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베니스 중국 '저우좡' 900년 운하마을.. 명·청 풍경 그대로

2007. 2. 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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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사공이 '동양의 베니스'에서 노를 젓는다. 검푸른 이끼가 자라는 아치형의 돌다리를 지나자 명·청 시대의 고가옥들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다시 세월을 거슬러 골목길보다 좁은 운하로 뱃머리를 돌린다. 저녁노을에 물든 황금빛 세상을 향해 노를 젓는 사공의 애잔한 노랫소리가 수백 년 세월을 넘나들며 수향의 골목길을 메아리친다.

'중국 산천의 아름다움은 황산에 모여 있고,수향의 아름다움은 주장에 모여 있다(黃山集中國山川之美,周庄集中國水鄕之美)'

900년 역사의 저우좡(周庄)은 시골 냄새가 물씬 풍기는 물의 고향이다.

청후 바이센후 난후 등 바다처럼 넓은 호수와 강줄기가 거미줄처럼 이어지는 곳에 건설된 쑤저우(蘇州)의 저우좡은 '동양의 베니스'로 불릴 만큼 운하가 발달했다. 집을 나서면 골목길 대신 좁다란 운하가 발길을 가로막아 이곳 주민들은 지척도 나룻배를 타고 왕래한다. 채소도 운하에서 씻고 물고기도 운하에서 잡다보니 예로부터 중국 제일의 수향(水鄕)으로 불리는 것은 당연한 일.

운하가 '우물 정(井)'자를 그리며 동서남북으로 흐르는 저우좡에서 다리는 마을을 하나로 잇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원래 명·청시대의 돌다리가 30여 개 있었으나 지금은 13개만 보존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는 쌍교. 세덕교와 영안교가 종횡으로 이어지는 형상이 마치 고대의 열쇄처럼 생겼다고 해서 열쇄교로도 불리는 쌍교는 저우좡을 서방에 처음 알린 다리로도 유명하다.

상하이 출신 화가인 천이페이는 1984년에 운하를 가로지르는 아치형의 쌍교 그림에 '고향의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침 미국의 한 석유회사 사장이 이 그림을 구입해 덩샤오핑에게 선물하면서 쌍교는 중국과 미국의 우정을 상징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듬해 이 그림은 유엔에서 발행하는 공식 엽서의 도안으로 선정되면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2003년에는 저우좡이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명·청시대에 건축된 100여 채의 주택과 60여 채의 누각으로 형성된 저우좡은 시간이 정지된 마을이다.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면 청나라 시대의 복장을 한 만화경 상인이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중국 최고의 비단 생산지답게 노파들은 가게에서 직접 물레를 돌려 실을 뽑는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관광객만 아니면 영락없는 명·청시대 풍경이다.

1000여명의 마을 주민 대부분이 살고 있는 션팅(沈廳)과 쟝팅(張廳)은 저우좡에서 가장 큰 저택. 청나라 때 건축된 션팅은 겉보기엔 여느 민가와 다름없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고색창연한 100여 개의 방이 연이어 나타나 상상의 한계를 절감하게 한다.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설 때마다 나타는 방이 마치 인형 속에 인형이 들어있는 러시아의 마트료시카를 닮았다고나 할까.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쟝팅은 600여 년 전인 명나라 때 건설된 저택. 70여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건물 안의 대청 앞과 안채 뒤에는 나룻배가 방향을 돌릴 정도로 넓은 운하가 흐르고 사철 꽃이 피고지는 정원도 가꾸어져 있다. 창문에 기대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시설까지 갖춰 대부호였던 주인의 고상한 취향을 짐작하게 한다.

이밖에도 저우좡에는 사람을 홀리는 건물이라는 뜻의 미러우(迷樓)가 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데다 선녀같이 아름다운 딸이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는 식당이다. 명나라 철학자인 왕양밍(王陽明)의 바둑판을 보관한 저우좡 기원도 볼거리.

저우좡의 진면목을 보려면 나룻배를 타야 한다. 수십 척의 나룻배가 비스듬히 늘어선 부두에서 한가하게 뜨개질을 하던 여자 사공도 삿대만 잡으면 남자 못지않게 힘을 쓴다. 8명의 관광객을 태운 나룻배가 거울처럼 잔잔한 운하를 미끄러지면 운하 좌우로 빈틈없이 늘어선 명·청시대의 허름한 목조 건물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흐른다.

물이 탁함에도 불구하고 바닥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운하의 수심은 약 1m. 운하의 폭은 20∼30m로 비교적 넓지만 좁은 곳은 3m도 안돼 노련한 사공이 아니면 교행하기가 쉽지 않다. 아치형의 돌다리 아래를 지날 때마다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은 운하여행의 묘미. 골목은 관광객과 상인이 물건 값을 흥정하는 소리로 요란하고,찻집으로 변한 17세기의 누각들은 홍등을 주렁주렁 매단 채 21세기의 손님을 유혹하고 있다.

쑤저우(중국)=글 ·사진 박강섭 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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