세까지 던질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웃음). 투수는 30대 중반만 되면 하루하루가 다르기 때문에 그때 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내 나이 정도가 되면 확실하게 미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투수가 나이가 들고 구속이 떨어지면 다른 구종을 익혀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타자를 상대하는 다른 방법도 자연히 터득하게 된다."

그간 그래왔듯 언제든지 한계에 부딪히면 변화를 추구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전라도 용병 리오스, 이제 서울 사람 다 됐네

▲ 활짝 웃고 있는 리오스.
ⓒ2007 오마이뉴스 김귀현

인터뷰 내내 리오스는 두산 선수임을 거듭 강조했다.

"두산은 한국에서 가장 좋은 구단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끝까지 내가 두산 사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KIA가 나를 원하지 않았을 때도 두산은 나를 매우 반겨줬다. 사실 두산이 KIA보다 좋은 진짜 이유를 말해줄 수 있는데 녹음 중이라 말할 수는 없다(웃음).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다른 구단에 대해 나쁜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른 선수와 마찬가지로 리오스에게도 이적을 경험한 선수들이 전 소속구단에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 남아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KIA 구단을 고려해 그에 대해 밝히지 않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KIA팬인 필자에게는 인터뷰 내내 두산을 외치는 리오스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습이 절대 밉지 않은 것은 현실에 충실한 진정한 프로야구 선수가 바로 리오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한국 사람이 다 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리오스. 지금은 비록 KIA가 아닌 두산 소속 선수지만 그의 바람대로 45세까지 한결같은 모습을 과시하며 한국 프로야구에서 계속 좋은 활약을 펼치길 기대해본다.

[통역 김상엽]

/이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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