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엑세쿠탄스' 출간 이문열 "보수반동 불린지 10년, 이젠 짐 지겠다"

2007. 1. 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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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문열(59)씨가 돌아왔다. 미국 UC버클리대에 체류 작가 자격으로 머물고 있던 그가 일시 귀국한 것은 계간 '세계의 문학'에 지난 1년간 연재한 장편 '호모 엑세쿠탄스'(전3권·민음사) 출간 때문이다.

대선을 향한 정치권의 행보가 급박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대통령 탄핵이나 정부 여당내 386 세력과 대북정책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담고 있는 이번 소설을 두고 '문학의 정치 도구화'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대선을 의식한 작품'이라거나 '선거철마다 튀어나오는 이문열 특유의 행보'라는 비난이 그 것.

지난달 29일 귀국한 그를 2일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귀국해보니 소설가가 소설을 써놓고 제발 소설은 소설로 읽어달라고 간청해야 하는 고약한 시대가 되었더군요. 소설이 현실 정치를 발언해서는 안된다는 것,아니 소설에 작가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이 희안한 소설론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요. 게다가 더욱 알 수 없는 일은 소설에 현실 정치의 문제를 수용하는 것을 무슨 괴변이라도 되는 양 핏대를 세우는 이들일수록 지난 시대,그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소설은 어김없이 정치적이었다는 점이죠."

'호모 엑세쿠탄스'는 그가 만든 조어로 '처형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2003년 대선 정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설의 중심적인 인식은 종말론이라는 점에서 묘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요즘 한국사회를 보면 종말론적 인식,즉 더 견디지 못할 정도로 여러 모순이 쌓이면서 이제야말로 더이상 미루지 말고 끝장을 봐야 하지 않느냐 하는 논의에 상당히 광범위하게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 같더군요. 통일만 해도 예전엔 추상적인 문제였는데 지금은 절박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게 사실인 동시에 지금 당장 통일을 해야 한다는 사람도 생겨났지요. 이게 안되면 사회는 더이상 유지될 필요가 없다는 인식도 있지요."

이같은 극단적인 종말론적 인식은 소수의 인식인데 부당할 정도로 과장되고 확대된 측면이 있다고 역설한 그는 "하지만 제가 그런 인식을 소설에 도입했다고 해서 종말론을 동의하지는 않는다"며 "자기가 무엇에 동의하는지도 모르면서 그것에 함몰되어가는 사람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40여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어 질문을 해대는 통에 얼굴이 붉어진 그는 윗도리를 벗으면서 "모두 48장으로 이루어진 소설 내용 가운데 정치성 있는 부분은 2∼3장에 불과한 데도 일각에서는 소설 전체를 보수 반동으로 보고 공격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한 뒤 페미니즘 논란을 일으켰던 소설 '선택'을 떠올렸다.

"이번 소설을 둘러싼 논란과 '선택' 당시의 논란은 다르지요. 사회적인 선제공격이란 점에서는 비슷한 상황일지 모르지만 내용면에서는 전혀 다르다는 얘깁니다. 당시엔 지지부진한 여성운동의 먹잇감 혹은 공동의 적으로 나를 발견한 셈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운동이 있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보수 우파로 분류하는 현실적 잣대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 않겠다며 건강한 보수로서의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번 소설에 투영된 작가의 정치적 견해를 용서 못할 문학적 반칙이라도 되는 것처럼 욕부터 하고 덤비는 까닭을 참으로 알수가 없더군요. 막말로,엎어져도 왼쪽으로 엎어져야 하고 자빠져도 진보 흉내를 내며 자빠져야 한다는 소리나 다름 없는 것이죠. 90년대만 해도 나를 보수 반동이라고 몰아붙이면 저항했는데 이제는 저항을 포기한 정도로 아니라 기꺼이 그 짐을 짊어질 생각입니다. 나처럼 미련스런 사람이 있어야 뭔가 되지 않겠어요. 이번 소설은 실수 부분까지도 제가 책임을 질 것입니다."

환갑을 두해 남겨놓고 쓴 작품인 동시에 25번째 장편이라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도 작가적 중압감과 책임감을 느낀다는 그는 이번 소설을 통해 "지극히 엄숙한 것들이 지극히 하찮게 쓰여지면서 드러나는 충격,혹은 지금 여기의 사소함이나 하찮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침 야당의 대선 예비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감회를 묻자 그는 빙그레 웃음부터 지었다. "아직도 1년이라는 세월이 남았는데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죠. 그동안의 경험을 봐도 그렇고 선거 한달 전에도 순위가 바뀌는 변수가 튀어나오게 마련인데다 아직 상대(여당 후보)조차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것 아닙니까."

노무현 정권에 대해 정견을 청했지만 그는 모호한 말로 직답을 피했다. "어떤 것은 많이 나갔다고 해도 회복되는 진전이 있는 반면 어떤 것은 불가해한 것도 있지요. 그 불가해한 부분이 더 진전되어서는 안된다는 느낌은 있지요. 그렇다고 지금 일어난 현실이 다 불가해한 것은 아닌 것이고."

오는 2월말 출국해 미국 하버드대에 1년동안 체류할 계획이라는 그는 해외 거주자를 위한 부재자 투표를 통해서라도 12월 대선에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좀 쉬다가 기왕 미국에 간김에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정치 작가라는 타이틀이야 자업자득이지만 그래도 문학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그걸 완화해서 봐줬으면 합니다."

글 정철훈 전문기자, 사진 김지훈 기자 chjung@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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