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없는 글쓰기' 발자취를 따라

2007. 1. 1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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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손현희 기자]

▲ 청리면 풍경, 나지막한 점방(가게)들이 잇달아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어릴 적 마을을 보는 거 같아요.
ⓒ2007 손현희

지난 일요일(14일) 경북 상주시 청리면에 다녀올 생각을 하고, 앞날부터 위성으로 보는 길 그림을 꼼꼼히 살피며 준비를 했어요.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아침밥을 먹고, 우리 부부가 타고 갈 자전거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간단한 먹을거리도 챙겨서 집을 나섰어요.

상주시 청리면에는 우리가 매우 우러르는 이오덕 선생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에요. 선생님이 젊을 때 일하시고 몸담았던 '청리국민학교'가 있는 곳이지요.

이곳에는 아주 남다른 얘깃거리가 있어요. 거짓 없이 솔직하게 꾸미지 않고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믿었던 선생님이 어린이 문학에 깊은 마음을 담아 아이들을 가르치셨던 곳이지요. 선생님이 같은 아이들을 2학년에서 4학년 2학기 첫머리에 이르기까지 반을 바꾸지 않고 가르치셨는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 아이들이 쓴 시를 따로 모아 시모음을 펴내셨어요.

바로 <허수아비도 깍꿀로 덕새를 넘고>란 시집이지요. 예순여덟 명의 아이들이 쓴 맑고 깨끗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이 시모음은 자연과 동무 삼아 사는 이야기가 있고, 경북 상주 지역 토박이말을 그대로 살려 아이들이 말하는 대로 쓴 글이라 더욱 소중하지요.

내가 이 시들을 읽으면서 선생님이 무엇보다도 참되고 사람답게 자라도록 이끌어주신 걸 잘 알 수 있어 참 좋았어요.

'글짓기'가 아닌 '글쓰기'를 몸소 가르치며 아이들의 생각과 말이 아무 꾸밈없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시를 읽으며 내 마음에 매우 깊게 자리 잡고 있기도 하지요. 이런 선생님과 그 밑에서 배우며 즐겁게 살았을 아이들 꿈이 담겨 있는 '청리초등학교'를 찾아가는 우리는 매우 신이 났어요.

▲ 김용구 어린이가 쓴 시 '굴밤'길 젙에, 큰 독크, 니찐다, 끄티, 밥그럭 따위 상주 지역에서 쓰는 말투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시에요.
ⓒ2007 손현희
▲ 이순희 어린이가 쓴 '내 동생' 시개또(썰매를 이 지역에선 이렇게 불러요), 자맸는 같습니다... 말이 퍽 재미있지요?
ⓒ2007 손현희

떠나기 앞날까지 꽤 추워서 걱정했는데, 일기예보를 보니 다행스럽게도 날씨가 맑고 포근하다고 해서 너끈히 다녀올 수 있으리라 믿고 나섰어요. 그런데 구미를 벗어나 선산읍에 들어서면서부터 바람이 어찌나 불던지 가는 내내 맞바람과 싸워야 했어요.

있는 힘을 다해 자전거 발판을 밟아도 빠르기가 시속 10km를 채 넘기지 못하더군요. 자전거를 오래 탄 사람한테는 이까짓 바람이 무슨 문제일까만 우리한테는 매우 버거운 일이었어요.

▲ 옥산면에 들어서며 만난 소, 바깥 밭 언저리에 앉아있는 모습이 무척 정겨웠어요. 한참동안 서서 소랑 나랑 얘기도 나눴답니다. 저 녀석은 그 큰 눈만 끔벅거렸지만...
ⓒ2007 손현희

청리까지 닿는 시간을 어림잡아 세 시간쯤 잡았는데, 무을면을 지나 안곡저수지에 다다르니 벌써 오후 1시가 훌쩍 넘었어요. 밥도 먹어야 하겠고, 길그림으로만 봤지 처음 가는 길이라 실지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가늠할 수 없었어요.

또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돌아올 것까지 생각하니 쉬지 않고 맞바람을 맞으며 갈 일이 무척 걱정스러웠지요. 우리는 먼저 밥부터 먹고 다시 생각해보자 싶어 저수지 둘레에 있는 밥집에 들어갔어요.

밥을 시켜놓고 밥집임자에게 물으니, 이제 고개 하나만 넘으면 옥산이고, 그 다음이 바로 청리라고 하는 거예요. 남편과 나는 서로 얼굴을 보며, "여기까지 왔는데 끝까지 가보자!" 했지요.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바람이 불더라도 등 쪽에서 불 테니 훨씬 더 빨리 갈 수 있을 거라 하면서 처음 마음먹은 대로 하기로 했어요.

