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km 걷고 보니.. 길이 곧 '소통의 미디어'

2007. 2. 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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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백병규 기자]

▲ 정선가는 동강길. 바위 벽에 겨우 붙어 있던 암벽길이 1960년대 무장간첩이 자주 출몰하자 군사도로로 ��혀졌다.
ⓒ2007 백병규

왜 그랬을까요? 그처럼 무모한 제안에 선뜻 동의해버린 것은. 남도 끝자락 바닷가 까지 걸어가자는 느닷없는 제안에 그처럼 쉽게 빠져버린 것은.

아마도 답답한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쳇바퀴 돌 듯 하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욕구가 그 무모한 도정의 불씨였을 것입니다. 왠지 모를 공허함이 불을 붙였는지 모릅니다. 그 느닷없는 제안의 도발적 신선함에 매료됐던 것일 수도 있겠죠. 그리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절실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미친바람이 불었습니다.

몸은 무겁고, 두 다리는 빈약했습니다. 호기로운 결단이었지만, 막상 2월 차가운 바람에 알코올 기운이 가실 쯤 해서는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과연 걸어갈 수 있을까? 그 남도 바닷가에 도착할 수는 있을까? 매번 그렇듯이 또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것이 아닐까 두려움도 밀려들었습니다.

3년 전 3월, 봄볕이 따사로움을 더해갈 때 광화문 원표에서 시작된 도정은 이제 어림잡아 3000㎞는 주파한 듯합니다. 서울에서 남도까지, 강원도 대관령 옛길을 지나 철책선에서 돌아서, 진부령 넘어 북한강을 따라 내려온 길, 죽령 고개 넘어 울진 청도 지나 영천에서 멈춘 미완의 도정, 광양 백운산 넘어 지리산․덕유산 자락으로 추풍령 고개 지나 다시 죽령길, 그리고 이제 소백산을 가로질러 동강을 따라 정선에 서 있습니다.

얼마나 새로웠는지 모릅니다. 평소 익숙하던 서울의 길거리도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한강 다리 난간에 애틋한 '고삐리'들의 사연이 그렇게 빼곡하게 적혀있는 것도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걷는 사람이 없는, 아니 걷기가 무서운 찻길의 갓길은 풀들의 잔치 마당이었습니다. 들풀들은 견고한 아스팔트의 미세한 틈새를 비집고 나와 걷는 이들을 반깁니다.

들녘의 농부들은 수상쩍은 이방인들에게 와서 막걸리 한잔 하고 가라면서, 잠시 쉬어가라면서 그 정체를 살핍니다. 도시의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면 정류장을 알려줍니다. 아무리 길을 묻더라도 돌아오는 답은 마찬가집니다. 차를 타고 가면 될 텐데 걷긴 왜 걸어? 그 길을 어떻게 걸아가? 시골 분들은 그런 점에서 확실히 코드가 다릅니다. 잠시 궁금해 하지만, 금세 받아들입니다. 왜 그런지 묻지도 않습니다. 그러려니 합니다. 아니면, 그 분들이 이전에 다 걸어 다녔던 길들이기에 그런지도 모릅니다.

▲ 아스팔트를 뚫고 나오고 있는 풀들의 생명력. 화순가는 길.
ⓒ2007 백병규

3년 전 떠난 길, 3000㎞를 걸었습니다

참으로 아는 게 없었습니다. 세상에 그리 많은 꽃과 나무들이 있지만, 그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나무와 꽃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도대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그 무지를 깨닫게 됩니다. 모내기를 하지 않는, 직파 농법이 제법 유행인 것도 이제 알았습니다. 무너지고 있는 농촌이라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 사람들이 묵묵히 버티고 있음을 확인할 수도 있었습니다. 빛과 그림자는 그런 시골길인들, 마을인들 물론 예외는 아닙니다.

걷기에 나설 때마다 또 어떤 길을 걷게 될까, 어떤 마을을,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설렘이 앞서지만 또 얼마나 많은 고갯길을 넘어야 할지 걱정이 달라붙습니다. 고갯길을 만날 때마다 이번에는 조금은 가볍게 넘어갈 수 있을까 기대해보지만 번번이 숨이 턱에 차오르는 언덕받이에 파김치가 되곤 합니다. 그래도 걷다 보면 저 멀리 아득하게 보이던 산줄기를 넘게 되고, 언제 갈까 싶었던 마을에서 하룻밤의 안식처를 찾곤 합니다. 비로소 거리의 정도를 몸으로 체감하게 됩니다. 걸은 만큼, 힘든 만큼 거리는 좁혀지지만, 또 가야 할 거리의 체감 지수는 더 늘어나기도 합니다.

