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임, 중도 이주민의 상처를 치유하다

2007. 6. 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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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고혁찬 기자] 공동취재: 고혁찬 김수화 김보라 박선영 기자

한적하고 너른 대지 위에 밭작물들이 정돈되어 자라고 있다. 선착장을 지나 밭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지난 27일 개막한 춘천마임축제는 '축제는 모두가 즐기며 즐거워야 한다'는 의미로 축제에 참여하지 못하는 문화 소외층 및 여러 문제 등으로 인해 축제를 즐기기 못하는 지역주민을 위해 '찾아가는 마임공연'을 계획했다. 그 '찾아가는 마임공연'이 30일 한림대 병원에 이어 5월 31일 낮 12시 춘천 중도에서 열렸다.

▲ 배 위에서 바라본 중도의 모습
ⓒ2007 고혁찬

하중도 마을은 강원도에서 계획하고 있는 G5프로젝트(중도는 G-2 World class garden 사업예정지)의 개발택지로 선정되어 오는 8월까지 모든 주민이 섬 밖으로 이주하여야 한다.

하중도 마을에서 70년 이상을 살아온 손기현(75·춘천시 중도동) 할아버지는 "나도 여기서 태어나서 여태까지 커왔고. 주소지 한번 옮기지 않았어. 아주 없어진다니까 이 자체의 정서가 없어지는 거지. 마을 자체가 완전히 딴 모습으로 변할 거 아니야. 개발이 되면…. 서로 어느 집이 누구네 인지까지 일가친척까지 거의 다 알다시피 하는데 이제 그러한 정이 끊기는 거지. 그런 게 많이 아쉬워"라며 삶의 터전이자 고향인 하중도 마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큰 아쉬움과 섭섭함을 나타냈다.

태어나 50년을 이곳에서 살아온 길성수(50·춘천시 중도동)씨는 "이 곳에서 농사지으면서 살다가 갑자기 중도에서 나가라고 하니 대책 마련하기가 영 힘에 붙인다. 도(道)는 이주를 원하지만 주어지는 보상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저 도를 위한 주민들의 희생을 원한다"라며 강원도의 행정에 불만을 토로했다.

게다가 이번 개발 사업은 관광지로의 조속한 개발을 위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문화재 발굴을 시작하여 뚜렷한 이주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주민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주민들은 임대아파트 같은 실질적인 도의 지원을 바라고 있지만 하우스 농작물 재배 시설에 대한 보상비만 조금 주어질 뿐이라고 지역주민들은 말하고 있다.

한평생을 살아온 생활의 터전을 잃게 되어 마음의 골이 깊어진 주민들을 위한 마지막 마을잔치가 흥겨운 사물놀이와 함께 시작되었다.

"춘천이 갖고 있는 문제를 축제를 통해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상생의 길을 찾고 싶다"는 유진규 예술감독의 말처럼 마임축제가 그동안 웃음을 잃은 이주민들의 아픔을 달래고 밖으로는 중도 이주민에 대해 춘천이 관심을 가져주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 마르코 카롤레이의 '카포코미코'
ⓒ2007 고혁찬
▲ 파이어밴딧의 '파이어 댄스 쇼'
ⓒ2007 고혁찬

사물놀이에 이은 본격적인 마임 공연은 이탈리아에서 온 마르코 카롤레이의 종소리로 시작됐다. 다양한 소품을 이용한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웃음을 주는 마르코의 공연은 기획 당시만 해도 연령이 높은 마을주민들이 즐기지 못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한 걱정은 공연 시작과 함께 마르코의 익살스러운 표정 하나로 사라졌다. 이날 공연 취지를 알고 평소 공연보다도 더 열심히 공연하는 마르코 카를레이의 노력을 아는지, 주민들도 이 공연시간만큼은 걱정들로부터 벗어나 마음껏 웃고 손뼉치며 마지막 마을잔치를 즐겼다.

