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는 안 된다? 축구는 그 자체로 즐겨야

2007. 7. 1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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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성필 기자]

▲ 4만 8천의 관중은 개회사보다 선수들의 득점에 더 크게 환호했다. 축구가 주는 즐거움을 제대로 체험한 것이다.
ⓒ2007 강창우

지난달 19~21일 사흘간 경기도 성남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한국학의 세계화를 위해 만든 <문명과 평화 국제포럼>이 올해로 3회째를 맞은 것이다. 이번 포럼은 다른 해와 달리 체육 부문을 성찰하는 시간이 추가되어 시선을 끌었다.

특히 마지막 날 대구 계명대 송형석 교수는 '축구와 평화'라는 주제 발표에서 "축구는 세계 제일의 스포츠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인종, 이념, 종교의 차이를 뛰어넘는 사람 간의 소통과 이해를 돕는 보편 언어로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축구가 평화에 기여한 예로 199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를 예로 들었다. 식민지 국가 출신의 선수를 포함해 다인종, 다국적 선수들이 뛰었지만 우승으로 '통합'의 효과를 내 프랑스를 단결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중에 '성탄절'이 되자 전쟁을 멈추고 축구경기를 한 영국군- 독일군의 사례와 2006 독일월드컵 본선 진출로 휴전에 합의한 아이보리코스트(코트디부아르)의 정부군과 반군의 사례를 들어 축구가 갈등을 멈추고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축구가 항상 평화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는 "역사를 되돌아보면 축구는 개인이나 사회를 넘어 국제적으로 평화에 기여할 능력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발제 후 축구의 평화 기여도를 놓고 토론이 있었다. 참석자들은 축구를 포함한 스포츠가 종교 간의 갈등을 녹이는 것을 비롯해 인류가 평화 공존하는데 기여한다고 일치된 의견을 보였다.

피스컵이 특정 종교 포교?

▲ 축구에만 집중한 선수들은 주심의 판정 하나에 웃고 울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다른 요인이 개입될 수 있었을까?
ⓒ2007 강창우

12일 선문평화축구재단 주최로 '2007 피스컵 코리아'가 개막했다.

이날 4만 8천여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공식 개막전에서 성남 일화와 볼튼 원더러스는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광양전용구장에서는 멕시코 클럽팀 치바스 과달라하라가 스페인의 라싱 산탄데르에 5-0 대승을 거두었다.

대회 시작 직전 피스컵에는 여러 호재가 있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공식 국제대회로 승인받은 데다가 곽정환 한국프로축구연맹 회장 겸 피스컵조직위원장이 FIFA 전략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됐다.

개막식에서는 'peace'라는 상징적인 단어를 걸고 치르는 대회에 걸맞게 이라크 난민 유소년 축구팀이 평화의 희망을 담은 꽃씨를 풍선에 날려 보냈다. 피스컵조직위원회에는 대회 수익금으로 매년 100만 달러를 제3세계 유소년 축구지원 사업에 쓴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스컵의 진정성에 대한 의혹도 있다. 기독교 관련단체를 중심으로 2003년 1회 대회부터 피스컵에 대한 반대는 쉼없이 이어졌다. 기독교 단체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통일교)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고, 이들은 피스컵이 통일교의 포교를 목적으로 하는 대회라고 보고 있다. 피스컵을 주최하는 선문평화축구재단의 총재와 통일교의 총재가 문선명, 동일인물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지난 11일 한국기독교통일교대책협의회(대표회장 최재우 목사, 이하 통대협)는 피스컵이 '사이비 종교'인 통일교 측 주최 행사라며 기독교인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이어 개막전이 벌어지기 몇 시간 전 '문선명 집단대책위원회'와 더불어 서울월드컵경기장 앞에서 축구를 통해 통일교를 '포교'하는 행위를 규탄하는 기도회를 연다고 발표했다.

이런 발표와 달리 개막전을 앞두고 경기장에서 이들 단체의 집회 현장을 찾기는 힘들었다. 경기장을 몇 바퀴 돌았지만 구호를 외치거나 기도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단지 경기장 내 입점한 이랜드 계열사 '홈에버' 노조의 투쟁으로 전경이 배치되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경기장 남쪽 밖에 위치한 마포 농수산물센터 네거리에서 마포구청으로 가는 방향 길가에 자리 잡고 집회를 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장을 찾은 여러 관중의 목격담을 정리하면 '기독교인도 축구를 사랑합니다', '통일교의 축구를 통한 포교활동을 반대한다'는 등의 문구를 새긴 현수막을 세우고 약 2백 여명이 뜨거운 햇볕 아래 집회를 열었다고 한다.

통대협의 한 관계자는 13일 전화통화에서 "12일 규탄기도회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앞으로는 대회가 열리는 각 지역에서 이 대회(피스컵)를 관람하지 않도록 독려 할 것이다"고 말했다.

집회를 목격했다는 송 아무개(35)씨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 프로축구를 자주 보러 오는 편인데 집회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불교 신자인 나도 피스컵을 보러 오면 안되는 것이냐"며 의문을 표시했다.

한국에 온 유학생으로 볼튼 팬인 라이언 하퍼(31)씨는 "피스컵은 말 그대로 피스(peace)한 대회 아니냐"며 특정 집단의 어떤 의도와 무관하게 경기를 즐기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축구를 축구로 봐야지 그 이상으로 해석하면 순수성이 훼손된다"고 주장했다.

통대협의 한 관계자는 "통일교는 축구를 통해서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2003년 1회 대회 당시 '월드피스킹컵'으로 시작했다. 문선명 총재를 '세계 평화의 왕'으로 삼자는 축구대회란 것이다"라며 "기독교인들도 축구는 사랑하지만 피스컵은 하나의 왕을 상징하기 대회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피스컵조직위원회 김좌우태 부사무총장은 "피스컵은 국제축구협회(FIFA)공인 대회다"라며, "피파에서 축구는 종교·정치·인종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우리는 축구를 통한 화합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 하고 있는데 왜 반대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축구와 관련한 기독교의 문제 제기는 비단 피스컵만이 아니었다. 일부 기독교 단체는 지난 두 차례 월드컵에서 국가대표 공식 응원단인 '붉은악마'의 명칭이 '사탄', '마귀' 등이 연상된다며 '붉은 호랑이'로 개명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자 붉은악마 측에서는 "스포츠와 종교는 마땅히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기독교 측에서는 붉은악마가 이름을 바꾸지 않자 '백의천사' 응원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피스컵은 축구 대회일 뿐

▲ 인천 국제공항에서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입국한 이들은 오로지 우승을 위해 왔다고 강조했다.
ⓒ2007 피스컵조직위원회

개막전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안팎에서는 대회 공식 후원 기업들이 단 한 명의 잠재고객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여기 저기 광고판을 달아놓았다. 주관 방송사인 MBC ESPN은 개막전을 중계했다. 개막전을 지켜본 4만 8천여 관중은 문선명 총재의 개막 선언보다 남기일의 극적인 동점골에 더 열광했다.

후원 기업들과 MBC ESPN, 많은 관중들. 이들이 모두 통일교에 이용당하는 걸까? 피스컵은 말 그대로 축구 대회일 뿐이다.

/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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