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감나무가 '해거리'를 하다

2006. 10. 1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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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판수 기자]

▲ 작년 이맘때 가지마다 빽빽이 열린 감들
ⓒ2006 정판수

원래 해걸이(표준어는 '해거리')는 같은 땅에 작물을 연속하여 재배하면 지력(地力)이 떨어지므로, 작물을 재배하지 않고 쉬게 하여 지력을 스스로 회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실시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런데 과일나무 등을 잘 관리하지 않아 한 해에는 과일이 많이 열렸다가 그 다음 해엔 적게 열리거나 아예 열리지 않는 경우도 해거리라 한다. 이 글에서 말하는 해거리는 바로 후자를 가리킨다.

우리집 감나무는 참 크다. 둘레는 아이 둘이 손을 맞잡아야 할 정도고 높이는 재보지 않아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10m를 넘지 않나 싶다. 그래서 감이 엄청나게 열리지만 1/10밖에 못 딴다. 손으로 놀릴 수 있는 장대가 올라갈 수 있는 높이가 그 정도밖에 안 되기에. 마을어른들 얘기를 들어보면 아무래도 백 년은 더 된 것 같다.

동물은 나이가 들면 생산성이 떨어지지만 식물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정확히 개수를 새보지 않았지만 지난해엔 처음 매달린 게 5000개쯤 되었다. 자라면서 비바람에 떨어지고, 홍시가 되기 전에 떨어지고, 너무 높아서 포기하니 실제로 따먹을 수 있는 거야 그 반 정도가 되었지만.

▲ 올해도 나뭇잎은 작년처럼 무성하나 감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2006 정판수

그런데 올해 감나무에 매달린 감의 숫자가 작년의 반의반도 안 된다. 아니 어쩌면 1/10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작년에도 이랬으면 원래 이 나무가 이랬으니 할 수 없지 하며 포기할 일이었으나….

어른들에게 여쭤봤더니 해걸이를 한단다. 우리 집 감나무뿐만 아니라 동네 감나무란 감나무는 다 그렇단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이곳저곳을 훑어보아도 감이 제대로 달린 감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헌데 우리 마을에서 딱 한 군데 집 감나무에는 감이 아주 많이 달려 있다. 거주지를 울산에 두고 토요일, 일요일에만 왔다가는 소위 주말주택의 주인집인데 그 집 감나무엔 작년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을 만큼의 감이 달려 있다.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혹 특별히 관리했느냐고. 그랬더니 특별히 정성들인 건 아니지만 지난 겨울부터 거름을 듬뿍 주고, 막걸리 마시다 남으면 부어주고, 음식 찌꺼기를 나무 아래 계속 파묻었고, 삭힌 오줌을 때때로 주었다고 했다.

▲ 이틀 간 긁어모은 감나무 낙엽
ⓒ2006 정판수

그 말이 머릿속을 때렸다. 사실 우리 동네 어느 집이든 감나무는 그냥 내버려둔다. 즉 거름을 전혀 주지 않는다. 소똥이 넘쳐도 거기에 갖다 붓지 않는다. 감 팔아 돈 버는 집도 없거니와 그냥 군것질감으로야 쓰기에 애써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다.

하지만 마을 어른들이야 이익이 남는 농사가 아니기에 그렇다고 쳐도 나는 왜 그냥 두었을까? 거름을 주고 애를 썼다면 분명 결과가 달라졌을 텐데…. 결코 감을 많이 수확하지 못해 아까워서 하는 말이 아니다. 감나무를 위해서다. 아니 우리 집을 위해서다.

우리집을 들르는 사람들마다 한 마디씩 하는 게 '감나무 참으로 멋있다!'가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나는 왜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우리 집의 상징적인 나무가 감나무인데. 이웃에서 우리집을 '정 선생집'이라 부르기 전엔 '감나무집'이라 했다는데.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이 얼마나 관심을 가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시골의 동물과 식물도 마찬가지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고, 소의 크기는 꼴 베 오는 등짐수에 따라 다르다'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노력 없이 결실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내년에 감을 많이 따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나무의 생명력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아니 우리집의 상징물을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부지런히 거름을 주어야겠다.

/정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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