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춥지만, 한국 사람은 따뜻해요"

2007. 3. 1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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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귀현 기자] 비까지 내리며, 날씨는 점점 추워졌다. 겨울 가뭄 중 내린 '단비'라지만, 우리에겐 '쓴비'나 다름없었다. 마나미는 계속 춥다고 몸을 오돌오돌 떨었다.

일본인이 많은 남대문 시장에서 한국인이 많은 '젊음의 거리' 신촌으로 자릴 옮겼다. 버스를 타고 가던 중 훈훈한 광경이 펼쳐져 난 잠깐 우쭐해졌다. 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이 두 번이나 보였기 때문이다. 사토미는 "한국사람들은 참 친절해요"라며 감탄했다.

"가루비 꼭 쌈 싸먹어야 하나요?"

▲ 소갈비를 먹고 있는 마나미.
ⓒ2007 김귀현

슬슬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고,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었다. 그러자 마나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가루비(갈비)!"라고 외쳤다.

난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 돼지?", 마나미는 기대를 저버리고 '소'를 택했다. 소갈비는 비싸서 나도 1년에 한 번 먹는 음식이다. 난 일본에서 온 손님을 당연히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벼운 대학생의 지갑을 원망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이후 일본 유학 경험이 있는 친구에게 물었더니, 도쿄에서 돼지갈비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예상대로 소갈비는 비쌌다. 1인분에 2만5천원. 결국 "한국의 불고기도 맛있다"는 궁여지책으로, 소갈비 2인분에 1만원짜리 불고기를 하나 시켰다. 그래도 6만원, 대출혈이다!

비싼 소갈비가 나왔고 이런저런 밑반찬이 나왔다. 사토미는 밑반찬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점으로 꼽았다. "일본에서는 반찬을 따로 시켜야 해요. 한국은 무료라서 좋아요."

나는 "한국에서는 이렇게 먹는다"며 상추 위에 깻잎을 얹고, 마늘과 파 절임, 쌈장찍은 고기를 넣어, 제대로 된 한국 스타일을 시범보였다. 그러자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그들은 멀뚱멀뚱 고기를 쳐다보기만 했다.

"왜 안 먹느냐?"라고 묻자, 사토미는 간장에 고기를 찍는 시늉을 하며 "그냥 이렇게 먹으면 안 돼요?"라고 물었다. 남을 배려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혹시 '쌈을 싸먹지 않으면 시범보인 내가 무안해하지 않을까' 생각했나 보다. 나는 "그냥 먹어도 좋다"는 허락(?)을 했고, 함께 비싼 소갈비를 맛있게 먹었다.

"한국에선 오빠가 사주는 문화야"

이 날 식사에서는 오히려 궁여지책인 불고기가 더 인기가 좋았다.

고추도 먹어볼 것을 권했다. 매운 것을 못 먹는 사토미는 냄새도 맡지 못했지만 호기심 많은 마나미는 한 입 베어 물었다. 하지만 금세 인상을 찡그리며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역시 한국 고추의 힘은 강하다.

매운 음식을 잘 먹는 한국인,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일본인. 가까운 두 나라의 아주 다른 모습이다.

드디어 계산의 시간이 왔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그러자 사토미는 깜짝 놀라며, 날 제지했다. "얼마에요?" 하며 나에게 돈을 주려 했다. 난 "한국에 온 손님에게 내가 대접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손짓 발짓으로 설명을 했다.

그래도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이른바 '쏘는 문화(한 사람이 음식값을 모두 지불)'가 거의 없다고 한다. 나이가 많건 적건 돈을 똑같이 낸다는 것이 사토미의 말이다. 결국 "내가 다음에 일본에 가면 맛있는 것 사주면 되지 않느냐"며 약간 흥분한 사토미를 진정시켰다.

그때 문득 떠오른 수능 외국어 영역에 자주 나오는 영어 속담,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가 생각났다. 이 속담을 예로 들면서, "한국에서는 오빠가 사주는 문화가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문화를 따르자"며 이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한국 옷가게, 점원들이 무관심해서 좋아요"

▲ 동대문 시장 상인들의 무관심이 오히려 좋다고 한다.
ⓒ2007 김귀현

신촌에서 홍대 앞 문화의 거리를 거쳐 동대문 의류 쇼핑상가에 갔다. 추운데 돌아다녀, 많이 피곤한 상태였다. 여독에 지쳐 피곤할 텐데, 오히려 사토미는 계속 "다이죠부?(괜찮아요?)" 하며 나를 걱정해 주었다.

동대문에서는 옷가게의 점원들이 대부분 우리가 와도 별 신경을 안 썼다. 난 이것이 불친절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지만, 사토미는 정말 좋다며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서는 점원들이 정말 귀찮게 해요.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 하면서 계속 옆에서 따라다녀요. 한국의 점원은 무관심해서 좋아요."

