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영화제 간 류승완 감독, 경찰서엔 왜?

2006. 9. 3.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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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은정 기자]

▲ 스크린쿼터 축소반대 1인 시위 중인 류승완 감독.
ⓒ2006 김은정

영화제가 시작한 지 3일째 되는 1일, 영화 <짝패>를 들고 류승완 감독이 베니스를 찾았다.

<짝패>는 올해 63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한국영화로서는 유일하게 초청된 영화이다. 비경쟁부문에서 상영되어 아쉬운 감이 없지는 않지만, 류승완 감독에 있어서는 2005년 <주먹이 운다>가 칸영화제에 이미 소개된 바 있어 연이은 영화제 초청 소식이 한국 액션영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의미하고 있다.

베니스 영화제는 처음이어서 떨릴 만도 한데 이것은 기자의 어설픈 판단이었다.

"기자들을 상대하는 것도 이제 일의 한 부분입니다."

순간순간의 재치와 순발력이 돋보였던 기자회견에서 류 감독에게 쏟아진 질문들은 한 가지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한국액션은 무엇인가?""<짝패>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액션은 싸움의 기준이 아닌 싸움의 정서입니다. 싸울 때 때리는 쾌감도 중요하지만 맞는 사람의 아픔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액션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싸움 기준 아닌 '정서'를 보여주고 싶었다"

▲ 베니스영화제 비경쟁부문에 나간 류승완 감독의 영화 <짝패> 한 장면.

한국액션이 굳이 일본이나 중국, 미국과 다른 점을 찾는다면 영웅이 많은 장애를 극복하고 싸워 이기면서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류 감독과 함께 참석한 정두홍 무술감독은 말하고 있다.

"중국 액션은 동작이 아름답고 일본은 사무라이의 정적인 아름다움이 있으며 할리우드 액션은 힘이 느껴집니다. 한국액션은 리얼 액션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요."

오랜 시간 액션을 연구한 그의 답이 그럴 듯하다. 의도했든 아니든 액션은 복수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데 한국 액션에서 막대기나 칼을 주로 사용하고 총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류 감독은 명쾌하게 답한다.

"일단 한국은 총기가 불법이고 막대기가 총 구하보다 훨씬 쉬워서요. 그리고 제가 총을 가지고 싸워본 적이 없습니다. 막대기로 싸우다가 혹시 내가 싸우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화해할 수도 있는데 총을 사용하고 나서는 돌이킬 수 없지 않습니까."

기자회견장은 일시에 폭소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됐다. 비교하기 좋아하는 유럽 사람들이 당연히 <짝패>를 타란티노의 <킬빌>에 비교하기도 했다.

"<킬빌>은 제가 아주 좋아해요. <킬빌>이 아시아 액션의 전통에 기대고 있다면 반면 내 영화는 80년을 배경으로 인물들의 절실함에 기대고 있습니다. <킬빌>이 지하공간에서 점점 올라와서 마당에서 복수를 해서 마치 해방의 개념처럼 보인다면, <짝패>는 반대로 마당에서 점점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면서 살아있는 사람이 갇히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 많은 취재진이 류승완 감독의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2006 김은정
▲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류승완 감독을 경찰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2006 김은정

기자회견 끝나자마자 스크린쿼터 반대 1인 시위

류 감독은 기자들과의 인터뷰가 끝나기가 무섭게 카지노 델 팔라초의 레드 카펫 앞에서 스크린 쿼터를 반대하는 1인시위를 자청했다. 1인시위가 시작되고 10여분이 지날 무렵 사건이 터졌다.

베니스 영화제 안전을 담당하는 이탈리아 경찰당국이 류 감독의 양 팔꿈치를 붙잡고 등을 밀어대며 끌고 갔기 때문이다. 신고되지 않은 시위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제작사와 류 감독을 취재하던 기자들은 류 감독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 채 답답해 해야 했다.

