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없이 하늘을 나는 사람들

2007. 2. 6.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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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국은정 기자]

▲ 연극 연습을 하기 전에 모여있는 사람들.
ⓒ2007 국은정

2월 3일 오후 4시경. 비가 올 듯 말 듯 의뭉스러운 날씨 속에서 미문 장애인 선교회 '그룹 홈' 현장을 찾았다. 들어서자마자 집안은 연극을 연습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열기로 들떠 있었다. 각자 자신의 의상을 차려 입기 위해 분주한 사람들은 저마다 생기 가득한 얼굴이다. 햇볕 좋은 봄날, 소풍을 가는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이 저와 같을까?

대전광역시 중구 산성동에 위치한 이곳에는 현재 정신지체 및 시각장애를 비롯해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7명의 장애인과 시설을 책임지고 있는 운영자 1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이렇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동으로 생활하면서 자립을 준비하는 것을 가리켜 '그룹 홈'이라고 한다.

이 장애인 선교회는 1987년 장애인들을 위한 나눔과 종교적인 의지를 갖고 설립되었으며, 지금처럼 그룹 홈의 형태를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지난 해 8월에 정부 인가와 지원을 받아 지금의 장소로 이전하여 조금 더 나은 환경 속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이란다.

▲ 손수 준비한 의상들을 입고 있다.
ⓒ2007 국은정

시각장애, 정신지체 및 정신장애, 지체장애, 그리고 시청각 중복 장애까지 앓는 등 장애의 범위와 정도가 너무 다른 이들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 의문이 얼마나 좁은 편견에서 기인한 것인지 그들이 시종일관 진지하게 이끌어가는 연극 연습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연극에 참여하는 인원은 생활자를 중심으로 재가 장애인과 일반인까지 포함해 대략 12명 정도. 그들이 이렇게 연극을 연습하고 공연하며 호흡을 맞추어 온 지도 어느덧 4년을 넘어서고 있다고 했다. 연극 내용은 성극의 일종으로 성경에 나오는 소경과 앉은뱅이에 관한 내용을 그들의 실정과 현실에 맞게 직접 각색한 것으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긴 풍자성 짙은 작품이었다.

▲ 연극 연습의 한 장면에서 소경과 앉은뱅이의 대화. 그들이 주고받는 대사를 통해 우리사회가 장애인들을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2007 국은정

의상준비를 마치고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서로를 독려하다 이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조용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4년 동안 갈고 닦았던 끼와 실력이 마음껏 발산되는 임시무대에서는 그들이 가진 장애는 그저 작품을 위해 필요한 아주 작은 도구나 장치에 불과해 보였다. 아니, 그보다 그들이 '장애인'이라는 인식을 깡그리 무너뜨렸다. 그리고 속으로 조용히 외쳤다.

'저거다! 저거! 저것이 바로 문화가 갖고 있는 엄청난 에너지와 힘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분명 우리의 의학이 발달하였다고는 하나 현실에서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는 동화나 성경 속 기적을 보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그들은 연극을 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배역에 완전하게 자신의 몸을 밀어 넣고 몰입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장애를 잊고 온전한 하나의 개체로서의 '나'를 세우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과 표정을 그토록 이글거리는 불꽃처럼 일순간에 살아 있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문화가 가진 에너지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또한 작은 기적이 아닐까?

소경의 역할을 맡고 있는 지체장애인 이원준씨(41)는 단연 모두가 인정하는 연기파 배우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그가 얼마나 대사 읽는 연습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또렷한 발음이 듣는 이의 귀를 의심케 만들었다. 감정표현에서도 노련미가 배어 나왔다. 그는 연극을 시작하던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 연극 연습의 한 장면, 외치는 자의 소리가 쩌렁쩌렁 귀를 울리고, 가슴을 울렸다.
ⓒ2007 국은정

"일반인들은 장애인들이 무조건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시하는 경향도 많구요. 하지만 저희도 일반인들 못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우리도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부분이 있는데, 한 번 두 번 계속 연습을 하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사실 전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거 엄청 떨려 했어요. 저보고 연극을 하라고 하니깐 도망가고 싶었지요. 하지만 역할이 주어지고 연습을 하는 가운데 '아, 나도 할 수 있구나!' 그런 믿음이 생겼지요."