흔히 친절이 몸에 배어있다는 일본인. 같은 일본인은 이런 친절함이 귀찮기도 한가 보다. 약간은 불친절한 한국의 점원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신촌에서 홍대 앞, 동대문까지 서울의 주요 명소를 대부분 보며 서울에서의 짧은 만남을 마쳤다. 사토미는 일본에서 직접 만들었다며, 예쁜 쿠키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호텔까지 바래다주고, 또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계속 "고마웠다"고, "즐거웠다"고 활짝 웃으며 얘기하는 사토미와 마나미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손을 흔들며 내딛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모른다.

일본인에 비친 '따뜻한 한국사람', 과연 난 어땠을까

사토미와 나누었던 이야기 중에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국은 춥지만, 한국 사람은 따뜻해요."

추운 날씨였지만, 한국 사람들이 보여준 정감 어린 모습은 따뜻해 보였던 것이다.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 "깎아주세요"라는 말에 흔쾌히 값을 깎아주는 상점주인, 마음껏 반찬을 내어 주는 식당 아주머니까지…. 우리에겐 정말 당연한 모습일지라도 외국인의 눈에는 따뜻하게 비쳤나 보다.

그러나 나는 과연 이들에게 따뜻한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을까? 오히려 내가 이들에게 따뜻함을 마음속 깊숙이 느낀 것 같다.

쇼핑한 봉지를 몇 개 들어주었더니, "일본 남자들은 이런 거 들어주지 않아요, 고마워요" 하며 활짝 웃어보이는 모습에, 힘든 관광 일정에 계속 "힘들지 않느냐"며 오히려 날 걱정해주는 모습에 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한국 남자들은 군대에 다녀와서 멋있어요"라면서 "한국 여자는 군대이야기 싫어한다고 하지만, 제 주변에 군인이 없어서 군대 이야기 재미있어요, 군대이야기 해주세요" 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흔히 일본인들은 혼네(本音, 속마음)와 타테마에(建前, 겉으로만 드러내는 모습)이 다르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난 이들의 모습에서 타테마에의 모습은 느낄 수 없었다. 적어도 난 혼네로 대했고, 작으나마 이들에게서 혼네를 느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따뜻한 속마음으로 우린 진정한 한일 시민기자 친구가 되었다.

사토미가 선물로 준 핸드메이드 쿠키에는 아직도 따스한 혼네의 온기가 남아있다.

▲ 사토미가 선물로 준 직접 만든 쿠키.
ⓒ2007 김귀현
한일 시민기자 친구 만들기는 '현재 진행형'?

3개 국어가 오가는 e-메일 주고받기 대작전

▲지난 12월 한일 시민기자 친구만들기에 참여한 대학생들.
김귀현

e-메일이라는 통신 수단이 없었다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지난해 12월에 시민기자 친구만들기 행사는 끝났지만 우리는 계속 e-메일로 서로 안부와 생각을 주고받는다.

우리를 가로막는 장벽은 바로 언어! 결국 일어, 영어, 한국어 3개 국어를 적절히 이용하여, 그 장벽을 극복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친구들 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메일을 쓸 때마다 항상 주의를 요한다.

[영어] 니시와키 야스히로(24·시즈오카대)

야스히로는 주요 영어를 사용한다. 서로 쉬운 영어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지만, 표현에 한계가 있다는 단점이 있다. 현재 대학 졸업반이며,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어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어로 된 메일도 온다. 주로 취업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다.

[일어] 하지모토 나나미(22·게이오대)

나나미는 상당히 인터넷을 좋아한다. 메일 답장이 전광석화와 같이 빠르다. 영어를 매우 잘하지만, 높은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내가 차라리 일본어로 써 달라고 부탁했다. 동북아 국제 정세에 관심이 많아 주로 정치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얼마 전에는 한미FTA에 대한 내 생각을 물어 난감하기도 했다. 일어로 설명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다 FTA는 "나와 나나미의 일본어 실력 대결과 같다"라는 답변을 주어 "재미있는 사람"이란 소릴 들었다.

[한국어] 야마바타 사토미(23·게이오대)

꾸준히 한국어로 메일을 쓴다. 문법과 맞춤법이 많이 틀리지만, 그래도 읽기 편해서 좋다. "오빠는 신장이 높지요!"(키가 크다), "감기에는 충분히 조심해 주세요" 등의 일본어식 표현이 잔재미를 준다. 하지만 사토미의 메일을 보며 '나의 일본어도 일본인들이 보기에는 웃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3개 국어가 오가며 우리는 '소통' 하고 있다. 한일 시민기자 교류회 행사는 끝났지만, 친구 만들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 김귀현

/김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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