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이르쿠츠크(Irkutzk IV), 목조가옥의 미(美)

2006. 9. 1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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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배강열]

◇ 앙가라 강가의 목조가옥과 집주인의 모습 ⓒ 들찔레

이르쿠츠크를 멀리서 보면 높은 첨탑을 가진 교회나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깔로 치장한 건물들이 먼저 눈에 띄지만 가까이로 다가서면 설수록 더 작은 집들과 사람 사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중에 가정 특징적인 볼거리이자 아름다운 것은 통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목조가옥들이다.

시베리아의 동토에서 가장 무성하게 자라는 침엽수림은 그곳을 사는 사람들에게 땔감으로 집을 데우는 용도부터 집을 짓는 재료로서의 의미에 이르기까지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된다. 지금은 사라진 까잔스키 교회나 석재로 바뀐 즈나멘스키 수도원 등이 원래는 목재로 만든 것이었던 것이나 브리야트 인들이 정착생활을 하면서 그들이 주거했던 천막 같은 겔(Ger)을 버리고 같은 구조의 목조형식의 겔을 지어 살았던 것을 보면 주거형태는 그 지역의 자연과 환경에 맞게 만들어짐을 알 수 있다.

◇ 사람이 아직 살고 있는 목조가옥이 대부분이다 ⓒ 들찔레

그리스나 이탈리아의 경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신전의 문화가 지금껏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며 가우디로 대표되는 스페인의 석조건물들 또한 그 나라의 정서와 원형을 잘 보여주는 예 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화강암의 거칠지만 따뜻하고 소박한 질감의 석조유물들이나 부석사 무량수전으로부터 무리 없이 자연과 어우러지는 긍정적인 멋, 서울의 북촌 한옥들이 주는 동질감과 안정감 등이 우리네 가옥들의 특질인 것이다.

따라서 이르쿠츠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래된 목조가옥들은 당연히 지역적 특성에 기반 하여 이루어진 자연 유산이다. 러시아의 다른 지역에도 목재가옥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의 목재가옥들 대부분이 특별히 국가의 지정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는 이유는 300채 이상 가장 많은 수효가 남아있다는 표면적 이유에 국한하지 않는다.

약 300년 전에 만들어진 오랜 것들로부터 적어도 평균 2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사람이 살면서 남은 가옥들인 데다가 가장 최근에 지어진 집도 100여 년 전의 것이며 그 가옥들의 구조가 다양하고 아주 독창적인 방법으로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 목조 건축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샤스틴의 집' ⓒ 박상훈

그중 가장 유명한 목조가옥이 18세기에 지어진 '샤스틴의 집'이다. 현재 이르쿠츠크시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이 집은 앞면에 많은 장식물로 치장되어 집 둘레의 장식이 레이스처럼 보인다고 해서 레이스의 집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르쿠츠크시의 목조 건축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다. 이 집은 담장과 대문 등이 소실되고 부분적으로 훼손되었던 것을 1999년에 수리 보수하였다.

이렇게 아름답고 규모가 큰 목조가옥도 있지만 대개는 사람이 살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거나 지금도 사람들이 생활하는 일반적인 주택형태의 목조가옥이 주는 단순하지만 나름대로 멋을 풍기는 집들이 나 같은 여행객에는 더 운치 있어 보인다.

앙가라강 쪽으로 늘어선 집들 중에는 오래되어 집의 아래가 한참 땅에 파묻힌 것들도 있고 때로는 굳게 닫힌 창의 외문이 너무 낡아 아예 문이 열릴 것 같지 않은 모습, 혹은 너무 작은 집이어서 저렇게 좁고 낮은 집에서 덩치가 큰 러시아인들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창문하나 같은 모양이 없고 색깔 또한 다양한 그 집들에 나름대로 역사와 사람의 손때가 묻어 있는 모습이 경이롭기 때문이다.

◇ 목조가옥의 지붕장식 ⓒ 들찔레
◇ 레이스 같은 목조가옥의 처마장식 ⓒ 들찔레

이 목조가옥들의 외관이 특이한데 여러 개의 밖으로 난 창문들이 각각 그 모양이 집마다 틀리고 창문을 칠한 색깔들이 다양하다. 창문 안에는 대개 레이스로 만든 하얀 커튼이 드리워져있고 창틀에는 작고 앙증맞은 화분들을 기르고 있는 모습이 예쁘다.

