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축구도 '수중전'이 있네

2006. 9. 9. 16: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한나영 기자]

▲ 고등학교 풋볼도 인기가 있다. 해리슨버그 고교와 샬로츠빌 고교의 풋볼 경기
ⓒ2006 한나영

미식축구 열기는 고등학교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4일은 미국의 공휴일인 'Labor Day'. 아이들은 물론 수업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월요일에 HHS (해리슨버그 고등학교)에서는 풋볼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원래 고등학교 풋볼 경기는 금요일에 하는 게 관례인데 지난 금요일에 폭우가 내려 연기된 것이었다. 학교 밴드팀에서 마림바 연주와 컬러가드를 하는 두 딸도 1시에 벌어질 경기를 위해 일찍 학교로 향했다.

"엄마 올 거지?"

"당연히 가야지."

풋볼이 재미있어서가 아니었다. 내 아이가 참여하는 밴드팀의 첫 경기기 때문이었다. 미국사람들이 풋볼 경기장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경기장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밴드, 컬러가드, 치어리더 등의 화려한 볼거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선 채로 경기를 관전하다가 '상황'이 벌어지면 현란한 동작을 선 보이는 치어리더들.
ⓒ2006 한나영
▲ 밴드와 컬러가드는 풋볼 경기장의 또 다른 볼거리다.
ⓒ2006 한나영

하늘은 아침만 해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점점 흐려지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첫 개막전이라는데 웬 비야. 그나저나 오늘 경기를 하는 거야, 마는 거야. 축구는 '수중전'이라는 게 있어서 폭우가 쏟아져도 하던데 풋볼도 수중전이 있는 거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학교로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애꿎은 녹음만 흘러나왔다. '할 수 없지. 그냥 가보는 수밖에.'

▲ 밴드팀 지원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 "음료수와 스넥, 피자 있어요."
ⓒ2006 한나영

차들이 연신 학교로 들어가고 있었다. 주차장에서는 깃발을 든 재학생들이 열심히 주차관리를 하고 있었다. 미국에 와서 느낀 것 중 하나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자원봉사 활동이 많다는 점이다.

경기장에서도 간식을 파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경기 중에도 빗속을 다니면서 음료수와 스넥, 피자 등을 열심히 팔았는데 나는 이들이 아르바이트 고등학생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밴드팀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판매 수익금은 모두 밴드팀 기금으로 들어가요."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지만 다시 풋볼 이야기로 돌아가면….

큰 비는 아니었지만 비가 추적추적 계속 내리고 있었다. 시시할 것 같은 고등학교 풋볼 경기였지만 이곳에도 남녀노소가 입장을 하고 있었다.

▲ 풋볼경기에 남녀노소 구별이 없다. 13번 Dalton 선수의 여자친구?
ⓒ2006 한나영

티켓은 학생이 3달러, 어른은 5달러였다. 지난 번 JMU 경기(17달러) 때보다는 훨씬 쌌다. 공휴일이어선지 중학생들도 많이 왔다.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어떤 남학생은 목발에 의지해 경기장을 다니면서 사람을 찾고 있었다. 못 말리는 풋볼 사랑이었다.

미국 국가가 연주되고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홈팀인 해리슨버그 고등학교의 밴드팀과 치어리더, 재학생들이 응원 등을 앞세워 관중석의 흥을 돋웠다. 실제 경기를 한 번 본 뒤라 경기를 이해하기가 조금 쉬웠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해리슨버그 고등학교가 터치다운에 성공해 7-0으로 앞서 나갔다. 나중에 상대팀인 샬로츠빌 고등학교도 터치다운을 성공시켰는데 흥미로운 것은 실점을 하게 되면 홈팀 치어리더들이 벌(?)을 받는 모습이었다.

바로 '엎드려 팔굽혀펴기'를 실점한 점수만큼 하는 것이었다. 벌은 아니었지만 자기팀의 분발을 촉구하는 깜찍한 '팔굽혀펴기'는 관중들로부터 많은 환호를 받았다.

▲ 자기팀이 실점을 하면 그 실점 만큼 치어리더들이 '팔 굽혀펴기'를 했다. 원, 투, 쓰리~
ⓒ2006 한나영

경기장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은 고등학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번 대학 풋볼 경기장에서도 청춘 남녀들이 '임도 보고 뽕도 따는' 장면을 연출했는데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대담하게 애정표현을 하는 아이들이 카메라에 잡혔다.

▲ 아니, 얘들 고등학생 맞아?
ⓒ2006 한나영

비는 잠시 그치기도 했지만 오락가락하다가 다시 굵은 비를 뿌렸다. 하지만 관중들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열심히 경기에 몰두했다. 우산을 펴거나 비옷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옷이 젖는 건 상관없다는 듯 경기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 비가 와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2006 한나영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양 팀은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5번 선수가 두 번의 터치다운을 성공시켜 결국 42-20이 되었다. 큰 점수차로 승리를 거둔 홈팀의 기세는 등등했다. 환호하는 재학생들은 승리를 자축하며 교정을 휘젓고 다녔다.

▲ 미국의 붉은 악마들? HHS 응원복인 'Red Sea' 티셔츠를 입고 페이스 페인팅을 한 학생들.
ⓒ2006 한나영

경기가 끝난 뒤 주차장으로 가다가 좀 어려 보이는 풋볼 선수들을 만났다. 이번에 9학년이 된 신입생들이었다. 이들은 비록 주전은 아니었지만 이날 승리한 선배들의 전통을 잇기 위해 다시 운동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나갈 후배 신입생들. 비록 시합은 못 뛰었지만 연습만이 살 길이니 다시 경기장으로 직행!
ⓒ2006 한나영

'그래, 연습만이 살 길이지. 하인스 워드 같은 스타가 되려면 부지런히 땀을 흘려야지.

훈장 같은 충고를 건네며 이들을 격려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지만 끝까지 앉아 경기를 관전한 미국인들의 진한 풋볼 사랑을 확인한 하루였다.

/한나영 기자

- ⓒ 2006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