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본토에 핵폭탄이 떨어지면?

2006. 10. 1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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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익준 기자]

▲ 미국 본토 핵폭발을 그려 충격을 주었던 <그날 이후>. 미국에서만 5천만 명이 시청했다.
ⓒ2006 ABC

핵무기를 고안한 것은 2차대전의 나치였지만 인류 최초로 핵무기를 만들고 전쟁에서 사용하고 지금도 가장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핵 전력의 대부분을 움켜쥐고 있는 미국이지만 오히려 핵에 대한 공포를 가장 많이 느끼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핵전쟁에 대한 공포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였지만 하나의 금기가 있었다. 미국과 소련의 오해나 컴퓨터의 오작동으로 핵전쟁 위기로 치닫는 상황을 묘사하는 것은 가능해도 핵폭탄이 미국 본토에 떨어지는 장면 자체를 다루는 것은 곤란했다. 핵이 떨어져 인류가 멸망한 다음을 그리는 것은 되어도 핵폭탄이 떨어지는 시점은 등장하지 않았다.

▲ 미국 정부는 사람이 뼈만 남기고 불타는 장면도 간섭했지만 실제 핵이 터지면 뼈도 남지 않는다고 한다.
ⓒ2006 ABC

1983년 미국 ABC 방송이 제작한 <그날 이후>는 핵전쟁이 일어나 미국 본토에 핵무기가 떨어지는 상황을 묘사해서 큰 충격을 주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에 대해 강력한 압박 정책을 주도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더 민감하게 받아들여졌고 미국 정부는 국민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핑계를 대며 구체적인 장면까지 언급하며 간섭했다. 미국 국방부는 소련이 먼저 핵미사일을 쏘는 것으로 설정하면 군 장비를 지원하겠다는 당근을 내 놓았지만 제작진은 이를 거부하고 누가 먼저 쏘는가를 모호하게 처리했다.

미국은 핵폭발 실험을 가장 많이 한 나라이고 핵과 관련된 시행착오도 많이 겪어본 나라이기에 핵무기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서도 지식이 많다. <그날 이후>는 핵이 폭발하는 순간 강력한 전자기파가 발생하여 전자제품들이 멈춰 버리는 상황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날 이후>에는 생존자들이 난민이 되어 떠돌고, 땅이 오염되어 농사를 짓지 못하며, 기형아 출산이 속출하는 상황들을 진지하게 담아냈다.

▲ 핵폭발을 묘사한 탓에 자체 편집을 당했던 <터미네이터 2>. 잘린 장면들은 나중에 감독판으로 살아났다.
ⓒ2006 Columbia

<그날 이후>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은 불바다가 휩쓰는 충격적인 장면보다 한적한 미국 시골에서 어딘가로 날아가기 시작하는 미사일들이었다. 어쩌면 미국 정부가 <그날 이후>를 간섭하며 감추고 싶었던 것은 핵폭발의 무서움이 아니라 당신이 한가롭게 살고 있는 동네 가까이에 수백, 수천 발의 핵무기가 감춰져 있다는 사실 자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를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 핵전쟁 이후를 다룬 가상 드라마 제작이 유행했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여전히 꺼려지는 일이었다. 기계가 일으킨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 위기에 몰린다는 SF 영화 <터미네이터 2>(1991)조차도 미국 도심에 핵무기가 떨어져 불바다가 되는 장면을 찍어 놓고도 경영진의 내부 검열에 걸려 편집되었다. 이 장면은 나중에 LD와 DVD로 살아났는데 봐서 그렇게 무서운 표현들은 아니었음에도 알아서 몸을 사려야 했던 사정은 무엇이었을까?

소련이 붕괴되면서 핵전쟁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소련이 무너진 다음 핵무기에 대한 중앙 통제가 느슨해져 돈만 있으면 누구나 핵무기를 손에 넣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공포가 생겼다. 러시아에서 핵무기를 빼돌려 테러리스트들에게 팔아먹는 상황이 등장하는 <피스메이커>(1998)에는 핵무기 빼돌리기 위해 러시아 본토에서 핵폭발을 일으키는 악당들이 등장하는데 다른 나라들은 핵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는 미국의 불신을 드러낸다.

▲ <피스메이커>와 <썸 오브 올 피어스> 모두 포스터에 핵무기 통제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면서 미국 아닌 나라는 핵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는 불신을 드러낸다. 아래 핵폭발 장면은 <썸 오브 올 피어스>.
ⓒ2006 DreamWorks외

작고 값싼 핵무기가 늘어나고 있다는 근심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본토가 직접 공격당할 수 있다는 공포를 만나면서 아랍 테러리스트가 미국 본토로 핵폭탄을 들여와 폭발시키는 <썸 오브 올 피어스>(2002)같은 영화가 등장한다. 핵무기를 갖고 있는 국가는 늘어가고 핵폭탄 크기는 작아지는 추세여서 과거 미소 냉전시대처럼 인류 멸망수준으로 핵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줄어들었지만 실제 전쟁이나 테러공격에서 핵이 사용될 가능성은 늘어났다는 게 문제다.

20년 전 영화 <그날 이후>는 아날로그 특수효과와 자료화면을 이용했다.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을 자랑하는 <썸 오브 올 피어스>는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핵폭발을 버섯구름이나 폭풍 같은 풍경으로 표현하고 사람들이 가루가 되는 세부 표현은 에둘러 가는, 10년 전 <터미네이터 2>보다도 소심한 묘사를 보여 준다. 미국 본토 핵폭발에 대한 할리우드 몸 사리기는 여전한 것일까?

/장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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