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이끄는 코리아 기업] (6) 삼성중공업.. "불가능은 없다".. 작업 열기 후끈

2007. 2. 25.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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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초 삼성중공업 영업팀 관계자들이 러시아 해운사인 소브콤프로트사를 찾아갔다. 이들의 손에는 낯선 선박의 설계도가 들려 있었다. 이들은 소브콤프로트사 고위 인사들을 만나 배의 성능을 소개하며 발주를 요청했다. 소브콤플로트사측은 "얼음을 깨고 항해하면서 원유를 실어 나르기는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의 기술력은 소브콤프로트사의 의구심을 말끔히 씻어내 수 있었고, 결국 그해 11월 세계 최초로 3척의 '극지운항용 쇄빙유조선'을 수주할 수 있었다.

오는 11월 소브콤프로트사에 인도될 극지운항용 쇄빙유조선은 한국 조선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배다. 이 배들은 북극해의 얼음지대를 항해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얼음을 깨는 쇄빙선이 앞장서고 그 뒤에 일반 배가 따라가는 식이었지만, 쇄빙유조선은 이 둘의 기능을 합쳐 스스로 북극해의 두꺼운 빙벽을 뚫고 나가면서 원유 등을 담아갈 수 있다. 이런 배는 이전까지는 없었다.

쇄빙유조선은 영하 45도의 극한 상황에서 두께 1.57m의 얼음을 깨며 항해할 수 있다. 기존 쇄빙선은 영하 20도 안팎까지 견뎌낼 수 있었고 깰 수 있는 얼음 두께도 1m를 넘어서진 못했다. 얼음장벽에 막혀 고립되지 않도록 추진기를 거꾸로 돌려 전후좌우, 360도 회전과 항해도 가능하다. 마모에 견디는 특수한 도장과 극저온에 견딜수 있는 50㎜의 고장력강이 배의 외형을 장식한다. 이것들도 모두 세계 초유의 기술이다.

지난 22일 한국 조선업의 총아로 떠오른 쇄빙유조선의 산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를 방문했다. 쇄빙유조선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조선소 내 높이 솟은 선박들 사이에 선미 형태만 살포시 드러낸 미완성의 배였기 때문이다. 채연택 생산1부장은 "현재는 선박용 철을 잘라 조립하는 단계이고 5월이 지나야 선박의 전체 윤곽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얼굴에 보호망을 쓴 근로자 3명이 소형 로켓모양의 받침대 100개로 지탱돼 있는 선미 부분에서 용접과 그라인딩(표면처리)에 한창이었다. 이들의 용접봉 주변에는 파란 불꽃이 끊임없이 튀기고 있었다. 초봄을 연상케 하는 포근한 날씨는 이들에게는 고역인 듯했다. 한 근로자가 용접모와 보호망을 벗어젖히고 잠시 가뿐 숨을 내쉬었다. 얼굴에 땀방울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작업장 옆에서는 용접가스 배출용 환풍기가 쉴새없이 굉음을 내고 있었다. 한국 조선의 개가를 이루려는 장인들의 모습은 무척 분주했다.

작업장 맞은편에 위치한 생산지원관 11층의 기본설계실은 쇄빙유조선의 설계와 개발을 이끈 지휘본부다. 팀원들의 책상은 쇄빙유조선의 설계도와 컴퓨터로 비좁아 보였다. 정현채 기본설계1팀 부장이 쇄빙유조선의 모형선박을 들며 이재학 과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각 컴퓨터에는 쇄빙유조선의 시뮬레이션이 끊임없이 반복작동되고 있었다. 기본설계팀을 총괄하는 김철년(53) 상무는 "모든 팀원들이 쇄빙유조선만을 생각하고 산다"며 싱긋 웃었다.

쇄빙유조선을 개발키로 한 것은 2000년이었다. 기존의 유전개발이 한계를 드러내는 상황에서 60년간 전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원유와 세계 매장량의 절반인 천연가스가 묻혀 있는 북극이 관심대상으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하지만 기존의 쇄빙선으로는 원유잠재량이 풍부한 극심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보고 삼성중공업은 자원의 보고를 선점하기 위한 차원에서 쇄빙유조선을 개발키로 한 것이다. 일반 유조선보다 부가가치가 5배 가까이 높아 삼성중공업의 미래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는 확신도 개발의욕을 부추겼다. 하지만 초기에는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김 상무는 "이 배의 개발 방침을 발표하자 '허황된 것보다 실용성 있는 배나 만들자'는 소리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각종 모형배를 만들면서 수많은 테스트를 거쳤다. 이전에는 전혀 접할 수 없는 새로운 배여서 삼성중공업이 직접 북극항해에 자주 나서는 러시아를 방문해 판매에 나섰다.

러시아 해운사들은 "그런 배가 과연 가능하겠느냐"며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삼성중공업의 기술이 빛을 보지 못하는 찰나에 원군이 등장했다. 1997∼99년 삼성중공업으로부터 드릴십(원유시추설비)을 인도받은 러시아의 코노코필립스사가 친분이 있는 소브콤프로트사측에 "삼성중공업의 기술은 믿을 만하다"고 귀띔했고 결국 소브콤프로트사가 이를 받아들였다.

일단 물꼬가 터지자 러시아와 캐나다 해운사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고, 발주를 검토하겠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김 상무는 "2012년까지 쇄빙유조선을 38척 가량 수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러시아 정부도 이 기술을 탐내 최근 러시아 국영조선소 중 한 곳과 합작회사를 설립하자고 삼성중공업에 제안하기도 했다. 쇄빙유조선은 지난해 산업자원부가 선정하는 '대한민국 10대 신기술'에 포함되기도 했다. 나라 안팎으로부터 기술을 인정받은 것이다.

김 상무는 "쇄빙유조선에 이어 더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쇄빙 LNG선 개발에 착수한 상태"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삼성중공업은 여전히 배고파하고 있다.

거제=글 고세욱·사진 이병주 기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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