결국 1시간 만에 진땀을 흘리며 나온 류 감독은 당일 밤 12시에 있을 영화 시사회 입장시 레드카펫에서 마르코 뮬러 집행위원장과 함께 피켓을 들기로 결정해 다소 안심해 하는 눈치였다.

10여분의 1인시위 때문에 1시간이 넘는 수사(?)를 받아야 했던 류 감독이 곤욕을 치렀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류 감독이 경찰들에게 연행되어 가는 과정이 이미 전 세계 언론인들의 사진기에 담겨졌고 이 사건을 처음부터 눈여겨보던 홍콩 텔레비전은 일이 종료될 즈음에 현장 인터뷰를 했다.

어찌되었든 영광과 고난의 <짝패> 상영은 무사히 치러졌다. 비경쟁부문이라서 수상 가능성은 없지만 <짝패>를 보는 유럽인들도 한국사람들과 다를 건 없었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부분에서 이들도 함께 웃었다. 국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 류승완 감독이 1인시위장에 찾아온 박찬욱 감독과 얘기하고 있다.
ⓒ2006 김은정

올해는 작년 <친절한 금자씨>를 들고 이 영화제를 찾았던 박찬욱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해 더욱 의미깊은 해이기도 하다. 베니스 영화제 사상 한국 감독이 심사위원을 맡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영화제에 한국영화가 경쟁부문에 초청되지 않아 오히려 저에게는 잘된 일입니다. 마음이 편합니다. 객관적으로 공정한 심사를 하고 싶고 특별히 아시아 영화를 감싸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사회성 짙은 영화 많이 출품... 박찬욱 감독, 심사위원 초청돼

박찬욱 감독은 프랑스 여배우 드뇌브와 호흡을 맞추며 영화제 기간 내내 경쟁부문 영화 21편을 심사한다. 마르코 뮬러 집행위원장은 박찬욱 감독에 대해 작년에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의 영화가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반응이 좋았던 것이 심사위원으로 초청하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올해 베니스 영화제는 정치, 역사, 사랑, 전쟁 등을 다룬 영화들을 다양하게 구성했다. 마르코 뮬러는 "어떤 영화가 황금사자상을 차지할 지는 예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다양한 반찬으로 식욕을 돋구어 어떤 음식이 더욱 맛있는지 구분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말인 듯 하다.

9·11 사건을 다룬 두 영화,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World Trade Center)>, 프랑스 감독인 산티아고 아미고래나의 <9월의 며칠간(Quelques Jors en septembre)>으로부터 존 레논의 반전의식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 다큐멘타리 <미국과 존 레논(The U,S. vs John Lennon)>, 2005년 뉴올리언스에 몰아친 폭풍 카트리나를 다룬 스파이크 리의 4시간 짜리 다큐멘타리 < When the Leeves Broke > 등 사회성 짙은 영화들이 주목된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많이 출연하는 영화들도 눈에 띈다. 스칼렛 요한슨과 조시 하트넷이 주연한 <블랙달리아(The Black Dahlia)>, 클리브 오언과 줄리안 무어, 마이클 케인이 주연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인간의 자식(Children of Men)>, 애드리언 브로디와 벤 애플렉이 주연한 앨런 쿨터 감독의 <할리우드 랜드(Hollywoodland)>, 샤론 스톤과 앤서니 홉킨스 그리고 데미 무어가 주연한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감독의 <바비(Bobby)>, 작가적 정신이 돋보이는 태국감독인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상 사타왓(Sang Sattawat)>, 케네스 브렌너 감독의 <마술피리(The Magic Flute)> 등 다양성을 갖추기 위해 한껏 노력했다.

/김은정 기자

덧붙이는 글기자소개 : 김은정 기자는 한국에서 잡지와 신문사 활동을 하다가 98년 이탈리아에 정착, 이탈리아 사진 에이전시인 'SIE' 소속 사진가이자 자유기고가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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