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교'에 맞서 싸우는 <시사저널> 기자들

2007. 2. 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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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5일 파업에 들어간 <시사저널> 기자들이 직장폐쇄에 맞서 농성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금창태 사장은 삼성그룹 관련 기사를 삭제하고, 이에 항의하는 이윤삼 <시사저널>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그 뒤 사측과 기자들은 공방을 벌였고, 최근엔 기자들이 배제된 채 만들어진 '짝퉁' <시사저널>이 연이어 나오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릴레이 기고를 싣고 있다. 정범구 기자는 CBS '정범구의 시사토크 누군가?!'를 진행하는 시사평론가다. <오마이뉴스 편집자 주>

[오마이뉴스 정범구 기자]

▲ 지난달 22일, 서울 서대문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사측의 직장폐쇄를 규탄하고 있는 <시사저널> 노조원들.
ⓒ2007 오마이뉴스 남소연

"자기만 행복해서는 안 되는, 그런 시절이 있었단다."

황석영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오래된 정원>에서 주인공 오현우가 18년 감옥살이 끝에 처음 만난 딸아이에게 하는 말이다. 한가하게 웬 영화 이야기냐고?

지난 토요일(1월 27일), <시사저널> 노조원들이 농성중인 천막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와 보니 천막이 없다. 정희상 기자에게 전화하니 천막을 전날 밤에 철거했단다. 추위와 소음도 힘들었겠지만, 주변 상가 분들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그리 했다고 한다.

농성중인 분들과 점심이라도 같이 할까 하는 생각으로 나왔다가 갑자기 갈 곳이 없어진 나는 근처의 한 영화관으로 갔다. 오래 전부터 보려고 맘먹었던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울했고, 보고 나와서도 우울했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80년대의 참혹한 폭압의 풍경들, 그리고 그 속을 살아간 이들의 고단함이 이제는 빛바랜 그림이 되어 거기 고스란히 펼쳐져 있었다.

지금 세대들에게는 어쩌면 우스꽝스러워 보일지도 모를 그 시대의 '진지 모드'는 시장이 새로운 종교로 찬양되는 시대에는 불편해 보인다. 서울 시내의 그 많은 스크린 중에 간신히 하루 한차례만의 상영기회를 얻은 이 영화의 처지 자체가 불편해 보였다.

그래, 그렇지만 분명 우리에겐 그런 시대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행복해서는 왠지 죄스럽게 느껴지는 그런 시대가.

87년을 거치고 '국민'이나 '참여'자가 앞에 붙은 정권들을 거치는 동안 이제 개인적으로는 행복해져도 되는 시대 정도는 된 것 같은데, 과연 우리는 행복해진 걸까? 군홧발과 경찰 진압봉의 폭압이 사라진 시대에 이제는 '진실'과 '사회 정의' 같은 단어들은 낡은 단어로 간주돼도 좋은 것일까?

자본권력에 굴종 않는 <시사저널> 기자들... 새로운 천막이 필요하다

"모든 것은 시장에서 이뤄진다"거나 "시장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복음이 설파되는 시대에 우리는 과연 충분히 자유롭고 독립돼 있는가.

마치 70~80년대의 구호같이 느껴질 '언론 자유', '편집권 독립' 같은 구호를 여전히 외쳐야 하는 <시사저널> 기자들을 찾아 나선 길에 영화를 통해 맞닥뜨렸던 80년대의 풍경들은 그날 오후 내내 나를 우울하게 했다.

전국언론노조 사무실 한 귀퉁이로 옮겨간 <시사저널> 농성장을 찾아간 날, 마침 동아투위 소속 언론계 선배들도 격려차 그곳을 방문했다. 70년대 유신 정권에 맞서 싸웠던 정동익 선생 등 머리가 희끗희끗한 언론 자유 투쟁의 선배들이다. 정치권력에게서 언론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싸웠던 선배들이 이제는 자본권력의 막강한 힘과 싸우는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이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지금 이 시대의 핵심 화두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돼 가고 있다고 하는 언론조차 유순한 강아지처럼 만들어버리는 막강한 힘을 지닌 자본 권력. 시장만능주의와 기업 따라 배우기가 도도한 흐름이 되고 있는 현실의 뒤에 도사리고 앉아 이 시대의 막강한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자본권력의 실상을 드러내기 위해 이들은 지금 몸으로 기사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사저널> 기자들이 농성하던 천막은 걷혔지만, 우리에겐 정말 새로운 천막이 필요한 것 같다.

'시장교'(市場敎)의 위력 앞에서 종래의 전통적인 권력들이 숨죽이고 있는 시대, 1년에 몇 퍼센트의 경제성장율 또는 몇 천억 달러의 수출고 등이 대다수 국민의 삶과는 점점 무관해져 가는 사회, 자본권력이야말로 살아 있는 권력임을 검찰이나 사법부의 행태 등을 통해 알아차리게 되는 사회, 기업 또는 자본의 효율성 이외의 다른 많은 가치들은 간단히 무시돼버리는 사회.

이런 시대와 사회에 저항해 싸울 천막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리고 그런 시대의 화두를 지금 <시사저널> 기자들이 몸으로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수선하긴 하지만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있는 <시사저널> 기자들을 만나고 나오는 길에 떠오른 생각들이었다.

▲ <시사저널> 노조원들이 사측의 직장폐쇄에 항의하며 지난달 24일부터 서울 서대문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농성한 천막.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범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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