화가 난 소경의 발길에 채여 매를 맞는 역할을 맡은 김길조씨(33)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너무나 즐거워했다. 매맞는 연기를 즐거워한다는 게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맞는 연기는 단연 최고!"라고 자부했다. 김씨는 연극보다 자전거 타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혼자서 자전거를 배우다 다쳐 멍든 무릎을 직접 보여주며 뿌듯함에 겨운 듯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웠다. 자전거와 연극 중에 어느 것이 더 즐거운지 묻자 그는 대번에 "당연히 자전거예요! 하지만 연극도 좋아요!" 하고 다시 껄껄 웃는다.

극중에서 강아지 역할을 맡은 정신지체장애인 송배근씨(50)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의 비중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그저 연극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에 너무도 감사해 하고 있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면서 "연극하면서 저 몇 번 울었어요. 너무 기뻐서, 마음이 기뻐서 울었어요!"라는 고백을 쏟아 놓았다. 그리고 연극을 위해 '자신의 담을 허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극본을 쓴 시청각장애인 조영찬씨(37)는 "사람들의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보다 못한 밑바닥 인생들을 실감나게 그려내기 위해 과도해 보이는 비속어와 거친 표현의 대사를 과감하게 선택"하고,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잘못된 시선을 냉철하게 꼬집고 고발"하기 위해 애를 썼다고 밝혔다.

▲ 연극 연습을 마친 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2007 국은정

누가 이들을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쫓겨 온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자유롭고, 이렇게 당당하고, 이렇게 즐거워하는 그들만의 세계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말이다. 보는 사람들에게 '너도 한 번 끼어보지 않을래?'하고 말을 건네는 듯한 그들의 작은 천국이 우리를 초대하는 것만 같았다.

"이곳은 일단 자유로워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으니까요. 다른 시설보다 경제적 부담도 적고요. 무엇보다 이곳은 때리지 않아요. 제가 다른 장애인 시설에 있으면서 여러 번 맞아보기도 했거든요. 제가 몇 년 전까지 서울에 있으면서 갈 곳이 없어서 헤매고 다녔거든요. 그때 옮겨 다니던 몇 군데 시설에서 폭력을 경험했어요. 지금은 이곳을 알게 된 것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기뻐요. 진짜 가족을 만난 기분이에요. 정말 가정적이고 따듯하니까요."

자신의 아픈 과거 이야기까지 꺼내 들려주던 김흥신씨(36). 그는 인가를 받기 전부터 4년여를 사례비 한 푼 받지 않고 자신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지금의 시설운영자인 김연호씨(40) 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고마움을 표현했다.

생활고 때문에 여러 번 다른 일터를 찾아보려고 시도했다는 김연호씨는 이 길이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곳에 있으면서 다른 마음을 품으면 그건 자격이 안 되는 것"이라며 몇 번이고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았고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곳 생활자들에게 주어지는 정부보조금의 일정 금액은 각자의 명의로 개설된 적금통장에 입금되어 미래를 설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보험회사들조차 꺼려하는 장애인 보험 상품을 찾아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도록 각자 보험을 들어주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생활자 개인이 부담하는 시설운영비용은 적금과 보험금을 제외한 나머지로 충당하고 있다. 굳이 금액을 부담하게 하는 것은 작은 금액이라도 책임과 주인의식, 긍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분들이 내시는 비용으로야 살림은 할 수가 없죠. 하지만 주변에서 고마운 손길들이 있고, 제가 조금 덜 먹고 덜 입으면 얼마든지 살림은 가능합니다. 아직까지 적자라고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첫째는 생활자들, 둘째는 시설관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원칙은 깨고 싶지 않아요."

▲ 다 같이 둘러앉아 저녁식사하는 모습. 풍족하지 않은 그들의 밥상이 따뜻해 보였다.
ⓒ2007 국은정

수더분한 말투와 하회탈 같은 웃음을 가진 김연호씨의 개인적인 바람은 지금 하고 있는 서예, 컴퓨터, 학습지, 연극교육 밖에도 더 많은 자체 프로그램을 발굴하여 지금보다 더 많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은 것! 그의 바람 역시 생활자들의 재활과 문화생활 향상에 있었다.

더불어 사는 이곳은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천국의 모습을 닮았다. 언제 다시 무대에 선 그들의 반짝이는 하늘색 꿈들과 마주할 수 있을까? 날개가 없어도 하늘을 날 수 있는 방법을 그들의 살아 있는 웃음 속에서 배운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도 어느덧 그들 속에 들어가 있었다. 하루쯤은 그들의 따뜻한 웃음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좋으리!

/국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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