▲ 청리초등학교 교문에 들어서며, 이오덕 선생님 발자취를 따라온 길이라 가슴이 뭉클하고 뜨거웠어요.
ⓒ2007 손현희

이윽고 청리에 닿았어요. 들어서자마자 바로 '청리초등학교' 팻말이 보여서 쉽게 찾을 수 있었지요.

교문 앞에 서서 학교를 바라보니 마음이 뜨거워졌어요. 선생님이 바로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중에 따로 엮어낸 시를 쓰면서 지냈던 배움터라고 생각하니 더욱 그랬어요. 남편도 내 마음과 같았는지 한참 동안 멍하니 학교를 바라보고 있더군요.

말장난과 거짓 글을 꾸며 만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그대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마음 바탕을 살려 글쓰기를 가르쳤던 선생님의 그 깊은 뜻을 들여다보는 듯했어요.

▲ 청리초등학교 아이들, 맑고 씩씩한 모습으로 상주 지역 정겨운 말투로 얘기하던 아이들이 퍽 귀여워요.
ⓒ2007 손현희
▲ 강아지도 아이들처럼 맑고 귀여웠어요. 낯선 우리를 보고 잔뜩 겁먹어 하던 모습이 더욱 귀여웠지요. 강아지 이름이 미미라고 하네요.
ⓒ2007 손현희
▲ 청리초등학교 안, 학교 교목인 폐총향나무가 아주 많았어요. 교훈은 '슬기롭고 알차며 몸이 튼튼한 어린이'라고 하네요. 이 우리 말로 쓴 교훈이 무척 맘에 들어요.
ⓒ2007 손현희

학교를 찬찬히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운동장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렸어요. 소리 나는 데로 다가가니, 네다섯이 모여 있어요. 귀엽게 생긴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놀다가, 아이들이 모두 먼저 "안녕하세요!"하며 씩씩하게 인사를 해요.

그리고 자전거 모자를 쓰고 사진기를 들고 있는 우리를 보며 매우 신기한 듯 보면서 "자전거 타고 오셨어요?"라고 묻는 거예요. "응, 아줌마 아저씨는 구미에서 왔어"하고 말하니, 다리가 아프지 않으냐고 물으며 무척 놀라워하는 눈치예요. 상주 말투가 그대로 배어 있는 말을 하며 이것저것 묻는 아이들이 퍽 귀여웠어요.

▲ 청리역, 간이역인데 무척 정겨워요. 이곳에도 대합실을 '맞이방'이라고 썼더군요. 무척 살갑지요?
ⓒ2007 손현희

아이들과 헤어져 얼마 동안 더 머무르다가 청리 마을 이곳저곳을 더 둘러보았어요. 나지막한 점방(가게)들이 이어 있어, 마치 어렸을 적 우리 마을을 보는 것 같았어요. 세상은 많이 바뀌었어도 왠지 이곳에는 그 옛날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퍽 정겨웠답니다.

시골 간이역인 <청리역>에도 들러보았고요. 겨울이라 한가한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퍽 즐겁고 뜻 깊은 날이었어요.

다시 구미로 돌아갈 길이 쫓겨 왔던 길로 되돌아오면서 내내 가슴이 뭉클하고 무척 따뜻했답니다.

▲ 이오덕 선생님이 가르친 청리초등학교 아이들의 꾸밈없는 삶을 그대로 살려 쓴 시모음 <허수아비도 깍꿀로 덕새를 넘고> 보리출판사.
ⓒ2007 손현희

마지막으로 이오덕 선생님이 <허수아비도 깍꿀로 덕새를 넘고>란 시집 끝머리에 적어놓은 글 몇 부분을 옮겨 봅니다.

"이 시집에는 살아 있는 우리 말이 있습니다. 삶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또 말이 병들었다는 사실이 됩니다. 지금 우리 말은 밖에서 들어온 말로 난장판이 되어 있는데다가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짓밟아 없애기에 정신을 잃고 있습니다.어른들은 모두 경제 위기를 말하면서 걱정하지만, 경제보다 더 위태롭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 말이고, 경제가 이 지경으로 된 까닭도 말이 병들고 병든 말 따라 정신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말, 우리 얼을 살리는 일이 우리가 살아날 수 있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길이고, 가장 급하고 근본이 되는 일입니다…….시와 어린이와 자연이 모조리 병들고 없어져 가는 이 거칠고 숨 막히는 세상에, 우리 한 번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 맑은 새소리며 물소리에 귀를 씻고, 하늘빛을 안아 보고, 우리를 길러 주던 흙을 만져 본다는 것은 얼마나 반갑고 기쁘고 가슴 울렁거리는 일입니까."

/손현희 기자

덧붙이는 글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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