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홀려 깊은 산에서 길을 잃다

2006. 6. 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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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민수 기자]

ⓒ2006 김민수

배고플 때 먹는 꿩의밥,노랗게 빛나는 금꿩의다리,산 속 헤매고 다니는 산꿩의다리,작아도 꿩의 다리 좀꿩의다리,봄꽃에 물든 자주꿩의다리,짝짓기 좋을 때 피어나는 꿩의바람꽃,나도 좀 끼워 주라 꿩의다리아재비,가느다란 깃털을 닮았나 세잎꿩의비름,얼마나 크면 큰꿩의비름.까투리밥,금까투리다리,산까투리다리......(자작시 '까투리꽃')

ⓒ2006 김민수

꽃 이름 중에는 동물 이름이 들어간 것도 많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꿩'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꽃들을 하나 둘 세어보니 여느 꽃보다 종류가 많습니다.

몇 가지는 제법 그럴 듯한 상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꿩의밥'은 양지꽃이 필 무렵이면 피어나 겨우내 배고픈 꿩의 배를 채워줄 수 있음직하고, '꿩의바람꽃'은 이른 봄 꿩들이 짝짓기를 할 무렵인 듯해 까투리들이 바람(?) 피우는 시기인가 하는 상상을 하게 합니다.

꽃줄기가 가느다랗게 올라간 이파리와 꽃은, 여간한 인내심이 아니고서는 담기가 힘들 정도로, 작은 바람에도 후두둑 날개짓을 합니다.

때로는 꽃의 모양만으로 꿩의 다리를 연상케 하다가, 때로는 이파리와 줄기의 모습을 함께 봐야 꿩의 다리를 연상케 하기도 하는 것이 '꿩의다리'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 '꿩의다리아재비'는 줄기와 이파리의 모양은 '꿩의다리'와 비슷한데, 다소 작은 꽃은 '꿩의다리' 종류와 전혀 다릅니다. 유사하기는 하나 다른 종류일 때 '아재비'란 이름을 붙여준다는데 청자색의 작은 꽃이 달라 '아재비'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입니다.

ⓒ2006 김민수

봄의 끝자락을 붙잡고 경기도 양평의 설매재라는 곳으로 산행을 갔습니다. '설매재'라는 이름만 들어도 '겨울에 피는 매화'와 관련이 있으니 수많은 꽃들을 풀섶에서 만날 것만 같았습니다.

봄꽃들과 눈맞춤하며 산행할 수 있는 시간은 참 행복한 시간입니다. 이런저런 꽃들과 눈맞춤하고 떨어진 산철쭉이 쫙 깔린 숲길을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갑니다. 산꼭대기에 다다르니 소리를 칩니다.

"와! 큰앵초다!"

"피나물도 있어요!"

"꿩의다리!"

"노랑제비!"

"쥐오줌풀!"

"홀아비꽃대!"

저마다 자기들이 본 꽃들을 알려주느라 바쁩니다. 그렇게 그곳에서 꽃 삼매경에 빠져들었다가 일행과 헤어져 하산할 때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거의 두어 시간 더 걸어서 내려온 길, 아무리 자연을 좋아하는 척해도 자연 속에서 인간은 자연스럽지 못함을 깨달았습니다. 홀로 산 속에 남겨질지 모른다는 것, 그것은 두려움이었지요. 자연이 자연 속에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는데 아직 난 욕심 많은 인간인가 봅니다.

ⓒ2006 김민수

사랑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사랑할 줄 모릅니다. 용서를 외치는 이들이 용서할 줄 모릅니다. 조금만 덮어주고, 이해해 주고, 끌어주면 모두가 살아갈 것을 조금의 덮어줌, 이해, 끌어줌을 하지 못해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아파합니다. 서로 아파합니다.

'꿩의다리아재비'는 도감에 의하면 경기도 이북의 심산지역에 분포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뿌리와 근경은 관절염 치료, 진해(기침을 멎게 함), 거담(가래를 없앰), 진통 등 용도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작은 풀들이 지니고 있는 약효들이 우리 몸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땅의 아픔도 치유할 수 있으면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청자색의 작은 꽃,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던 꽃, 그 꽃이 있음으로 그 깊은 산은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그 꽃에 홀려 많은 이들이 그날 길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한결같이 하는 말, "그 꽃을 보아 행복했노라!"입니다.

작은 꽃을 보고 행복해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삶에 다가오는 아주 작은 것들에도 감사할 줄 압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랑할 줄 알고, 용서할 줄 알고, 덮어줄 줄 알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해 줄 수 있는 품 넓은 사람일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는 작은 꽃을 보고 행복했었노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지 참 행복을 찾지는 못한 사람이겠지요.

작은 꽃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작은 것을 발견하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어 이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 한 사람, 바로 당신이시길 바랍니다. 때론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꿩의다리아재비'같을지라도.

/김민수 기자

덧붙이는 글기자소개 : 자연과 벗하여 살아가다 자연을 닮은 책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 1, 2>, <희망 우체통>, <달팽이걸음으로 제주를 보다>등의 책을 썼으며 작은 것, 못생긴 것, 느린 것, 단순한 것, 낮은 것에 대한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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