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있다..'연애편지'의 추억

2006. 9. 1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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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강지이 기자]

▲ 책 <작가들의 연애편지>
ⓒ2006 생각의나무

연애편지 한 번 안 써 보고 사랑했다 말할 자가 어디 있으랴. 아무리 요즘 세상이 인터넷과 이 메일로 소식을 전하는 시대라고 해도 연인들 간에 손으로 쓰는 편지는 유지된다. 그만큼 '편지'라는 매개체가 연인 사이를 이어주는 큰 역할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 <작가들의 연애편지>(생각의나무)는 소설가, 시인, 극작가 등의 다양한 문학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연애편지를 모아 놓은 것이다.

이들이 쓰는 편지는 실존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가상의 누군가 이기도 하다. 그 내용들 또한 진짜 구구절절 사랑의 언어를 늘어 놓는 게 있는가 하면 철학적인 사고를 담은 것도 있다.

이 책을 만들게 된 추계예술대 김다은 교수는 책의 끝에서 작가들의 연애편지가 지니고 있는 '문학 텍스트'적 가치에 대해 언급한다. 외국에서는 옛날부터 편지의 가치를 중시 여겼다고 한다. 특히 작가들의 연애편지는 경매에서 비싼 값에 팔리고 문학적인 평가를 받을 만큼 중요하게 취급된다.

반면에 우리 나라의 현대 작가들은 어떠한가?

사적인 연애편지는 공개된 일도 거의 없으며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도 드물다. 고전 문학의 범주 중에 '서간 문학'이라고 하여 왕실이나 여인들, 양반, 기생이 주고 받은 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엮은이는 현대 작가들의 편지 또한 중요하게 여길 만한 문학 텍스트적 가치가 있음을 강조한다. 이 책에는 27인이나 되는 작가들의 다양한 연애편지들이 등장한다. 과거에 그들이 사랑하는 이에게 보냈던 연서도 있고 현재 함께 살고 있는 동반자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다.

소설가 이재인은 사십오 년 전 자기에게 책을 빌려 간 한 소녀에게 편지를 쓴다. 책을 돌려줄 때 만나자는 말에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난 그녀. 몇십 년이 지난 후 듣게 된 그녀의 소식은 결혼하여 아이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그녀에게 다시 쓰는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렇지요. 사십오 년 전의 서책을 돌려받는다고 내게 지금 무슨 도움이 되겠소. 이는 당신이 잘 보관하다가 뜻 있게 사용하시길 바라오. 오늘부터 그 책은 당신의 소유요. 이미 사십오 년 전에 당신 집으로 시집간 거요. 다만 이따금씩 그 책장을 넘기면서 젊은 날을 추억해 준다면 책값은 그것으로 받은 셈 치리다. 그 책들이 당신에게 우리 젊은 날 추억의 징표가 된다면 나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소."

이런 연애편지라면 과거를 추억하는 아름다움을 주는 것이어서 언제든 받아도 기분 좋을 것 같다. 시인 정해종의 편지는 좀더 심각하다. 아프리카 여행 중에 느낀 감상을 편지로 적어 보낸 것인데, 상대에 대한 언급보다는 자신이 여행하면서 얻은 생각을 전하는데 중점을 둔다.

정해종은 아프리카 타운십에서 인종 차별의 심각한 수준을 보고 그 안타까운 마음을 편지에 담는다. 그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헐벗고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눈망울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에 그가 느낀 우리 나라의 아이들은 학원을 오가며 지극히 이기적이고 개인적을 꿈을 꾸는 모습이다.

사랑이란 '닿을 수 없는 모든 것' 혹은, '너로 인해 빛나는' 세상

소설가 김훈의 연애편지는 '사랑에 대한 정의'로 요약할 수 있다. 자신이 과거에 적어 두었던 사랑에 대한 메모를 보면서 사랑에 대한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작가. 그가 말하는 사랑의 정의는 감미롭다기 보다 소유하거나 잡을 수 없는 안타까움을 내포한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잡을 수 없었던 존재에 대한 사랑은 시인 홍성식의 연애편지에도 나타난다.

"너로 인해 일 년하고도 몇 달이 행복했다"는 과거형의 문장으로 시작하는 그의 연서는 격정의 청춘을 보낸 한 인간의 소유할 수 없었던 사랑의 감정을 토로한다. 짜릿하고 행복했던 연애의 순간을 묘사하는 그의 글은 모든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과 일치한다.

"너와 지냈던 기억들. 네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풍선처럼 부풀었던 가슴과 멀리서 날 향해 걸어오는 네 발걸음만으로도 한정 없이 흔들리던 영혼. 널 안고 있던 바로 그곳이 세상의 중심이었고, 그 어두운 골목이 내 존재가 시작되고 끝나던 공간이었다. 불어오는 한 점 바람도, 좁은 내 방으로 밀려들던 아침 햇살도, 강으로 떼 지어 몰려오던 핏빛 노을도 네가 있기에 아름다웠고, 너로 인해 가슴 아렸다. 그 시절 내 인생은 '빛나는' 그 무엇이었다…"

이렇게 빛나는 사랑의 순간을 잃어버린 상처 입은 자의 가슴을 들여다 보는 것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책 <작가들의 연애편지>를 읽다 보면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절함, 잡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구, 현재 꾸리고 있는 사랑에 대한 믿음 등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그들의 연애편지가 한 편의 문학 작품처럼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연애편지는 바로 소설가 송하춘과 그의 아내가 주고 받은 나이 든 부부의 편지 모음이다. 불 타오르는 청춘의 사랑도 아름답지만 연륜이 생긴 부부의 끈끈한 애정이 담긴 편지도 연애 편지로써 손색이 없다. 가을에는 이런 연애 편지 한 장을 누군가에게 보내 보는 것도 좋겠다.

/강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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