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것이 '길'이다

2007. 5. 2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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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청년에너지자전거순례팀 기자] 청년에너지자전거순례 둘째날은 구례 토지면 옛문수분교에서 시작하여 섬진강 19번 국도를 타고 도로확장으로 상처받는 지리산과 섬진강의 모습을 생각한다. 그리고 국도 2번을 이용하여 경상남도 하동과 사천시 곤명면 작팔리까지 약 70km를 이동하는 일정이다...필자 주

언제 떠나야 하는가

어떤 이는 비우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하고 다른 이는 뭔가를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채워야 비울 수 있으니 아직 배울 것이 한참 남은 사람들에게 여행은 배움의 다른 말과 같을 것이다. 배우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일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악천후에 떠나는 여행이야말로 진정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거라 스스로 답해 본다. 먹장구름과 폭우, 강풍이 거짓말처럼 그치고 순간 다시 태어나는 세상을 피부로 느끼는 감동은 그동안 내 작은 몸이 겪었던 고통을 찰나에 잊게 한다.

유월이 지척인 오월 하순에도 지리산 골짜기의 밤은 난로를 피워야 할 만큼 싸늘했다. 빗방울 듣는 소리를 잠결에 들으며 아침에는 날이 맑아야 할 텐데 문득 잠이 깰 때마다 걱정을 하며 하룻밤이 지났다. 새벽 문을 열고 나서니 짙은 구름이 골짜기를 메워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빗방울마저 여전히 떨어지고 있었다.

간밤에 비를 흠뻑 맞은 자전거들은 체인과 스프라켓에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다. 여기저기서 피곤이 덜 가신 얼굴을 한 채 순례단원들이 일어나 밥을 해 식사를 하고 점심도시락까지 준비를 했다. 다들 어제 오후 경험한 빗속의 행진이 힘들었던지 숟가락질을 하면서도 혹시나 싶은 얼굴로 자꾸 하늘을 살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구름이 걷히더니 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 한 조각 하늘이 넓어지고 밝아지더니 바쁘게 흩어지는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쳤다. 짐을 챙기고 떠날 채비를 하던 순례단원들 얼굴이 표나게 밝아졌다. 아직 젖어 있는 비탈길을 조심스레 내려와 섬진강변을 따라 난 19번 도로에 들어선 시간은 오전 9시. 아직 차들이 붐비기 전이었다.

▲ 구례 토지면의 마을 모습
ⓒ2007 촬영팀
▲ 새벽부터 길에 나선 민달팽이! 자전거보다 더욱 느림의 명상을 시작했다.
ⓒ2007 촬영팀

섬진강, 아름다운 이름

골짜기를 벗어나자 바람이 불었다. 자전거를 탄 몸이 휘청거릴 만큼 강해 순례단 중 한 명은 어?어? 하며 바람에 밀려 길 옆 논으로 빠질 뻔하기도 했다. 다행히 이 바람은 하동 쪽을 향해 부는 뒷바람. 강한 만큼 힘차게 우리를 밀어주는 아군이었다. 적어도 이 시간만은 말이다. 맞바람을 불평하고 뒷바람을 반기는 사람 얕은 속셈을 계속해봐야 마음만 피곤할 뿐이다. 이래도 저래도 그러려니 하며 달리는 것이 자전거를 타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맑은 아침 날씨처럼 기운차게 출발한 우리는 쾌속순항으로 도로를 달렸다. 뒷바람이 불어 시속 20Km가 넘는 속도였지만 바람의 저항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바람의 한가운데서 바람과 함께 달리는 기분은 참으로 상쾌했다. 더욱이 왼쪽으로는 지리산이 듬직하게 우리를 굽어보고 오른쪽으로는 섬진강이 맑은 물, 풍부한 물줄기로 우리와 함께 달리고 있지 않은가.

▲ 19번국도
ⓒ2007 촬영팀

섬진강! 시가 된 강.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강, 굽이굽이 눈 못 돌리고 백사장에 서서 기어이 눈물 얼마 강물에 더해야 걸음이 떼어지는 강, 스물아홉 과부 엄마 같은 강이다. 그런 섬진강이 몸살을 앓고 있다. 섬진강 골재채취는 인근 지자체의 합의하에 금지되었지만 수질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고 최근에는 섬진강변 19번 국도의 확장계획이 막무가내로 진행되고 있다.

사람을 위한 확장이라지만 자동차를 위한 확장, 건설 자체를 통해 유무형의 이익을 보장받는 사람을 위한 확장이다. 원 계획대로라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형태의 확장은 아닌 것이다. 길을 넓히면 속도가 빨라진다. 그만큼 소비의 속도도 빨라지겠지.