▲ 마임공연을 보며 한바탕 웃고 있는 마을 주민들
ⓒ2007 고혁찬

공연이 끝난 소감으로 마르코씨는 "비록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 해도 무엇이 무대인지 무엇이 재미있는지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라며 "농촌 같은 문화 소외지역 사람들과 함께 해서 좋았고 중요한 경험이었다"라고 말했다.

마르코의 "Thank you very much"라는 낭랑한 목소리로 공연의 끝을 알리자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진 깨비 쇼단의 흥겨운 율동이 이어졌다. 모인 주민들은 음악에 맞춰 손뼉을 치며 축제는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압도적인 힘과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불을 소재로 공연을 한다는 파이어밴딧의 '파이어댄스 쇼'가 이어졌다. 활활 타오르는 불은 이주민의 아쉬움을 달래기라도 하듯 여느 때 보다 더 강렬하게 타올랐다. 파이어밴딧은 불의 발견과 일본의 사무라이의 대결 등, 불의 특성과 일본적 이미지를 적절히 조화시켜 인상 깊은 공연을 선보였다. 주민들 역시 공연 내내 흐르는 음악의 박자를 맞춰 박수를 보내며 더운 날씨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 공연 후에 친절히 인터뷰에 응해준 파이어 밴딧의 요시하라 아유미씨
ⓒ2007 고혁찬

파이어밴딧팀의 요시하라 아유미씨는 "귀중한 자리에 초청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마임 축제 팀에 인사를 전했다. 또한 "일본에도 이와 같은 문제(개발을 위한 이주문제)가 많이 있다. 마을에 계속 사셨던 분들의 마음이 걱정된다. 여기서 태어나서 자라셨던 분들이 될 수 있으면 잘 됐으면 좋겠다. 마음으로부터…"라며 진심 어린 위로와 격려를 보냈다.

중도에서 펼쳐진 이번 '찾아가는 마임'을 기획한 춘천마임축제 유진규 예술감독은 "마을 주민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공연을 흥겹게 즐겨줘서 고맙다"라며 마지막 인사말을 띄웠다. "마임공연을 통해 주민들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그래서 어떤 갈등이 있고, 왜 마음이 아프고, 이런 상황과 감정을 공유하며 모두가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되어 감사하다"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축제에 참여한 최종남 춘천환경운동연합 의장은 "아직 남은 열 몇 가구의 주민들은 땅이 적거나 땅을 빌려 농작물을 짓는 사람들로 대책마련이 힘들다"며 걱정을 토로했다. 더불어 "남은 주민들은 여전히 힘들어하며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유진규씨와 더불어 춘천의 마임과 문화, 예술이 중도 시민과 함께하고 있고 춘천시민은 하나다! 라는 것을 알려주게 됐다"면서 이번 공연에 대한 소감을 남겨주셨다.

▲ 마을 주민과 함께 하고 있는 파이어밴딧의 ARAM과 마르코 카롤레이
ⓒ2007 고혁찬

모든 공연이 끝난 후에도 마을 주민들이 정성스레 차려준 음식들로 잔치가 계속되었다. 공연자와 기획자, 주민과 더불어 취재하던 모든 사람들이 어울려 주민들과 한잔 술로 8월이면 사라지는 마을의 마지막 잔치에 대한 아쉬움 달랬다.

주민과 공연자가 술잔을 주고받으며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마임공연에서 관객과 공연자의 관계처럼 몸과 눈빛으로 서로 이해하는 듯 보였다. 이번 '찾아가는 마임'은 춘천시민의 진정한 화합과 축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뜻 깊은 시도였고, 축제를 통해 나이, 성별, 국적과 상관없이 모두가 서로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앞으로도 춘천마임축제가 그들만의 축제가 아닌 모두가 즐거워하는, 즐길 수 있는 축제로 계속 되길 희망한다.

/고혁찬 기자

덧붙이는 글이 기사는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인터넷신문 뉴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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