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원용재 (1) 등산갔던 아내 뇌출혈로 쓰러져

2007. 7. 15. 17:3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는 올해 일흔 둘인 고등학교 퇴직 교감이다. 서울 출신이지만 직장 때문에 수원으로 이사와 이제는 수원 사람이 다 됐고, 기독교한국침례회 늘푸른교회에서 안수집사로 주님을 섬기고 있다. 은퇴 심방전도사인 내 아내 금아(金兒:'금쪽같은 아기'라는 뜻으로 신혼 때부터 내가 아내를 부를 때 쓰는 별명) 김명숙의 얘기부터 시작한다.

4년전인 2003년 6월16일 월요일 오후. 광교산으로 등산을 갔던 금아로부터 '머리가 아프니 데리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막내딸 나경이가 차를 몰고 광교산 버스 종점까지 가서 엄마를 차에 싣고 내과의원으로 직행했다.

금아는 치료가 끝났는데도 어지러워 일어날 수가 없다며 병원 침대에서 한 시간을 누워있었다. 가끔 혈압이 오르긴 했지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심했던 적이 없어 덜컥 겁이 났다.

새벽에 갑자기 금아가 "아, 아"하고 비명을 질렀다. 방으로 뛰어가 보니 눈의 초점이 흐려졌고 입가에 침이 흘렀다. 오전 7시30분쯤 119 구급차에 실려 동수원병원으로 갔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컴퓨터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했다. 뇌출혈로 판정났다. 곧바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목요일이다. 820호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2인실이지만 다른 환자가 없다. 나경이가 먹고 자면서 간병을 시작했다. 수술은 1주일쯤 뒤에 하기로 했다.

엿새가 흘렀다. 금아는 부축을 받아 화장실에 갔다가 넘어져 팔뚝이 까졌다. 문병인이 다녀가면 지쳐버린다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문병을 가서 가짜 기도를 했어요. 이렇게 힘든 게 병원생활인데 이 고통을 나는 잘 몰랐어. 내가 퇴원하면 환자들에게 진짜 기도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로부터 사흘 뒤 오전 10시부터 8시간30분 동안 금아는 수술을 받았다. 온 가족이 수술실 복도에서 불안 속에 대기했다. 큰딸 나영이는 수시로 기도했다. 해외여행중인 목사님을 대신해 백창주 전도사가 문병을 왔다. 수술 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수술 부위를 찾아내기까지 6시간이 걸렸고, 실제 수술은 2시간, 뒷정리에만 30분이 걸린 대수술이었다고 담당의는 설명했다.

하루가 지나도록 금아는 의식불명이다. 입에는 호흡을 보조하는 재갈 같은 것이 물려 있다. 몸에는 7개의 링거 줄이 주렁 주렁 달려있다. 뇌압이 강하다며 이번엔 오른쪽 두개골의 앞쪽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 오후 9시부터 12시20분까지 수술은 진행됐다. 백전도사와 이재헌 전도사 부부가 다시 달려와 수술이 끝날 때까지 기도해줬다.

7월4일 금요일. 입에는 여전히 호흡보조기가 달려 있고 콧구멍에는 'L 튜브'라는 미음을 흘려넣는 줄이 박혀 있다. 몸에는 7개의 링거 줄이 매달려 있다. 처참하고 흉칙한 몰골이 말로 형용할 수 없다.

다 내 잘못이다. 내 기도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왜 나는 노년에 품위있게 늙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나'라고만 했을까. '흉한 모습 험한 꼴 보이지 말고 곱게 늙게 해달라고, 그래서 믿음 잘 지킨 나를 보라. 그렇게 본을 보이며 늙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도 왜 '우리 부부'라고는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우리'라고 했으면 기도에 응답하시는 주께서 금아를 저런 몰골로 만드시진 않으셨을 텐데…. 자기 기도의 분량이 있으니 자기도 이런 기도를 하고 있겠거니 했던 내 불찰이 크구나….

정리=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원용재 집사 약력

△1936년 서울 출생 △경기고 졸업△고려대 졸업△동아출판사 근무△한국은행 임시행원△이천양정고등학교 교사△유신고등학교 교사△동우여자고등학교 교감△수원 기독교한국침례회 늘푸른교회 안수집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