▲ 옛길이 사라진 산속에는 나무숲 속에 낙엽만 가득하다. 강원도 함백에서 정선 넘어가는 고갯길.
ⓒ2007 백병규

전신주 한 개 차이의 거리를 따라 잡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걷기는 정직합니다. 인내의 미덕을 배우게 됩니다. 묵묵한 걷기만이 그 차이를, 거리를 좁힐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일 것입니다. 앞선 자와의 차이는, 거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계속 걸을 수만 있다면, 걷기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만날 것입니다. 같이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혹은 떨어져서라도 서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믿음만 있다면, 혼자 걷는 길이라 해서 외로울 것은 없습니다.

어디를 가든 새 길을 내는 공사 현장을 쉽게 만나게 됩니다. 새로 놓이는 고속화도로들은 거대한 둑길입니다. 평지를 가르고, 마을들을 갈라놓는 제방길입니다. 산맥을 관통하는 터널길이자 하늘을 가로 지르는 거대한 구조물의 다리길입니다. 찻길 아래에서는 길 위를 질주하는 차량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차량소리만이 그 고속의 질주를 전해줍니다. 찻길위의 차량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시원하게 뚫린 앞길이 눈앞에 펼쳐지지만 주변의 마을들은 이제 이런 찻길의 풍경 속에서는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운전자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습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평지 눈높이의 길들은 이제 차량의 통행마저 뜸합니다. 한참을 걸어도 차 한대 만나기 어려운 한적한 도로는 도보 여행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호젓함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인적과 차량의 통행마저 끊긴 그 쓸쓸한 적막함 속에서는 왠지 모를 서글픔이 묻어나기도 합니다.

지도에는 희미한 점선으로 남아있는 옛길들은 이제는 끊어진 길들일 때가 많습니다. 지도만 믿고 갔다가는 끊기고 덤불로 막힌 산속에서 한참을 헤매기 십상입니다. 한 때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고, 읍내로 나가던 지름길들이었지만 이제는 잊혀지고 끊어져 있습니다.

누군가는 길은 땅바닥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이라고 했습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많은 길들의 용도와 운명이 교차합니다. 또 길은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의 연대의 표식이라고도 했습니다. 그 길을 통해 마을과 사람들은 서로 만나고, 이야기하고, 또 필요한 것을 교환했을 것입니다. 길은 마을과 사람들을 공동운명체로 묶어주고, 그 공동운명체들이 땀과 눈물로 닦아 터놓은 소통의 길이었습니다. 길은 곧 미디어이기도 했습니다.

▲ 모판에 흙을 고르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경기도 안성 들판.
ⓒ2007 백병규

마을과 사람들을 묶어주는 길... 길은 곧 미디어

이제 그런 역사의 흔적이, 연대의 표식이, 만남과 소통의 길들이 흐려지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신 도시와 도시를 잇는 거대도로에서 차량들은 서로 아는 체도 하지 않고 숨 가쁜 경주를 벌이며 질주하고 있습니다. 그 질주는 필연적으로 대도시 인근의 꽉 막힌 정체로 이어지곤 합니다. 고속화도로들은 모든 것을 도시로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 더 큰 도시로 집중화되고 있습니다. 고속화도로에서 배제된 마을과 지역은 시들고, 소멸해가고 있습니다. 어디 도로만 그렇겠습니까?

빛과 같은 속도의 정보 전달이 가능한 디지털 미디어 시대입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소통이 가능한 열린 미디어 공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구촌 곳곳을 한 순간에 이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대화와 소통이 더 막혀 있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우리의 시각 또한 한반도, 그것도 반쪽의 반도 속에서 여전히 맴돌고 있는 게 아닌가도 싶습니다. 전들 예외가 아닙니다.

새롭게 길을 나서고자 합니다. 미디어에 대한 탐사에 다시 나서보고자 합니다. 지도를 다시 그리고, 좌표의 재설정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소통과 연대라는 나침반을 길동무 삼아 가능하다면 미디어의 창 너머로 까지 걸어가 보고자 합니다.

미디어와 길, 서로 다른 통로지만 소통의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길을 걷는 심정으로 나서보려 합니다. 그 길에 많은 분들이 같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끊어진 소통과 연대의 길을 같이 이어 나갔으면 합니다. 혹여 잘못된 길로 접어들면 바로 이끌어 주기 바랍니다.

/백병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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