또한 이런 모든 목조가옥들의 가장 특징이자 공통점 중 다른 하나는 얇은 나무를 이용하여 처마둘레를 마치 레이스처럼 장식을 하거나 지붕 끝, 창문 등을 꾸몄다. '샤스틴의 집'처럼 집 전체를 꾸민 것도 있지만 대개의 일반 목조가옥들은 그만큼 화려하지는 않은데 이런 장식들의 원류는 이슬람교 모스크의 창이나 벽을 치장하던 기하학적인 모양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 목조가옥의 다양한 형태의 창문1 ⓒ 들찔레
◇ 목조가옥의 다양한 형태의 창문2 ⓒ 들찔레

초기 목조가옥에서는 이런 장식들이 배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후기로 갈수록 장식의 경향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장식의 의미는 창문 모양의 다양성과 함께 집을 보호하고 악귀를 막아주고 번영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일종의 부적 같은 역할을 했다. 문양 모양에는 사각형, 오각형, 나선형 등의 기학학적인 모양의 초기 스타일과 장미, 별, 화살, 볼류타등의 자연 모양을 이용한 후기 스타일로 나누어진다.

문득 우리나라의 기와를 얹은 오래된 목조건물들이 생각이 난다. 우리의 전통가옥과 이르쿠츠크의 목조가옥에서 공통적인 양식을 발견한 것이다. 이르쿠츠크의 목조가옥에서 보여주는 창문의 형태는 우리 전통가옥의 문창살과 그 의미가 같은 것이다.

예컨대 우리 전통가옥에서 문창살은 얇고 긴 나무를 서로 수직으로 교차시켜 짜는데 가로로 배열된 나무들은 위로부터 짝수, 중간에 홀수, 아래에 짝수로 놓던지 아니면 위부터 아래로 짝수, 홀수, 짝수로 배열한다. 음양오행에 근거하여 음. 양, 음이나 양. 음. 양으로 문창살을 배치하여 악귀가 방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또한 각각의 문창살은 가늘게 홈을 파서 요철을 둔 것들도 있는데 이런 것들도 사실은 악귀의 눈을 멀게 하여 문이 보이지 않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지붕장식, 병산서원 ⓒ 들찔레
◇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문창살, 운현궁 ⓒ 들찔레

또 기학학적 모양의 지붕이나 처마장식도 악귀를 근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우리의 전통가옥에서 보는 지네나 박쥐모양과 그 의미가 다르지 않다. 특히 사대부의 큰집이나 서원, 향교 등에서 이런 특징은 잘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지역적인 기반이 틀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보편성은 같아서 주거라는 가장 안정되어야할 공간에 대한 보호의식과 안정성에 대한 희구는 어느 민족 어느 지역 사람이건 별로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이르쿠츠크의 목조가옥들이 국가 문화재로 지정받을 정도로 그 가치와 중요성은 인정받고 있지만 이들 집들의 보존과 관리는 현재 살고 있는 집주인의 관리에 전적으로 맡겨 두고 있기 때문에 돈이 없어 집을 관리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쓰려져 가는 목조가옥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 딸쯔 박물관의 전통 목조가옥 ⓒ 들찔레

또한 집이 국가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집이 낡아 수리를 할 수가 없어도 그 자리에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없어서 남모르게 자기 집에 불을 질러 태워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러시아의 현재 재정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사정으로 보아 어쩌면 이렇게 특이하고 보존가치가 높은 이르쿠츠크의 목조가옥이 점점 사라질지 모른다.

개인들의 문화에 대한 인식이 투철하지 않은 나라에서 옛것들을 지켜내기란 쉽지 않다, 어느 해 중국의 서안에서 유명한 대안탑 내부를 돈만 내면 입장시켜 쿵쾅거리며 뛰어다녀도 제재하지 않던 기억이나 몽골의 울란바토르 자연사 박물관에서 단 돈 5000원이면 어느 장소에서나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릴 수 있도록 한 기억이 있다.

러시아라는 나라가 문화적인 자존심이 서유럽에 못지않음을 모르지 않으나 국가 경제가 기반이 모자란 현실을 생각하면서 낡아서 멋이 더해 가는 러시아의 목조건물을 한 번 더 손길로 쓰다듬어 본다./ 배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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