그러나 거기에는 자연과 함께 가려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적어도 지리산 아래서, 적어도 섬진강변에서 그런 형식의 개발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악양면 평사리 앞 섬진강 백사장을 바라보며 '섬진강과지리산사람들'의 사무국장 이상윤님의 섬진강 이야기를 들었다. 사랑을 말로만 표현하지 않고 살아가며 몸으로 나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소박하지만 진실하다. 자연을 사랑한다며 온갖 미사여구로 말잔치를 벌이는 것보다 500원 동전 하나라도 실질적으로 자연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백사장을 걷고 섬진강물에 몸을 적신 후 아쉬운 마음을 발자국으로 남기고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 평사리에서 '섬진강과지리산사람들' 이상윤사무국장님의 19번 국도의 확장문제와 거대개발에 대한 이야기
ⓒ2007 촬영팀

넘어야 할 고개

하동을 지나자 고갯길이 나왔다. 아침에는 쨍쨍한 해가 반가웠지만 정오가 지나면서부터 기온이 급격히 올랐다. 평지 길을 달릴 때는 그나마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갯길이 나오면서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아직 오월인데도 아스팔트의 열기가 뜨거웠고 고갯길을 오르기 위해 속도를 떨어뜨려 다들 숨을 헉헉대며 페달을 밟았다.

느릿느릿 고갯마루를 향해 올라가다가 하나 둘 낙오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제처럼 안전팀 요원들이 붙어서 밀어 올리기도 했지만 힘을 잃은 낙오자 자전거의 핸들이 흔들려 가끔 위험하다 싶은 상황이 보이기도 했다. 대열이 늘어질수록 자동차들의 추월이 자전거를 타는 우리에게는 직접적인 위협이 되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자동차의 존재 자체가 자전거를 탄 사람에게는 생명에 직결되는 위험이었다. 그러게 누가 자전거를 타고 차도로 나오래? 하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도로는 자동차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되려면 도로 건설비를 몽땅 자동차와 유류관련 세금에서 충당해야 할 것이다. 환경오염에 대한 비용까지도.

▲ 하동군 국도2번을 타고 북천면을 지나면서 만난 곰치! 달아오른 도로, 계속되는 오르막.
ⓒ2007 촬영팀
▲ 사천시 곤명면을 지나면서 만난 유채 밭도 자전거순례를 반기는 듯하다.
ⓒ2007 촬영팀
▲ 도로에 또 다른 도로! 무엇을 위한 도로인가?
ⓒ2007 촬영팀

우리는 매연을 뿜고 지나가는 자동차들 옆에서 인간 공기 정화기가 된 듯한 기분으로 끈질기게 페달을 밟았다. 다행히 고개 두 개를 넘자 신나게 달릴 수 있는 평지길이 나왔다.

고갯길에서 고생했던 한풀이라도 하듯 우리는 열심히 자전거를 달려 오늘 밤 묵을 숙소인 사천시 곤명면 작팔리(큰들문화예술 연습실)까지 왔다. 주행거리가 70여 Km밖에 되지 않아 아직 해가 쨍쨍 내리쬐는 네 시 무렵 자전거를 세울 수 있었다.

땀 흘린 사람의 즐거움은 샤워로 배고프도록 몸을 움직인 사람들의 즐거움은 먹을 것으로 우리의 즐거운 저녁을 맞았다. 숙소 밖에는 반달이 뜨고 개구리 울음소리가 요란한데 숙소 안에는 반달처럼 배가 둥근 사람들이 신음소리를 내며 간단한 요가로 몸을 풀었다. 붉게 달아오른 피부에 눈물 나게 시원 산뜻한 오이 마사지는 누구도 예측 못한 지원팀의 깜짝 선물이었다.

다들 편안한 자세로 '불편한 진실'을 시청하며 지구온난화의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무렵 문득 내일 우리에게 닥친 불편한 진실 하나가 떠올랐다. 내일은 최종 목적지인 창녕 우포늪까지 간다. 주행거리는 자그마치 113Km, 넘어야 할 고개가 일곱 개라고 한다.

그것도 오늘 넘은 고개는 웃음이 나올 만큼 험악한 고개들이라는 설명이다.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진지하게 설명하는 단장의 얼굴을 보니 그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일찍 재워 준다고 했다. 내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출발해야 할 테니. 넘어야 할 고개는 많다. 우리는 내일 진정한 한계에 도전하게 된다. 무엇이든 닥치면 하게 되니 걱정은 접어 두고 싶다. 잘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청년에너지자전거순례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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